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2019.6.19.수요일 성 로무알도 아빠스(951-1027)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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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9.수요일 성 로무알도 아빠스(951-1027) 기념일 

2코린9,6ㄴ-11 마태6,1-6.16-18

 

 

 

하느님 중심의 삶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

 

 

 

오늘 분도회는 특별히 가말돌리 수도회의 창립자인 성 로무알도 아빠스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은수자로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정진했던 성 로무알도 아빠스였습니다. 아침 성무일도시 아름다운 찬미가중 한연입니다.

 

-"오로지 외길 따라 그리스도만/선선히 뒤따르며 다짐한 성인

세속이 선보이던 쾌락과 재물/덧없는 그런향락 매정히 끊네."-

 

저는 수행자란 말을 선호합니다. 비단 수도자들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수행자입니다. 일상의 모두가 수행아닌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수행자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여 오늘 강론 주제도 ‘하느님 중심의 삶-올바른 수행자의 자세-’로 정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을 배려한 화답송 시편 112장이 참 은혜롭습니다. 관련된 부분을 최민순 신부님 번역으로 묵상합니다. 오로지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에 대한 축복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줍니다. 

 

-“복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여/당신의 계명을 큰 낙으로 삼는 이여

재산과 부요함이 그의 집에 있고/그 의로움이 항상 남아 있으리라

 

인자하고 자비롭고 의로운 그는/어둠 속의 빛처럼 바른 사람을 비추도다

복되다 인정있고 꾸어주는 사람/올바로 자기 일을 처리하도다

 

흔들림이 항상 그에게 없고/언제나 의인으로 기억에 남기리라

언짢은 소식에도 그는 아니 놀라니/주께 바라는 그 마음 든든하여라.”-

 

요즘 기생충 영화가 화제입니다. 많이 마음 불편하게 하는 영화랍니다. 이런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부자들이라면 양극화 문제도 많이 해결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부자들이라면 가난한 이들을 기생寄生이 아닌 공생共生과 상생相生해야 할 존귀한 형제들로 대할 것입니다. 알고 보면 부자나 가난한 이나 하느님께, 지구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독점이 아닌 함께 나누며 사는 공생과 상생이 답인 것입니다. 죄우간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줄줄이 따라오는 덕임을 깨닫습니다.

 

예전 은퇴후 양로원에 계신 아빠스님께 들은, ‘낙이라곤 미사 하나 뿐인데 내가 이 노인들 놔두고 어찌 휴가갈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갈수록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향하는 신심 깊은 노인들의 하느님 사랑은 그대로 미사 사랑으로 직결됨을 봅니다.

 

성령칠은 중 ‘두려움(경외)’을 다시 뽑았습니다. ‘두려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경외심을 가지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하는 은혜’로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경외심보다는 두려움이 적절한 느낌입니다. 정말 까맣게 잊고 지내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입니다.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 경외를 가르치고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를 가르치고 현대인들은 지식을 가르친다는 말도 생각이 납니다.

 

우선적인 것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의 회복입니다. 하느님 앞에 두려워할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실종된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삶은 깊어지고 안정과 평화가 있습니다. 참으로 초연할 수 있고 참된 진실과 겸손도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사람중심이 아닌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올바른 수행입니다. 위선과 허영이 없습니다. 외적이고 부수적인 것이 아닌 내적이고 본질적인 삶을, 껍데기의 허영이 아닌 알맹이의 진실을 추구합니다. 참 멋있고 매력적인 삶입니다. 외적이고 부수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삶이 허전하고 허무한 것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바로 불가의 큰 스님 성철 스님이 극찬하셨던 대목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단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외적으로는 평범해 보이나 내적으로는 비범한 깊이의 삶입니다. 후렴처럼 반복되는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두고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비로소 올바른 수행자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마음 깊이 하느님 보물을 간직한 자들입니다. 

 

저절로 진실하고 겸손한 삶에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자선의 삶입니다. 마를 줄 모르는 깊은 샘같은 삶에 내적 평화와 안정의 삶입니다. 하여 이런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내적 부요의 사람들은 다음 바오로를 통한 주님 말씀에 즉시 공감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하느님 중심의 삶에 저절로 따라오는 풍성한 은총들이요 자발적 자선과 선행을 통해 더욱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연유됨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항구히 당신 중심의 초연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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