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평생과제-2019.3.11.사순 제1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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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11.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평생과제-

 

 

 

좋든 싫든 함께 살아야합니다. 혼자 살면 사람되기 힘듭니다. 십중팔구 괴물되기 쉽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광야인생여정 중, 성인이 되든가 폐인이 되든가 괴물이 되든가 셋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랑의 순종’이 있을 때 성인이지만, ‘사랑의 순종’이 없으면 폐인이,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작고하신 유명인의 독백같은 말도 생각납니다.

 

“내가 인간을 과소평가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70%가 이기적이고 30%가 이타적인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하여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는 사랑의 노력이 필수입니다. 저절로 사랑도 있지만 의지적인 사랑의 노력도 필수입니다. 새벽에 있었던 평범한 일상의 깨달음도 새롭습니다.

 

어제 세탁후 깜박 잊고 지냈던 속옷들이 건조실에 잘 마른채로 가지런히 널려 있었습니다. 순간 어느 형제의 말없는 사랑이 전달되는 듯 마음 따뜻해 짐을 느꼈습니다. 얼마전 과일의 열매 향기같은 느낌의 사랑이었습니다.

 

바로 얼마전, 지인이 사다준 딸기와 바나나 과일 열매 향기가 참 푸근하고 편안했습니다. 꽃향기와 너무 대조적인 편안함이었습니다. 노년의 향기는 꽃향기보다는 잘 익은 과일 열매의 향기같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물받은 크고 화려한 향기없는 서양란은 웬지 모르게 공허하지만 향기 은은한 작은 동양란은 마음에 좋은 여운을 남깁니다. 겸손한 사랑의 향기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이런 동양란의 향기보다 과일 열매 향기가 푸근하고 편안하기가 형제애의 향기같습니다. 가을철 배밭 산책할 때 마다 익어가는 배열매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하고 편안했던지요. 흡사 사랑의 공동체의 익어가는 형제애兄弟愛 향기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여 수도공동체를 ‘사랑의 학교’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사랑의 학교’입니다. 늘 초보자임을 자인하는 겸손한 농부처럼 사랑에도 늘 초보자임을 인정하는 자가 진정 겸손한 사람입니다. 늘 평생 배우고 공부하고 실천해야 하는 사랑입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도 거룩함의 본질은 사랑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평생과제가 제시됩니다. 바로 “나, 주 너희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이 평생과제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됩니까? 구체적인 처방이 이어집니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함께 살면서 지켜야 할 일을 충실히 실천하는 사랑이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다.

 

“너희는 도둑질 해서는 안된다. 속여서는 안된다. 사기해서는 안된다. 나의 이름으로 거짓맹세를 해서는 안된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 십계명의 연장처럼 느껴집니다. 부정적인 언술후에 못박듯이, “나는 주님이다.” 후렴처럼 되풀이 되면서 이 금령들을 견고히 뒷받침합니다. 중반부와 후반부의 말이 주목됩니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아주 간명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이중계명, 바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실천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함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고, 함께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수도공동체입니다. 수도공동체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공동체 생활의 원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오히려 더 넓고 깊습니다. 종파를 초월한 형제애의 사랑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장례미사때 복음으로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배려된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최후심판의 잣대가 참 엄중합니다. 전례, 기도, 단식, 십계명, 종교적 의무를 다해서 구원이 아니라, 곤궁중에 있는 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곤궁중에 있는 형제를 자신과 일치시키는 주님이십니다.

 

“너희는 1.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2.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고, 3.내가 나그네 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4.내가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5.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6.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모두 6개 항목으로 몸과 관련된 구체적 실천의 사랑입니다. 결코 추상명사의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몸과 관련된 사랑실천의 동사들입니다. 우리의 사랑실천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6개 항목의 사랑입니다. 이어지는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작은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종교나, 인종, 국적, 언어, 문화와 관계없이 곤궁중에 있는 작은 이들을 내 형제라 하시며 자신과 일치시키는 주님이십니다. 곤궁중에 있는 형제들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또 만나는 모든 이들이 주님의 형제들이고 이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들에 대해 한 사랑은 주님은 ‘나를 위해서(FOR me)’가 아닌 ‘나에게(TO me)’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형제들을 통해 만나는 주님의 체험이 건강하고 건전한 신비주의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수행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신비, 사랑의 수행입니다. 구체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형제애를 실천해갈 때 거룩한 사람, 성인이 되어갑니다. 

 

거룩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거룩한 사람이 되어가는 ‘사랑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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