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 없다! -참 좋은 영성을 위한 기도, 회개, 용서의 삶-2019.6.25.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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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5.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신명30,1-5 에페4,29-5,2 마태18,19ㄴ-22

 

 

 

영성이 없다!

-참 좋은 영성을 위한 기도, 회개, 용서의 삶-

 

 

 

종파를 초월하여 여전히 요즘도 많이 회자되는 용어가 ‘영성’입니다. 교회 안에는 ‘영성생활’이라는 계간지가 있어 1990년 창간호로 시작된 책이 57호가 됐습니다. 특히 올해는 ‘남북평화 길 내기’를 주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절실한 것이 한반도의 평화요 민족화해의 영성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독서를 하고 현실을 대하며 와닿는 마음은 ‘영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성없이, 생각없이, 영혼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겉은 화려하고, 삶은 빠르고 편해 보이는 데 속은 텅비어 있고 삶은 참 왜소하고 전혀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참 바쁜 연속 질주의 삶입니다. 너도 뛰니 나도 뛰는 것처럼 모두가 경쟁 질주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언젠가 은퇴하신 노 주교님의 병환중에 위문차 온 수녀들이 그냥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듯 하자, 눈을 뜨시더니, “열정이 없어, 열정이!”하셨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말을 바꾸어 작금의 물질주의가 만연된 세상을 향해 “영성이 없어, 영성이!” 말하고 싶습니다. 어는 건축가 역시 영성이 없는 건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지 69년이 되는 날입니다. 교회는 오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남북통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또 오늘 교회는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한반도 평화 기원미사를 봉헌합니다. 포스터 상단의 성구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주님은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새삼 참 좋은 영성은 평화의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영성생활 57호 권두언의 주제는 ‘거짓 평화를 주지 마라!’ 였고, 참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이었습니다.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 평화의 영성은 무엇이겠습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사랑입니다. 평화와 사랑의 일치는 멀리, 밖에서가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여기 나부터,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화와 사랑의 일치가 실현될 때 비로소 하늘 나라입니다. 바로 여기에 딱 드러맞는 성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정말 이런 공동체의 실현이라면 성소자는 끊임없이 줄을 이을 것입니다. 역시 답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참 평화의 영성으로 드러납니다. 사랑과 평화의 일치를 위한 영성 비결은 무엇일까요? 기도와 회개, 그리고 용서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와 일치합니다. 기도와 회개, 그리고 용서는 모두 사랑의 표현이요 이들 통한 참 평화의 열매입니다.

 

첫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역시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우리 삶은 말 그대로 기도의 여정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믿는 이들 모두의 보편적 모토입니다. 기도는 테크닉 기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의 소통이 기도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면 초목이 타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도 타들어 죽어갑니다. ‘영성이 없다!’는 현실, 바로 기도가 없다는 것이며 하느님을 잊고 지낸다는 것이며 하느님과 불통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의 단초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도 함께 기도할 것을 권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임진각에서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미사에도 주님도 함께 하시어 그 간절한 소원의 기도는 하늘까지 이를 것입니다. 마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29일 방한 하여 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비무장 지대도 찾을 것이라 하니 참 좋은 평화의 열매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둘째, 회개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에 이은 끊임없는 회개가 답입니다. 우리 삶은 말 그대로 회개의 여정입니다. 토마스 머튼에 관한 평화신문의 기사 머릿글도-‘토마스 머튼의 전 생애는 회개를 향한 여정’-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제 삶은 지속적인 회개의 삶입니다.”

 

'영성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기도가, 회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회개해야 영성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도 앎으로 무지에서 해방되어 지혜와 겸손이, 기쁨과 평화가, 자유가 뒤 따릅니다. 오늘 주님은 신명기의 모세를 통해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돌려 주실 것이다.”

 

오늘 교회가 일치하여 회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때 주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반도 한민족의 운명을 돌려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역대기 하권의 다음 말씀도 적절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자신들을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회복시켜 주겠다.”(2역대7,14).

 

셋째, 용서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용서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용서의 여정입니다. 한 두 번의 용서가 아니라 끊임없는 용서입니다. 생존을 위해 밥먹고 숨쉬듯이 영적 생존의 상생을 위한 용서입니다. 내가 살고 너도 살기 위해 밥먹듯이 숨쉬듯이 용서를 생활화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러고 보니 기도와 회개와 용서는 공동체 일치의 영성이기도 합니다. 어느 수도원 정문 위에 적혀진 라틴어 모토를 읽으니 저절로 공감의 웃음이 나왔습니다.

 

“Vita communis, maxima penitentia(공동생활, 최대의 고행!)”

 

하여 저는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공동생활에 있고 함께 사는 것이 도닦는 일이라 정의하기도 합니다. 지극한 인내의 사랑으로 함께 사는 속죄와 참회, 고행의 공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함께 사는 보속보다 더 유익한 보속은 없습니다. 함께 살면 웬만한 죄는 다 용서받습니다.

 

결코 비상한 영성생활이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하나 절실한 영성이 사랑과 평화의 일치의 영성, 그리고 이를 위한 세가지 구체적 영성인 기도의 영성, 회개의 영성, 용서의 영성입니다. 한 마디로 파스카 영성입니다. 제 자작 좌우명시  다음 연처럼 끊임없이 새롭게 흐르는 기도의 강, 회개의 강, 용서의 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하고 서로 용서한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로 일치된 공동체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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