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예수님처럼-2019.3.31. 사순 제4주일(래타레Laetare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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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31. 사순 제4주일(래타레Laetare주일) 

여호5,9ㄱㄴ.10-12 2코린5,17-21 루카15,1-3.11ㄴ-32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예수님처럼-

 

 

 

오늘은 사순 제4주일, 라틴어로 Laetare(래타레), ‘기뻐하라’ 주일입니다. 제의 색깔도 기쁨을 상징하는 분홍색 장미꽃 색깔입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필립4,4-5), 말씀도 생각납니다. 

 

이제 사순시기도 막바지입니다. 사실 사순시기는 어둡고 무겁게, 침통하고 심각하게 지내는 시기가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밝고 기쁘게 지내는 시기입니다. 자제, 절제, 극기의 수행중에도 우리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분도 규칙서 긴 책에도 기쁨이란 말마디가 단 두 번 나오는데 사순절을 지킴에 대한 장에서입니다.

 

“각자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성규49,6-7).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시편 역시 오늘의 기쁨을 북돋우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저는 주님 사랑 맛으로 살아갑니다. 저뿐 아니라 여기 하느님만을 찾는 수사님들 주님 사랑 맛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맛들여야 세상 맛에서 초연하여 참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어제 아침 날씨는 어둡고 흐렸습니다. 아침 산책중 샛노란 수선화꽃 몇송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는 듯 써놓은 글을 나눕니다.

 

-세상 어둡다 탓하지 않는다

 나부터/빛되어/꽃되어 산다

 흐린 날씨/봄되자/피어난 샛노란 수선화 몇송이

 아침이 환하다/세상이 환하다-

 

이렇게 세상 어둡다 탓하지 않고 나부터 빛되어, 꽃되어 사는 내적혁명의 사람들이 진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런 빛되어 꽃되어 사는 이들이 하나 둘---늘어남에 따라 세상도 밝아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영어 말마디 “As you are, so is the world”(당신 정도 만큼의 세상이다)입니다새벽 휴게실에 들렸다가 작은 메모지의 짧은 글 내용도 참신했습니다.

 

“수사님! 제게 방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맘 편히 행복하게 머물다 갑니다. 이곳에 있다보니 그간 제가 온전한 맘으로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순리대로 산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리 해보려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돌아갑니다.”

 

우리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돌아갈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 부를 수 있는 하느님 아버지란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집나간 아들이 곤궁중에 떠올랐던 곳은 따뜻한 보금자리 바로 아버지의 품같은 집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살면서도 얼마나 행복한지, 또 참으로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상징하는 수도원이요 성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참 좋은 미사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참 좋은 주님은 험한 세상에서 힘겹고 고단하고 고달프게 살아 온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고자 미사잔치에 우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마침 얼마전 써놓은 글 서두 내용입니다.

 

-어둡고 흐리고 춥다

 미세먼지로 공기도 상당히 나쁘단다

 요즘 세상같다

 사람도 날도 사악해져가는 것 같다

 많이 거칠고 사납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울 인성이지 가르쳐서 되는 인성이 아니다

 

 모두가 가엾고 불쌍타

 너나할 것 없이 참 힘겹고 고단하고 고달프게 살아간다

 참 중요한 일이 자기를 지키는 일이다

 존엄한 품위의 사람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거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평생과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이 거룩한 평생과제에서 면제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자비하신 아버지의 진면목이 오늘 복음의 회개하여 돌아 온 작은 아들을 위한 큰 잔치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흡사 작은 아들처럼 세상에서 고단하고 고달프게 살다가 회개하여 미사잔치에 참여한 우리와 아버지의 대화처럼 들립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의 환대에 감격한 작은 아들의 진솔한 고백은 그대로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어지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말씀은 복음의 작은 아들은 물론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합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작은 아들처럼 자비하신 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이 거룩한 미사잔치의 은혜로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존엄한 품위를 회복한 우리들입니다. 회개한 영혼의 과거를 불문에 붙이시는 주님이십니다. 과거는 지났고 이제부터 자녀답게 사는 길뿐입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집에 살던 큰 아들입니다. 큰 아들의 불만도, 섭섭함도 이해가 됩니다. 정말 자기를 아는 자는 작은 아들도, 큰 아들도 탓하지 않습니다. 바로 작은 아들, 큰 아들 역시 내 부정적 어둔 내면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큰 아들에 대한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 또한 감동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당신의 자녀들 이기는 하느님도 없습니다. 큰 아들에게 호소하시는 아버지의 겸손한 사랑이요 무능할 정도로 전능한 사랑의 아버지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역시 큰 아들을 회개에로 초대하는 아버지의 자상한 호소이자 권고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이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으로 바쳤던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 큰 아들의 반응은 없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의도하는 바 우리 모두의 회개입니다. 작은 아들은 물론 큰 아들처럼 본의 아니게 위선적 삶을 살았던 모든 이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제가 보기에 큰 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회개하여 작은 아들과 함께 즐거운 잔치에 참석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삶입니다. 회개하여 날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평생 배워야 할 공부가 하느님 자비의 공부입니다. 오늘 복음도 회개를 통한 새로운 시작을, 제1독서의 여호수아서도, 제2독서의 코린토 2서 말씀도 새로운 시작을 말합니다.

 

고단하고 고달팠던 광야여정을 끝내고 하느님의 백성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는 여호수아서의 모습이 바로 새출발을 앞둔 파스카 미사잔치에 참여한 우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 역시 우리 모두 새롭게 시작할 것은 간곡히 당부합니다. 

 

“형제 여러분,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오직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면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보시는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 지금 여기서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과 화해하여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이 거룩한 미사잔치시간입니다. 잃었던 자녀로서의 품위를 회복시켜 주는 미사은총입니다. 하여 그리스도의 사절로, 화해의 일꾼으로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전 내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에게 드린 격려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고 오늘 하루 충실히! 하루하루 오늘 여기서 최선을 다해 믿고 살면, 주님은 분명 참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자주 고백성사 보속시 처방전으로 써드리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일을 시작하였다”라는 이사야서 말씀도 생각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회개한 우리들이 새롭게 시작할 일은 작은 아들이, 큰 아들이 아닌 아버지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처럼 작은 아들같은, 또는 큰 아들 같은 이들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꼭 회개하여 용서가 아니라 용서의 사랑에 항구할 때, 때가 되면 회개하겠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을 회개에로 이끈 것도, 큰 아들을 회개에로 이끈 것도 자비로운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을 제가 다시 쓴다면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사이에 둘째 아들을 넣고 싶습니다. 묵묵히 아버지를 닮아 큰 형과 작은 동생을 품에 안았던 자비로웠던 둘째 아들 예수님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쓰면서 자신을 큰 형과 작은 아우를 보완할 둘째 아들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자비하신 하느님을 닮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해졌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녀다운 삶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이 그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참 아드님 예수님을 닮아갈 때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비로소 아버지의 자녀다운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품위있는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닮게하는 행복기도문 중 한 연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저의 사랑/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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