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에 담긴 보물 -순수의 힘, 사랑의 힘, 예수님의 생명-2019.6.14. 연중 10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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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4. 연중 10주간 금요일                                                                  2코린3,15-4,1.3-6 마태5,27-32

 

 

 

질그릇에 담긴 보물

-순수의 힘, 사랑의 힘, 예수님의 생명-

 

 

 

오늘 복음의 주제는 선명합니다. 어제 ‘성내지 마라’에 이어 오늘 복음은 ‘간음하지 마라’, ‘이혼하지 마라’ 둘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실제적인 이 말씀이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라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마침 어제 어느 형제와 함께 잠시 동행하게 되어 대화를 나눴습니다.

 

“형제님은 부부싸움 한 적 있습니까?”

“수십년 살면서 왜 싸움 한 적 없겠습니까? 그러나 심하게 싸운 적은 없습니다.”

 

부부간 신의를 지키며 충실히, 항구히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이좋게 사는 분들을 대하면 저절로 고맙고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성인입니다. 정말 노년에도 부부일치의 모범을 보여 주는 분들을 보면 우리 수도자와 주님간의 일치의 모범을 상징하는 듯 느낄 때도 있습니다. 

 

살인의 뿌리에 분노가 있듯이, 간음의 뿌리에 음욕이 있습니다. 어제처럼 예수님의 명령은 단호합니다. 일체의 부정적 뿌리인 마음의 정화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간음의 대죄에 앞서 음욕부터 단속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여자에 대한 모든 욕망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고 바라보는 노골적인 눈길을 단죄하십니다. 과연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런지요. 그러니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눈길을, 눈빛을 잘 관리, 보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힘든 일인지 깨닫습니다. 우선적이 것이 끊임없는 마음의 순화임을 깨닫게 됩니다. 역시 답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물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입니다. 

 

이어지는 충격적 말씀도 우리의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구체적으로 보고 만지는 눈길이나 손길로 시작됩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네 오른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는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예수님은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편이 낫다 말씀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죄의 엄중함을 일깨우는 충격요법의 말씀입니다. 새삼 사랑의 눈길, 사랑의 손길이 얼마나 본질적이고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하여 미사가 시작되자 마자 진심으로 뉘우치는 참회의 기도가 있고 영성체전 간절히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어지는 ‘이혼하지 마라’는 말씀도 불륜을 저지른 예외적인 규정을 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일치에 충실할 것을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부부간의 신뢰를 깨고 가정을 파괴하고 인격을 파괴하는 간음과 불륜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이런 간음과 불륜의 죄로 인해 깨어진 신뢰와 무너진 가정으로 인해 불행을 겪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도닦기 힘들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 에바그리우스의 8개 악덕중 첫째가 탐식의 식욕이고 둘째가 간음의 음욕입니다. 하여 수도자의 정결서원이 있습니다. 근본적 욕구인 식욕의 절제와 음욕의 절제가 직결됨을 봅니다. 간음의 음욕을 잘 다스리는데 식욕의 절제가 참으로 중요함을 봅니다. 수십년전 동료교사를 틍해 들은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남자를 패가망신으로 이끄는 것이 셋이랍니다. ‘혀끝, 손끝’ 그리고 하나인 데 말하기 거북합니다만 아실 것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사랑의 수행이 절대적임을 깨닫습니다.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라했습니다. 부지런히 깨어 일상의 모든 사랑의 수행에 충실함으로 마음을 순화하는 일입니다. 이런 사랑의 수행과 더불어 선사되는 내적 힘이 바로 사랑의 힘, 순수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질그릇 같이 허약한 우리 안에 담겨진 예수의 생명이란 보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질그릇같은 우리 안에 지닌 보물은 사랑의 힘, 순수의 힘, 예수님의 생명,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하여 우리는 바오로처럼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고 다니지만, 우리 몸에서는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납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힘이, 파스카의 영성이 백절불굴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순수한 사랑에는 결코 죄가 기생寄生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을 가득 채워주시어 우리 모두 순수한 마음으로 파스카 신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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