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2019.6.23.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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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3.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창세14,18-20 1코린11,23-26 루카9,11ㄴ-17

 

 

 

예닮의 여정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생명의 빵이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와 조배드리세.”

아름다운 새벽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으로 우리 수도자들은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활짝 열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사랑의 주님은 우리 모두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모든 축일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주님 부활대축일, 주님승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대축일, 그리고 오늘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자 극치인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환히 계시된 날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참 고맙고 좋은 선물들이 이런 축일입니다. 이런 축일 선물들의 은총이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변모시킵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참 좋은 응답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앞서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기도든 삶이든 간절하고 절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저의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은 예수님을 닮는 것, 이것 하나뿐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따르는 믿는 여러분 모두의 궁극의 소망도 예수님을 닮는 것 하나뿐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신기하게도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본래의 내 모습, 내 얼굴이 드러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응답입니다.

 

어제의 체험이 새삼스러워 나눕니다. 수도원의 참 좋은 쉼터인 회심정이란 정자를 아실 것입니다. 회심정 앞을 지나면서 그윽한 향기에 뒤를, 위를 쳐다 봤습니다. 바로 연분홍 흰색깔의 은은한 자귀나무꽃 향기였습니다. 늘 이맘때쯤 되면 늘 여기 이 자리에 피어나는, 향기맡고 찾아내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자귀나무꽃 그윽한 향기입니다. 하여 작은 꽃술을 따서 만난 몇 분과도 향기를 나눴습니다.

 

꽃에는 꽃향이, 소나무에는 솔향이, 글에는 문향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향이 있습니다. 간혹 향기 맡고 알아 보는, 떠난 후에도 향기로 남아있는 좋은 분을 만나면 참 기분이 좋습니다. 믿는 이들의 향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갈수록 그윽하고 은은한 그리스도의 향기, 내 고유의 존재의 향기, 겸손의 향기입니다. 하여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닮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무지의 어둠,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에서 벗어나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성공적 예닮의 여정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선 소개해 드리는 행복기도, 일명 예닮기도를 자주, 아니 평생 매일 바치시기 바랍니다. 참 많은 이들과 나누고 추천한 예닮기도를 다시 읽어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은총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이 기도만으론 부족합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는 삶이 아니라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쌓습니까? 구체적 사랑의 수행을 통해서입니다. 절대 비범하거나 비상한 수행이 아닙니다. 깨어 평범한 일상의 내 삶의 자리에서 다음 사랑의 수행에 항구하고 충실하면 됩니다.

 

첫째, “찬미하라”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예닮의 여정중 평생 매일 끊임없이 하느님 찬미의 기도와 삶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서 착안했습니다. 

 

창세기의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 멜키체덱은 참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바로 눈밝은 신앙의 선배들은 멜키체덱이 대사제 예수님의 예표임을 알아봤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 모습이 흡사 빵과 포도주를 앞에 두고 미사를 봉헌하시는 대사제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하여 오늘 화답송 시편이 탄생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대사제 예수님의 신원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거룩한 빛, 새벽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모두 우리의 거룩하고 사랑하는 대사제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일입니다. 바로 창세기 멜키체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여러분은 복을 받으리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축복의 사랑에 대한 자연스런 응답이 찬미와 감사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찬미와 감사의 사람입니다. 세상에 찬미와 감사의 기쁨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원망, 절망, 실망의 삼망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는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쁨과 사랑의 찬미에서 샘솟는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의 삼감의 삶입니다. 

 

새삼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그래서’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찬미하라, 감사하라 주어진 인생입니다. 찬미와 감사는 하느님 창공을 자유로이 날개하는 영혼의 양날개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에 응답하여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둘째, “행하여라.”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여 미사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2독서에서 착안했습니다. 예닮의 여정중 평생, 주일은 물론이고 할 수 있는 한 자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이 파스카 신비의 절정인 이 거룩한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예수님 친히 성체성사에 충실히 참여할 것을 권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거푸 반복되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입니다. 주님을 기억하여 행하는 성체성사가 바로 주님을 닮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이 지극히 거룩한 성체와 성혈의 성체성사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사를 사랑합니다. 간절하고 절실한 사랑으로 미사에 참여하면서 주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여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성체성사의 깊이와 은총은 그대로 하느님의 깊이와 은총을 반영합니다. 바로 방금 부른 ‘성체송가’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러니 자주 미사에 참여하는 일,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성찬례는, 이 거룩한 파스카 신비의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파스카 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안에 계십니다. 마침내 지혜서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여, 당신은 백성들을 천사들의 양식으로 먹여 살리셨습니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고 기쁨을 주는 빵이었습니다.”(지혜16,20)

 

한마디로, 성체성사 미사는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자 우리 신앙의 요약이고 집약입니다. 우리의 궁극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반쪽 인생이 주님을 만나 일치해야 비로소 온전한 인생입니다.

 

성 이레네오는 이단반박이란 글에서, ‘우리의 사고방식은 성체성사와 일치하며, 성체성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확인해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것도,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음도 미사은총입니다. 

 

셋째, “나누어라.”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착안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나눔의 봉헌이 있었기에 복음의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그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십니다. 하여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남은 조각만도 열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바로 성체성사의 무한한 무상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아침 성무일도때 흥겹게 노래했던 가사도 생각납니다.

 

“당신 백성을 천사들의 음식으로 배불리셨고, 하늘의 빵을 그들에게 주셨도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 온 살아있는 빵이로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리라.”

 

사랑의 나눔, 나눔의 기적입니다. 서로 일상에서 사랑의 나눔이 생활화될 때 비로소 성체성사의 완성입니다. 예전 김지하 시인의 ‘밥이 하늘입니다’란 시가 생각납니다. 민중신학자 고 안병무 박사님이 성체성사의 핵심을 요약했다 하여 극찬했던 시입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그러니 가진 것을, 무엇보다 밥을, 바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참 큰 죄가 독점의 죄입니다. 함께 나누며 살라 주신 하느님의 선물들입니다. 예닮의 여정중 평생, 매일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며, 선행과 자선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요즘 ‘기생충’ 영화가 화제입니다.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대강의 뜻은 파악했습니다. 영화가 목표하는 바는 상생과 공생의 사랑과 지혜입니다. 외관상 기생이지 깊이 잘 들여다 보면 공생이요 상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에, 하나뿐인 지구에, 또 너에 기생하는 나이기도 하지만 하느님도 살고 우리도 살고, 교회공동체도 살고 우리도 살고, 지구도 살고 우리도 살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서로 사는 상생의 사랑이, 함께 사는 공생의 사랑이 맞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예닮의 여정중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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