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여정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2019.5.10.부활 제3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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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0.부활 제3주간 금요일                                                                               사도9,1-20 요한6,52-59

 

 

 

회심의 여정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을 닮아갑니다. 회심의 여정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아갈 때 주님을 닮아 지혜와 자비, 온유와 겸손의 참 내가 되어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요즘 수도원 주변의 풍경이 장관입니다. 이 나라의 어디나 5월은 아름답지만 수도원도 참 아름답습니다. 하늘길이라 칭하는 수도원길을 걸으며 어제도 어린이날 노래를 불렀고, 수도원 십자로 중앙의 신록의 단풍나무를 배경한 예수님 부활상에서 잠시 멈춰 묵상도 했습니다.

 

-늘/봐도/늘 좋고/늘 새로운/하늘길/되고 싶다-

-늘/당신의/푸른 사랑/배경이/되고 싶다-

 

아주 짧은 글도 아름다운 하늘길, 예수부활상 사진과 함께 나눴습니다.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을 통해 늘 좋고 새로운 하늘길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을 통해 예수님 부활상 배경의 단풍나무처럼 우리 또한 사랑하는 주님의 늘 푸른 배경이 되어 주님 중심으로 살 수 있습니다.

 

회심이 답입니다.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을 통해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예수님을 닮아 참 내가 됩니다. 오늘 바오로의 회심 일화는 늘 읽어도 신선한 충격입니다. 하느님 섭리의 여정안에 있는 바오로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어찌 바오로뿐이겠습니까? 우연한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하나 모두가 하느님 섭리 안에서 회심의 여정에로 불림받고 있습니다. 바오로의 회심이 참으로 극적입니다. 하느님은 결정적인 때를 기다렸다 때가 무르익자 바오로를 회심으로 이끕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참 감동적인 부활하신 예수님과 사울의 만남입니다. 사울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지요. 박해받는 제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새삼 믿는 이들의 공동체 형제 하나하나와 일치되어 있는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믿는 형제들에 대한 행위는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께 하는 행위입니다. 이어 주님은 당신의 제자 하나니아스에게 이르십니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보여 주겠다.”

 

사울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호오, 우열의 비교가 있을 수 없는 용도가 다 다른 유일무이한 고유의 주님이 선택한 그릇입니다.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이 선택한 그릇이란 자각도 심화될 것이며 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성소를 돌 볼 것입니다.

 

이어 하나니아스를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 사울입니다. 하나니아스의 안수와 더불어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됩니다. 이어 일어나 세례를 받고 복음 선포의 일꾼이 된 사도 바오로입니다. 이제 예전의 사울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 본격적으로 회심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오른 사울입니다.

 

사람마다 회심의 여정은 다 다릅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극적인 회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회심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한 두 번의 회심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죽어야 끝나는 회심의 여정입니다. 바로 평생의 회심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오늘 복음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세례성사로 끝난 것이 아니라 평생 계속되야 하는 성체성사입니다. 바로 미사은총이 회심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줍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체험을 가리키는 성사적 거행의 성체성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무슨 일을 하든 우리의 전삶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선포, 성사 참여, 사랑 실천에 항구한 삶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체성사적 삶이요 성체성사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온전한 회심의 여정이 됩니다. 바로 이런 대표적 인물이 종파를 초월한 현대의 성자로 칭송받는 라르슈 공동체의 창시자 장 바니에로 바로 지난 5월7일 90세로 선종하셨습니다. 장 바니에의 생전에 있었던 감동적인 인터뷰 기사를 나눕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연민compassion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연민의 사람'이 된다면 너희는 예수님과 같아질 것이다. 나는 복음의 전 비전은 기쁨이라 생각한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하느님은 현존하신다. 그렇다 하여 악과의 투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폭력이 존재한다. 내 안에도 우리 모두 안에도 폭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욱 강하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도우신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

 

단순하고 진솔한 20세기 성자 장 바니에의 고백입니다. 회심의 여정에 항구할 때 주님의 은총으로 예수님을 닮아 연민의 사람,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파스카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심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시편117,2ㄱ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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