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파스카의 삶 -어둠에서 빛으로, 아픔에서 기쁨으로-2019.5.15.수요일 성 파코미오 아빠스(290-347)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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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5.수요일 성 파코미오 아빠스(290-347) 기념일 

사도12,24-13,,5ㄱ 요한12,44-50

 

 

 

 

주님의 파스카의 삶

-어둠에서 빛으로, 아픔에서 기쁨으로-

 

 

 

 

바야흐로 아까시아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산채중 감미롭고 그윽한 아까시아 꽃향기가 성모님의 향기, 파스카 주님의 향기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신림초등학교 20대 중반 교사 초임지 시절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불렀던, “동구밖 과수원길 아까시아 꽃 활짝 폈네”로 시작되는 '과수원길' 노래가 생각납니다. 당시 초임지 학교 교장님은 이 곡을 작곡하신 작곡가 김공선 교장님이었습니다. 오늘은 낮에 산책시 이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삶의 신비는 참 깊습니다. 파스카 신비를 깊이 깨달아 알수록 풍성한 은총에 영원한 기쁨입니다. 주님의 파스카만이 삶의 신비에 대한 유일한 답입니다. 어제 한 자매가 손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했고 두 분 지인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호스피스 센터에서 임종자들을 돌보는 수녀님으로부터 “선종하셨습니다. 아름답게!”짧은 메시지를 받았고, “아름답게요! 아, 감사합니다.” 바로 답을 드렸습니다. 바로 제 사랑하는 도반 사제의 모친이였습니다. 즉시 사제로부터도 소식도 받았습니다.

 

“수사님, 어머니가 방금전 편안하게 선종하셨습니다. 강일지 마리아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신부님, 최선을 다하셨고 어머님도 아프고, 외롭고, 힘든 세상 힘껏 사셨기에 주님 친히 위로와 평화의 구원을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기도와 미사봉헌합니다.” 

답신 보낸 후 아름다운 수도원길 사진 보내며 위로했습니다.

“하늘길 따라 주님께 가셨습니다!”

 

참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제 마침 묵상 중 제 생애에 대해 묵상하면서 선명히 떠오르는 일관된 주제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수도형제들 하나하나 살펴보니 역시 숨겨진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면담성사를 주다 보면 거의 대부분 상처로 아파하는 분들입니다.

 

아픔이 답이 아니라 기쁨이 답입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 고통의 아픔은 기쁨으로, 어둠은 빛으로, 절망은 희망으로 바뀝니다. 파스카의 은총으로 아픔에서 피어나는 기쁨의 꽃입니다. 성인들에게도 아픔의 고통은 늘 따랐고 고통중에서도 늘 기쁘게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신비를 살았던 성인들이며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공주수도생활의 아버지라 칭하는 이집트의 빠코미오 아빠스 역시 그 모범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5월15일은 우리 수도원의 원장인 최빠코미오 신부의 영명축일이고 스승의 날이자 세종대왕의 탄신일이기도 합니다. 마침 40년전 초등학교 제자가, 지금은 50대 중반의 성실하고 열심한 천주교 신자가 된 제자가 자그마한 액자에 넣어 선물한 스승의 날 노래가 생각납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말로 다할 수 없는 선생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우초등학교 1회 6-1반 임혜정 올림-

 

어린이날 노래처럼 동심에 젖게 하는 스승의 날 노래입니다. 오늘은 ‘스승’대신 ‘주님’을, 파스카의 주님을 넣어 산책 중 부르려 합니다. 파스카의 주님께서 친히 위로와 치유를, 기쁨과 평화를 주시니 다시 힘을 얻어 살 수 있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도 우리에게 큰 기쁨과 힘이 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느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보는 것이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도 선물이요 동시에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누구에나 주어진 은총의 선물이지만 이런 주님을 활짝 마음 열고 받아드려야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어둠속의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니 심판은 주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자초한 화임을 깨닫습니다. 똑같은 환경도 주님을 향하여 활짝 개방하여 맞아들일 때는 천국이지만 주님께 마음을 닫아 걸고 등을 돌릴 때는 지옥이 됩니다.

 

결코 아픔이, 슬픔이 답이 아닙니다. 파스카의 주님을 만날 때 아픔은 평화로 슬픔은 기쁨으로 어둠은 빛으로 바뀌니 그대로 치유의 구원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랑입니다. 하여 장례미사가 하늘나라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여 저는 제 장례미사때 입당송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를, 퇴장송은 대 대레사의 ‘아무것도 너를’ 불러달라 할 것이며 강론 대신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 좌우명 애송시를 읽어달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장례미사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축제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주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르나바와 사울은 그대로 파스카의 사람들입니다. 빛으로 오신 파스카의 주님을 닮아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니 그대로 사도들은 빛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사도들’, ‘말씀의 사도들’, ‘빛의 사도들’, ‘교회의 사도들’인 바르나바와 사울입니다. 마지막 대목이 그대로 이를 입증합니다.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살라미스에 이르러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사도들뿐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 역시, ‘성령의 사람’ ‘말씀의 사람’, ‘빛의 사람’ ‘교회의 사람’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주님을 닮은 파스카의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어 당신 빛의 사람들로, 평화의 도구로 어둠과 전쟁의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바로 다음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파스카의 사람들입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쓰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그릇됨이 있는 곳에 참됨을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나를 잊음으로써 나를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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