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주님의 선물, 만남의 선물-2019.5.9.부활 제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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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9.부활 제3주간 목요일                                                                                       사도8,26-40 요한6,44-51

 

 

 

우리의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주님의 선물, 만남의 선물-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수없이 피정강의나 미사강론 때 나눴던 주제입니다. 오늘 강론을 고뇌하며 묵상중 새벽 잠자리에서 떠오른 주제가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주님의 선물, 만남의 선물-”입니다. 생각해보니 사제서품후 만30년, 평생 매일 새벽마다 쓴 강론도 순전히 선물임을, 주님의 선물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전에 처음에는 머리로 썼다가 다음에는 마음으로 썼고 지금은 엉덩이로 씁니다. 강론쓸 때마다 실감하는 가난이요, 쓰고 난 후에는 저절로 강론 선물에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놀라운 것이 하느님 사랑의 찬미와 감사의 기적의 은총입니다. 무거운 짐을 하느님의 선물로 바꿉니다. 심지어 병, 실패, 고통, 아픔, 죽음까지도 하느님의 선물로 바꿉니다. 하여 끊임없이 마음을 다해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시편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런 '삶은 선물'이라는 자각에서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사랑의 찬미와 감사이니 말 그대로 선순환善循環입니다.

 

삶은 선물인가 짐인가?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웃으며 선물이라 대답하지만 곧 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적으로는 선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잘 나갈 때는 선물이지만 막혀 답답할 때는 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젊고 힘있고 재능있고 돈있으면 선물처럼 느껴지는 인생이겠지만 늙고 힘없고 재능도 돈도 없으면 인생은 짐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형편이 좋을 때면 선물이지만 불편하고 힘들면 버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아내는, 자녀들은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물으면 “선물입니다.” 웃으며 대답하지만 내심은 짐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기도가, 사랑이 답입니다. 기도하면 선물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짐입니다. 사랑하면 선물이고 사랑이 식으며 짐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세상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요, 함께 사는 형제들, 매일 만나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선물중의 선물이 만남의 선물이요, 만남중의 만남의 선물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행복기도중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하늘 나라/천국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분명해집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형제들 하나하나가 바로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주신 선물들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하느님 보내주신 선물들인 형제들인지요. 바로 존엄한 인간품위의 근거가 됩니다. 무엇보다 참 좋은 최고의 하느님 선물이 영원한 생명이란 생명의 빵, 믿음의 선물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니 참 좋은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이 주님과의 만남이요 만남을 통해 얻는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의 선물인 주님을 모시는 시간입니다. 

 

선물도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짐이 되어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부끄럽게도 옷들의 짐으로 가득 채워진 제 옷장이요 책들의 짐으로 가득 채워진 제 집무실이네요. 집안을 살펴보세요. 불필요한 소유의 짐이 얼마나 되는지! 무거운 소유의 짐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니 안팎의 정리정돈은 영성생활에 필수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선물은 영원합니다. 늘 새로운 주님과 만남의 선물이요, 늘 새롭게 모시는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의 선물인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도 이웃에게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도 이웃에게도 나에게도 짐이 아닌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로 살면 얼마나 좋고 아름답겠는지요? 이보다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도들이 성인들이 바로 하느님 선물들의 빛나는 모범입니다. 주위를 무겁고 어둡게 하는 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주위를 가볍게 밝게 하는 선물같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필리포스는 얼마나 멋진 하느님의 선물인지요! 온통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같은 존재가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선물하지 않습니까? 참 매력적인 필리포스는 주님의 사람이자 성령의 사람입니다. 주님과 일치되어 성령따라 살 때 참 멋지고 매력적인 주님의 선물같은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성령따라 집착없이 떠날 때 잘 떠나는, 모두에게 주님의 참 좋은 선물 역할에 충실한 멋지고 매력적인 주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 필리포스입니다. 성령따라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홀연히, 초연히 떠나는 필리포스와 세례를 통해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의 부활한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하나가 된후 기쁘게 떠나는 내시의 모습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요. 그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간 내시에게 행복한 ‘선물의 여정’, ‘예닮의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봅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기쁨과 평화를 선물하는 주님의 선물같은 존재가 된 내시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랑스런 선물들입니다. 이웃에게 짐이 아닌!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되어 만나는 이마다 기쁨과 평화를 선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이어 모두에게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되어 성령따라, 바람처럼, 자유롭게, 복음선포에 전념하는 아름답고 멋진 필리포스에 대한 묘사입니다.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선물인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인 당신 자신을 친히 선사하시어, ‘주님의 참 좋은 선물들’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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