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원한 길이자 길벗이신 예수님 -주님과 우정의 여정-2019.5.3.금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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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3.금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1코린15,1-8 요한14,6-14

 

 

 

우리의 영원한 길이자 길벗이신 예수님

-주님과 우정의 여정-

 

 

 

어제 미사시 입당성가 244장 4절이 생각납니다.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

 우리 어머니와 함께 주를 사랑하니/영원하옵신 천주 뵙게하옵소서.”

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파스카 축제인 미사를 통해 우리 어머니와 함께 영원하옵신 하느님 아버지를 뵙는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순교 축일입니다. 입당송도 은혜롭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사람들을 참사랑으로 뽑으시고, 영원한 영광을 주셨네. 일렐루야.” 읽던중 ‘참사랑’을 ‘참사람’으로 착각했지만 참사랑의 사람이 참사람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미사중 본기도 역시 마음에 와닿습니다. “하느님, 해마다 필립보와 야고보 사도 축일을 기꺼이 지내게 하셨으니,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히 하느님을 뵈옵게 하소서.” 

 

성자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즉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영원히 하느님을 뵈옵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이미 지금부터 주님을 뵈옴으로 누리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두 순교 사도를 묵상하던중 문득 떠오른 요한복음 15장 12-14절 말씀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당신 친구들인 사도들과 무수한 성인들은 물론 우리를 사랑해 목숨을 바친 예수님이요, 영원한 친구, 예수님을 사랑해 목숨을 바쳐 순교한 사도들이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교 성인들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예수님은 당신의 친구가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보다 큰 영예도 큰 행복도 없을 것입니다. 저절로 예수님의 친구답게 살아야 겠다는 자각이 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4) 말씀처럼, 당신 친구인 우리가 당신 이름으로 청하면 다 이루어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서두 말씀도 참 아름답고 좋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자기계시에 근거한 요한 복음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최고봉이자 요약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뵌 것이다.”

 

당시의 제자들뿐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요셉수도원에서 제가 ‘하늘과 불암산’ 다음 가장 많이 바라보는 것이 정문에서 주차장까지 난 수도원길 하늘길입니다. 저는 이 수도원길을 하늘길이라 명명합니다. 참 많이도 주님과 함께 ‘걸었고’ ‘걷고’ ‘걸’ 하늘길 수도원길입니다. 또 가장 많이 카톡 사진을 찍어 전송한 사진일 것입니다.

 

아버지께 이르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 하늘길은 예수님뿐입니다.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길을 잃어 방황입니다. ‘길은 어디에?’,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도반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아버지께 이르는 하늘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길이자 길벗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주님과 우정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오늘의 강론 제목입니다. 참 강론중 많이도 택했던 좋아하는 말마디가 ‘여정旅程’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막연한 삶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한 여정중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예닮의 여정’이라 칭합니다. 과연 날로 영원한 도반이자 길벗인 예수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여정, 예닮의 여정인지요? 믿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분명하고 중요한 사실은 없습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필립보의 청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세례받아 예수님과 함께 지낸지가 얼마나 되는지요? 수도원 입회하여 주님의 집에 산지도 수십년이 지났는데 주님을 몰라 주님을 뵙게 해 달라면 참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우정의 여정이, 예닮의 여정이 깊어지면서 영안靈眼이 활짝 열려 영원한 길이자 길벗이신 주님을 통해 아버지를 뵙는 우리들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주님과 우정의 여정중 믿음도 사랑도 깊어져 예수님을 닮아갈 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대로 주님의 일이 될 것이고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파스카의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모두 파스카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설 것을 당부하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시어 사도들에게 나타나셨다.’는 파스카의 복음입니다. 파스카가 답입니다.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축제,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행복, 파스카의 평화 등 끝이없습니다. 

 

파스카의 은총이 날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해 줍니다. 싱그럽고 향기로운 5월의 신록처럼 주님과 우리의 우정도 늘 그러할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날로 당신과의 우정을 깊이해 주십니다. 자주 예로 들었던 ‘행복기도’를 이제부턴 ‘예닮기도’로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예닮기도 첫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사랑합니다/찬미합니다/감사합니다/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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