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일치 -기도, 중심, 사랑-2019.6.6. 부활 제7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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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6.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사도22,30;23,6-11 요한17,20-26

 

 

 

공동체의 일치

-기도, 중심, 사랑-

 

 

 

어제 봉사하는 자매들이 수도원내 앵두를 모두 땄습니다. 오늘 앵두쨈을 만들 것입니다. 흰눈물 같은 슬픔의 꽃자리마다 다닥다닥 열린 빨간 사랑의 앵두 열매들이었습니다. 시편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시편126,5) 라는 성구도 생각났습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기쁨을 연상케 하는 빨간 사랑의 앵두 열매들이었습니다. 

 

눈만 열리면 도처에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생명들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들입니다. 채소밭의 착하게 자라나는 갖가지 채소들, 점차 불어가는 배열매들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들입니다. 아주 예전에 써놨던 앵두란 시가 생각납니다.

 

-“사랑합니다!/마침내/빨간 열매로/사랑을 고백하는/앵두나무

초록빛 나뭇잎들/믿음 사이로/수줍게 살며시/얼굴 내밀고

사랑을 고백하는/빨간 앵두 열매들/부끄러워 빨갛게 물들었네-

 

흡사 사랑을 고백하는 빨간 사랑의 열매들 앵두처럼 생각되어 썼던 동시같은 글입니다. 기도의 열매, 기쁨의 열매, 사랑의 열매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이런 열매들이요, 눈이 열려야 온통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임을 발견합니다.

 

제가 외출할 때 자주 보는 것이 불암산으로부터 발원된 시내입니다. 비가 오면 맑은 물인 데 좀 가물었다 하면 바짝 마른 내가 참 볼품이 없습니다. 늘 맑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의 시내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느님 향해 노래하며 흐르는 맑은 시냇물같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은, 마음은 말라 버려 가뭄에 바짝 마른 시내처럼 되어 버립니다. 보이는 시내는 가뭄으로 말라도 마음 만은 끊임없이 맑은 시냇물로 흘러야 합니다. 

 

저 역시 맑게 흐르는 시냇물 같은 마음으로 살고자 매일 강론을 씁니다. 강론을 멈출 때 흡사 말라 버린 마음의 시내가 될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매일 강론을 읽는 분도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마음의 시냇물로 살고자 하는 소망 때문일 것입니다. 소망하니 생각이 나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늘병원에 근무하는 분과의 대화입니다.

 

-"여기 하늘병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친절한 것 같습니다."

“우리 하늘 병원의 모토는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친절, 봉사입니다.”-

 

정말 믿음, 소망, 사랑, 친절, 봉사 다섯 가지를 삶의 중심에 두고 일한다면 말 그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병원'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답은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간절히 절실히 기도할 때 늘 생생한 믿음, 소망, 사랑, 친절, 봉사의 정신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 같은 영혼에 기도가 답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때 맑게 흐르는 강같은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독서의 바오로, 모두가 기도의 대가이자 달인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이 기도가 원활해야 생명과 사랑의 넘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전 고별기도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수없이 반복되는 아버지라는 호칭입니다. 얼마나 아버지와 친밀한 소통관계에 있는 예수님이신지요. 예수님의 기도에 비하면 우리의 기도는 참으로 초보자 수준임을 깨닫습니다. 믿는 이들이 모두 당신 사랑 안에서 일치되어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획일적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랑의 일치입니다. 이런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수도생활은 함께 사는 것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함께 사는 것이고, 함께 사는 것이 도닦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함께 사는 것은 답이 없습니다. 기도하며 늘 새롭게 시작하는 길뿐입니다. 기도는 기술이 아나라 사랑입니다. 서로 좋아서, 성격이 맞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며 사랑을 새로이 하기에 공동체의 일치요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함께 바치는 기도를 통해 주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참으로 기도해야 주님의 계명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기도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워야 그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중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 다음 한 구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있게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인 우리의 구원과 영광이 이뤄지기 위해 우리도 기도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워도 부족한 기도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기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가 온갖 산전수전 고통중에도 한결같은,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지혜롭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에 있었음을 봅니다. 다음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의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해야 한다.”-

 

나이들어 장수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럽고 두려운 노욕과 노추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청춘의 젊은 영혼으로 품위있게 살아야 육신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이 오늘 강론의 결론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늘 기도해야 늘 기쁨이요 늘 감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고백성사 보속 처방전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성구입니다. 행복과 공동체 일치의 비결이 바로 이 말씀의 실천에 달렸고, 치매예방에도 최고의 처방약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 주시고,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어 주시며, 우리 모두 기도생활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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