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壁이 변하여 문門으로!” -평화, 파견, 고백-2019.4.28.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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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8.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사도5,12-16 묵시1,9-11ㄴ.12-13.17-19 요한20,19-31

 

 

 

“벽壁이 변하여 문門으로!”

-평화, 파견, 고백-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주일에 대한 유래가 각별하여 잠시 읽은 내용을 소개드립니다. 2000년 대희년 부활 제2주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하느님 자비의 사도’라 불리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1905-1938) 수녀를 시성하시면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성녀께서는 초등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십대부터 가정부 생활을 하다가, 20세에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여, 33세에 세상을 마칠 때까지 주님의 자비를 깊이 묵상하고 ‘자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증언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읽다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33세 짧은 나이에 선종하셨다는 내용에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새삼 공부 많이 하여, 또 오래 살아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자극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성인성녀들의 생애에서 제가 필히 확인하는 것은 생몰生沒연대와 산햇수입니다. 저보다 적게 사셨나 많이 사셨나 헤아려 보며 삶을 추스르곤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역시 파스카의 예수님과 함께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참 좋은 선물입니다. 사실 주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 모두의 평생과제이기도 합니다. 루가복음중,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말씀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흡사 부활 제2주일 자비의 문이 활짝 열린 듯 합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당신 자비의 문을 활짝 여시고 우리 모두를 이 거룩한 부활 제2주일 파스카 미사 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대할 때면 저는 수십년전 강론 제목이 생각납니다. 그후로도 자주 이용한 강론 제목입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입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 참 놀랍고도 반가운 기적입니다. 바로 주님을,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의 기적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 절망의 벽은 희망의 문으로, 죽음의 벽은 생명의 문으로, 어둠의 벽은 빛의 문으로 바뀝니다. 마음의 벽은 점차 넓은 마음의 문으로 바뀝니다. 

 

참 신기하게도 화낼 때는 벽같았던 얼굴도 웃으면 활짝 열린 문처럼 보이는 얼굴입니다. 사람도 벽같이 답답한 사람이 있고 문같이 시원한 사람도 있습니다. 살아갈수록 마음 벽은 커지고 마음 문은 좁아지지는 않는지, 또는 마음 문은 넓어지고 마음 벽은 좁아지지는 않는지 주의 깊게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 답은 파스카의 주님뿐입니다. 주님께는 벽이 없습니다. 주님은 “나는 문이다”라 선언하셨습니다. 하여 주님이 오시면, 주님과 만나면 우리의 벽은 문으로 변합니다. 오늘 복음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오시니 두려움의 벽이 평화의 문으로 변했습니다. 놀랍고 반가운 기적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을 제자들을 통해, 우리를 통해 벽을 문으로 바꾸십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나니 흡사 벽이 문으로 변한듯한 축제 분위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과 또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이들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몰려들었는데, 이들 모두 병이 나았다 하니 바로 주님을 만남으로 벽이 문으로 변한 기적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와 똑같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벽을 활짝 열린 문으로 바꿔주시고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하시며 참 좋은 선물을 주십니다.

 

첫째, 평화의 선물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거푸 세 번이나 우리 마음 벽을 문으로 바꾸신후 들어오신후 맨먼저 주심 참 좋은 선물이 평화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참 눈물겹도록 반갑고 고마운 선물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전쟁에 이겨 얻을 수 있는 평화도 아닙니다. 만들 수도, 쟁취할 수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순전한 주님의 선물인 평화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니 평화와 더불어 기쁨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바로 주님을 만날 때의 이 평화와 기쁨의 선물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처럼 자비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정말 파스카의 사람들은 평화와 기쁨의 사람들이요 우리가 이웃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평화와 기쁨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 단풍나무 배경의 예수님 부활상을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과 더불어 오늘 복음의 “평화가 너희와 함께!”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만이 두려움을 몰아내기 때문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 주님 평화의 빛에 사라지는 두려움과 불안의 어둠이요, 두려움과 불안의 벽은 활짝 열린 주님 평화의 문이 되어 버립니다.

 

둘째, 파견의 선물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끊임없는 파견의 여정, 떠남의 여정, 탈출의 여정입니다. 주님 친히 파견하시고 우리의 파견 여정에, 떠남 여정에, 탈출 여정에 늘 함께 하십니다. 막연한 파견이, 떠남이, 탈출이 아니라 평화의 사람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용서의 사람으로서 파견이요 떠남이요 탈출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우리에게 숨을 불어 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말씀인지요. 두려움의 벽은 활짝 열린 평화의 문이 되었고, 주님은 이어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하시니 죄의 용서와 더불어 성령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 주님은 우리 모두 평화의 사람, 성령의 사람, 용서의 사람으로 파견하십니다. 날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평화의 사람, 성령의 사람, 용서의 사람이 되어, ‘아버지의 집에 歸家하기 까지’ 주님과 함께 파견의 여정, 떠남의 여정, 탈출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해야 함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고백의 선물입니다.

고백도 선물입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도대체 선물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가 평생 매일 쓰는 강론도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여 저절로의 응답이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작년 어느 형제가 평신도 신학자 페이스 북에 나온 제 강론 글에 대한 평을 보내 주었습니다. 저에게 참 좋은 선물입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용기를 내어 인용합니다.

 

-1949년 출생으로 내년 서품 30년 되는 수도회 신부다. 매일 새벽2시-4시 설교를 쓴다, 평생 하루도 설교 작성을 빼놓지 않았다. 설교 깊이가 남다르다. 그저 그렇고 그런 설교가 아니다. 루가복음 저저 스타일 설교다. 쉽고 아름답고 울림있는 언어를 쓴다.-

 

제 설교에 대한 칭송처럼 ‘깊고, 쉽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을 제 삶의 좌표로 삼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했습니다. 이어지는 필자의 수도원에서의 깨달은 점도 귀하고 고마워 인용합니다. 이런 진솔한 고백도 참 좋은 선물이 됩니다.

 

1.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2.오지랖은 넓히지 말고 줄여야 한다.

3.하고픈 말보다 해서 안될 말을 먼저 분간하자.

4.할 수 있는 일도 다 하지 말고 줄여야 한다.

5.중요한 일에도 순서가 있다.

6.시간, 관심 아껴 공부하자.

 

고백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가장 중요한 고백이 삶의 중심이신 파스카의 주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복음의 토마스를 통해, 묵시록의 요한을 통해 배우는 고백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사도 토마스가 파스카의 주님을 만났을 때 저절로 흘러 나온 주님께 대한 고백은 그대로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사도 요한 덕분에 우리 파스카 예수님의 귀한 고백을 듣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지고 있다.”

이런 사도들의 고백이 우리를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복된 사람으로 만듭니다. 다음 복음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들은 곳곳에 널려 있으니 얼마든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저절로 나오는 행복기도입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은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우리의 벽이 변하여 ‘평화의 문’, ‘자비의 문’이 되게 하시고 참 좋은 평화의 선물, 파견의 선물, 고백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저절로 흘러 나오는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입니다. 주님께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마음의 벽은 마음의 문으로 변합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시편118,1.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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