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所願 -영원한 현역의 주님 전사戰士로, 학인學人으로 사는 것-2019.6.20.연중 제11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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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0.연중 제11주간 목요일                                                                               2코린11,1-11 마태6,7-15

 

 

 

단 하나의 所願

-영원한 현역의 주님 전사戰士로, 학인學人으로 사는 것-

 

 

 

얼마전 수도원에서는 강사를 초빙하여 약1시간 정도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습니다. 심장기능이 정지되고 호흡이 멈추니 즉시 죽어가는 뇌세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 기도는 영혼의 심장heart과 폐lung와 같구나!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도 서서히 죽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교황님의 강론이 생각났습니다.

 

“기도는 모든 세대 제자들에게 호흡을 주는 폐와 같다. 기도없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살 수도 없다.” 하여 기도가 끊이지 않는 주님의 집인 수도원은 세상의 심장과 같고 폐와 같다고도 합니다.

 

저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죽는 그 날까지 영원한 현역의 주님 전사로, 주님 학인으로 살다가 전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하는 것입니다. 사고사나 병사 객사가 아니라 전사입니다. 기도하다가 일하다가, 또는 공부하다가 죽는 전사입니다. 戰死해야 전사戰士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삶도 은총이지만 죽음도 은총입니다. 이렇게 공표함은 하느님께서 꼭 기억해 주십사 하는 열망에서입니다. 

 

바로 죽는 그날까지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맑게 흐르는 강으로 사는 것입니다.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의 안주가 아니라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내적여정의 강으로 정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자작 좌우명시 다음 연이 제 소망을 대변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만이 믿는 이들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지난 과거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입니다. 과거의 영화에 연연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며 자랑스럽지도 수행자답지도 못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잘 살았어도 지금 무너져 내려 멈춰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기도 잘 하고 공부 잘 하고 일 잘하고 강론 잘하고 했어도 지금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라는 말이 있는 데 진짜 살면 ‘나이 70에 죽어 70에 묻혀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관리 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하여 피정자들에게 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해 강조하는 세 우선 순위가 ‘1.하느님 믿음 관리, 2.건강관리, 3.돈관리’입니다. 어제 독서 하던중 감동적인 부분을 나눕니다.

 

“기도와 노동. 이 일에만 평생을 바쳐 집중한 이들이 물론 많을 게다. 나는 한 사람은 확실히 안다. 바로 내 어머니다. 아버지를 따라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한 어머니는 평생을 기도와 노동에 몰두한 삶을 사셨다. 올해로 아흔여섯의 노령이지만 지금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교회의 새벽 제단 찾는 일을 거르지 않으며 틈만 나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다. 그리고 늘 몸을 움직이며 뭔가를 하신다. 내 어릴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 떠나 계신 동안 어머니는 그 작은 몸을 부단히 움직이며 우리 집안을 끝내 지켰다. 자신을 철저히 버린 결과였으니, 세상 안의 수도사이자 수녀였다.”(승효상;묵상104-105쪽)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평생 하느님 찾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수도승인 저를 참 부끄럽게 하는 예화입니다. 또 하나 동유럽에 순례 여행 중인 도반이 보내 준 사진과 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물결, 황금빛 물결같은 동유럽 농촌의 지평선이 참 환상적이었습니다.

 

“보리밭, 밀밭이 만드는 황금물결의 지평선과 해바라기, 옥수수밭이 그리는 녹색의 파노라마가 왜 이리도 부러운지요! 보다 넓은 땅을 꿈꾸는 것은 기마민족의 후손들이라서 그렇겠지요.”

 

비록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정주의 삶을 살아도 기도와 공부 노동의 수행에 정진하여 하느님을 닮아갈 때 누구나 이런 내면의 지평선을 지닐 수 있습니다. 바로 믿는 수행자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하여 무엇보다 기도의 수행이 절대적입니다.

 

기도 잘 하는 비결은 따로 없습니다. 하느님을 늘 목말라, 배고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열정과 순수요 저절로 하느님 찾아 기도합니다. 삶과 기도는 하나입니다. 기도 없는 삶은 공허하고 삶이 없는 기도는 맹목입니다. 기도하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기도합니다. 나이 40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나중 남는 얼굴은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둘중 하나입니다. 예수님 앞에 가도 천국 입장에 앞서 검사하는 얼굴입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여 기도함으로 주님의 얼굴을 닮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주님을 닮게 됩니다. 하여 저는 믿는 이들의 삶을 ‘예닮의 여정’이라 정의하곤 합니다. 

 

기도는 끝이없습니다. 졸업이, 제대가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평생 기도도 배워야 합니다. 평생 배워도 늘 배워야 하는 오늘 복음의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 기도의 노하우입니다. 예수님 전 삶의 요약이요 예수님의 삶을 통해 100% 검증된 기도입니다. 

 

참 단순한 본질적 삶을 살게 하는 기도입니다. 참 사람의 하느님 자녀가 되게 하는 기도입니다. 신구약 성경의 요약같은 기도입니다. 참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끝없이 깊은 기도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느님을 닮은 참 사람이요 기도하지 않고 되는 대로 생각없이 막 살면 본능만의 짐승도 괴물도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험하고 거친 광야인생, 기도하면 성인도 될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괴물도 폐인도 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철학적인 하느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분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들이고 서로는 형제자매가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모신 인류가족인 교회입니다. 하여 주님의 기도는 함께 바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미사중 함께 주님의 기도를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바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눈후 일용할 양식인 성체를 나눌 때의 감격은 늘 새롭습니다. 그대로 주님의 기도를 요약하며 현실화하는 미사입니다. 

 

얼마전의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사촌 형제들과 여행중 함께 목욕탕에의 체험입니다. 모두 나체가 되니 참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두 비슷비슷한 얼굴에 신체의 모습에 당장은 사촌 형제들도 구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차별없는 평등한 사람들이 목욕탕을 나와 옷을 입고 소유하면서 차별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목욕탕에서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반짝 맛보는 영원한 생명의 체험 시간이 빈손, 빈 마음으로 미사중 성체를 받아 모실 때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그대로 우리 안에 육화되는 시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거처가, 성전이 되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본질적이요 필수적인 일곱의 청원입니다. 군더더기 빈말이 필요없습니다. 하느님은 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면서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가면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의 삶도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무지의 병에서 치유되고 무지의 어둠에서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를 우선 중심에 둘 때 확고해 지는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입니다. 내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삶을 분명히, 확고히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무엇하나 생략할 수 없는 모두 절박한 간청들입니다. 

 

늘 바쳐도 여전한 깊이로 남아 있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 자신의 영적상태를 환히 비춰주는 거울 같은 기도입니다. 하느님께 청원과 동시에 우리의 협력의 노력을 촉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 모두 내 맡기고 노력하지 않으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100% 내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절실합니다.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 넷을 꼽는 다면, 예수님, 신구약 성경, 미사, 주님의 기도일 것입니다. 이 넷만 있으면 어디서나 살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이런 보물들을 자기 것으로 만든 기도의 대가, 기도의 달인이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 바오로입니다. 사도의 열정과 순수, 자부심과 배려심, 대담성 모두 기도의 열매입니다. 참으로 튼튼하고 강건한 영혼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웃 형제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선물이 되는 인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답은 하나 주님의 기도를 살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여 사랑하면 선물이지만 기도하지 않아 사랑이 식으면 이웃도 나자신도 짐이 되어 버립니다.

 

“나의 이러한 자랑을 아무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아서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얼마나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고백인지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의 경지에 이른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두 아시니 오늘 지금 여기서 자유롭게, 기쁘게, 감사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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