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찾아 오시는 파스카의 예수님 -예수님과의 만남-2019.4.26.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6,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4.26.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사도4,1-12 요한21,1-14

 

 

 

우리를 찾아 오시는 파스카의 예수님

-예수님과의 만남-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이고, 사도행전 독서는 최고의회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주님을 증언하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저토록 성령 충만하여 주님을 증언하는 베드로입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먼저 찾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셨는지 오늘도 당신 사후에 실의에 빠진 당신 제자공동체를 찾아 오신 주님이십니다. 똑같은 파스카의 주님께서 오늘도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오늘 복음도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수제자 베드로이고 제자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베드로곁에는 늘 애제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원래의 고기잡이 직업으로 복귀한 이들은 밖에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허무하고 씁쓸했겠는지요. 어둔 밤, 밤새껏 노력했지만 전혀 결과가 없으니 그대로 허무한 인생을 상징합니다. 평생 노력했는데 허무만 가득 길어 올린 헛된 삶의 느낌입니다. 그러나 좌절하기는 이릅니다. 삶의 허무와 외로움은, 삶의 목마름과 배고픔은 사랑과 생명의 주님을 찾으라는 표지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들의 든든한 배경이심이 다음 아름다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뭍가에 계셨다.’

 

영혼의 태양이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동터오는 아침임을 상징합니다.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를 찾아오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파스카의 주님과 함께 할 때 말끔히 걷히는 허무의 어둠,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입니다. 밤새껏 물끄러미 제자들의 헛된 노고를 바라보며 기다렸을 주님이십니다.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좌절이나 절망은 금물입니다. 일단 멈추어 가만히 뒤돌아보면 파스카의 주님이 배경이 되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개입하여 구원하실 것입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한쪽 문은 열려있기 마련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부활하신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입니다. 배 오른쪽이 상징하는바 바로 우리 우리 삶의 자리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하여 제자들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끌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입니다. 주님 함께 하시니 허무한 인생이 충만한 인생으로 변한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던 애제자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알렸고, 수제자 베드로는 겉옷을 걸친 채 호수로 뛰어 듭니다. 얼마나 주님을 갈망했던 베드로인지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아침 식사 초대는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를 상징합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빵과 고기를 나눕니다.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만이 제자공동체의 살아 있는 중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역시 이 거룩한 아침미사식탁에서 주님 친히 나눠 주신 말씀과 더불어 성체를 모십니다. 하여 파스카의 주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의 파스카의 삶입니다. 아마 복음의 제자들은 우리의 행복기도 다음 대목에 전적으로 공감했을 것입니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저의 사랑/저의 희망/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얼마전 이 행복기도를 읽던 중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라는 고백 말마디가 제일 좋다며 은은히 미소짓던 어느 자매의 아름다운 모습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이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 체험할 때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진정한 내적 변화가 뒤따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 허무한 고해인생은 충만한 축제인생으로 바뀝니다.

 

늘 함께하는 수제자와 애제자의 우정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수제자 베드로이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애제자 요한이 사도행전에서도 함께 합니다. 예전에 주님을 부인하던 겁많던 베드로가 아니라 이제 파스카의 주님을 만남으로 성령충만한 믿음의 용사가 된 베드로입니다. 하여 믿는 이들은 무려 장정만도 오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불구자를 치유했는가 심문하는 자들에 대한 베드로의 확신에 넘친 답변이 참으로 통쾌하여 전부를 인용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바로 우리의 고백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시시간 구원의 주님을 모심으로 우리 모두 새로워지고 온전해 지는 시간입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 오늘도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을 살도록 합시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 날이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118,22-24). 아멘.

 

 

 

 

 

 

 


Articles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