우정의 세차원 -주님, 친구, 부부-2019.3.1.연중 제7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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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연중 제7주간 금요일                                                                            집회6,5-17 마르10,1-12

 

 

우정의 세차원

-주님, 친구, 부부-

 

 

오늘은 3월 첫날, 참 의미 깊은 날입니다. 1919년 거족적으로 일어 났던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3,1절이고 이제 얼마 있으면 3월6일 재의 수요일과 더불어 은총의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어제 온민족의 기대를 모았던 북미회담은 결렬됐지만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하겠습니다. 희망의 봄이기 때문입니다.

 

‘봄의 전령사傳令使’이고 꽃말은 희망인 개나리과에 속하는,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봄을 맞이하는 봄꽃이라 하여 꽃이름도 예쁜 ‘영춘화迎春花’입니다. 수도형제가 알려 줘 마리아의 집 피정집 근처에서 만난 영춘화를 보고 쓴 글입니다.

 

-노란/그리움으로 꿈처럼

 수줍게/맨 먼저 피어 난

 봄의 친구/영춘화迎春花 

 한 때/우정을 위해

 꼬박/일년을 기다렸구나-

 

대부분 일찍 피는 봄꽃들의 색깔은 노랗습니다. 그리움을, 희망을 색깔로 하면 노란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우정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 희망의 봄입니다. 봄 친구, 봄 꽃 영춘화가 가르쳐 주는 우정입니다. 영적우정은 예로부터 수도영성의 한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신망애信望愛, 믿음-희망-사랑 순으로 말하지만 저는 희망-사랑-믿음 순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희망에 뿌리 둔 사랑이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정의 사랑 역시 희망의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집회서는 우정에 대해 참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길다 싶지만 일부를 인용합니다.

 

“부드러운 말씨는 친구들을 많게 하고

우아한 말은 정중한 인사를 받게 한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는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참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이런 성실한 보물같은 친구 하나만 있어도 그 인생 구원이요 성공입니다. 광야인생여정, 도반과도 같은 이런 친구 없으면 너무 삭막하고 외롭습니다. 마지막 구절이 믿는 이들에게 우정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유유상종입니다. 저절로 성실한 친구가 아닙니다. 참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을 경외하는 참 좋은 친구를 얻게 됩니다. 하느님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의 참 좋은 친구입니다. 나이를 초월하는 참 좋은 영적우정의 영적도반인 친구입니다.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제목, “우정의 세차원-주님, 친구, 부부-’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도 참된 우정에 도움이 됩니다.

 

“주님, 당신 계명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을 경외하여 주님의 계명길을 함께 걸을 때 주님과의 우정과 더불어 깊어 가는 친구간, 부부간의 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자 친구인 주님과의 우정이 사람간 우정의 기초입니다. 보이는 친구들 은 다 사라져도 끝까지 동행할 친구는 주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친구간의 영적우정을 위해 분도성인은 그의 규칙 “수도승들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라는 제72장에서 금과옥조의 가르침을 줍니다.

 

“수도승들은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다.”

 

이렇게 친구로서의 영적자질을 지닐 때 이에 걸맞는 영적친구를 얻게 됩니다.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새삼 하느님을 경외함이 도반들과의 영적우정의 기초임을 깨닫습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똑같습니다. 참으로 부부가 주님을 경외할 때 부부도 친구가 되어 부부간 우정의 사랑도 깊어간다는 것입니다. 연인간의 풋사랑같은 연정戀情에서 시작하여 성숙한 우정友情의 사랑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말없어도 편안한, 서로 불쌍하고 고마워서 사는 영적우정의 친구부부사이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영적친구로서 부부간의 우정입니다. 사실 간혹 이런 노부부를 보면 저절로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창세기의 하느님 말씀이 그대로 당신의 견해와 일치됨을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이 말씀은 이혼불가의 율법조문이 아닙니다. 이혼은 마지막 극단적 처방이고 할 수 있다면 부부간의 영적우정을 키워나가며 살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보라는 주님의 간곡한 당부입니다. 영적우정도 오랜 기다림의 시간들이 필요하니 때가 될 때까지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온갖 노력을 다해 보라는 것입니다. 

 

봄철 한 때의 우정을 위해 꼬박 일년을 기다렸다 봄을 만나 우정의 꽃을 활짝 피어낸 영춘화가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사실 오랜 기다림의 정주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수도형제들도 주님과의 우정의 기초위에 미운정, 고운정이 깊어 가며 점차 영적우정의 도반이요 친구가 되어 감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의 우정은 물론 형제들과의 우정도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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