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 -관상, 파견, 선교-2019.7.7.연중 제14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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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7.연중 제14주일                                                               이사66,10-14ㄷ 갈라6,14-18 루카10,1-12.17-20

 

 

 

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

-관상, 파견, 선교-

 

 

 

어제는 오늘 말씀 묵상중 문득 묘비명이란 말마디가 떠올랐습니다. 전에 피정 지도중 가끔 피정자들에게 제시했던 문제였습니다. 제가 묘지에 가도 우선 확인해 보는 것이 생몰연대이자 묘비명입니다. 언젠가 어느 지인의 부탁에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성구를 묘비명으로 추천한 적도 있습니다. 

 

‘희랍인 조르바’라는 명작을 남긴 그리스인 니코스카찬스키스의 묘비명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입니다. 아마 천상병 시인의 묘비명은 귀천이란 시가 되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귀천의 마지막 연,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는 언제 읽어도 좋습니다. 

 

수도자들 묘엔 묘비명이 없고 생몰연대만 간략히 나옵니다만, 제 경우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시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묘지에는 유언에 따라 묘비석도 묘비명도 없다 합니다. 언젠가는 피정중 수도 형제가 써낸 묘비명에 충격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허무로다, 허무!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1,2)라는 성구를 묘비명으로 적어낸 것입니다.

 

미리 써놓는 묘비명은 흡사 좌우명과도 같아 우리 삶의 지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묘비명도 생각해 봤습니다. “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을 살다간 ‘주님의 사람’ 프란치스코, 여기 잠들다’란 묘비명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이 ‘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입니다.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행복입니다. 그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닮은, 주님과 일치의 삶을 뜻하는 파스카의 삶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행복한 삶입니다. 파스카 삶의 행복을 노래한 자작시 행복기도의 첫 연과 다섯째 연입니다.

 

-“주님/사랑합니다/찬미합니다/감사합니다/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저의 사랑/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이런 ‘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관상, 파견, 선교의 세 측면에 걸쳐 살펴봤습니다. 

 

첫째, 관상입니다.

내 몸담고 있는 수도공동체의 자리가 관상의 자리입니다. 영육을 주님의 영으로 충전시킬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기 ‘무아無我의 집’이 ‘태령산의 영혼’이듯이 우리의 영혼은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파스카의 주님은 우리의 기쁨, 우리의 행복입니다. 

 

바로 파스카의 주님과 일치의 관상의 자리가 바로 내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 ‘주님의 집’ 수도공동체입니다. 바로 제1독서 이사야서의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우리 관상의 자리 주님의 집 수도공동체입니다. 다음 이사야서 말씀은 얼마나 고무적이고 위로와 치유가 되는 지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어머니가 자식을 위로 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대로 주님의 집 예루살렘 수도공동체의 은총을, 축복을 상징합니다. 말그대로 어머니의 위로와 평화의 품같은 주님의 집 수도공동체입니다.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공동체 미사전례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는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둘째, 파견입니다.

관상의 행복, 파스카의 행복은 독점하라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누라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여 세상으로, 내 삶의 자리 일터로 파견입니다. 주님과의 일치가 최고의 자산입니다. 주님만으로 행복하고 충분하기에 저절로 최소한 소유의 삶입니다.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소유도 줄어들어 단순소박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파견명령입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부수적인 것들에 시간과 정력을 쏟지 말고 본질적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무소유 정신의 삶으로 주님의 투명한 현존이 되어 파스카의 행복을 살라는 것입니다. 연중 피정이 끝나면 우리 역시 우리 고유의 삶의 자리로 다시 파견될 것입니다. 그러니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으로 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 수도자들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바로 파견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남는 것은 내가 아닌 주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의 주님과 일치된 삶에 대한 고백입니다. 파견된 우리의 거처는 예수 성심뿐입니다. 예수 성심 안에 주님의 십자가, 우리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몸에 지닌 예수님의 낙인,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어제 성체현시 중 성가 203장 3절이 은혜로웠습니다.

 

-“오 거룩한 마음/예수님 성심/내 기쁨이시며/내 위로이시여

내 영혼 주께 바쳐드리오니/이끌어주소서/영생의 길로/승리의 십자가.”-

 

주님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 몸에 지닌 예수님의 낙인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 기도를 통해 바로 우리 몸에 새겨진 예수님의 낙인 십자가를 확인합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가 파견된 가난한 우리에게는 최상의 보물이요 방패가 됩니다. 

 

셋째, 선교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존재이유입니다. 선교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세상의 빛이자 세상의 소금인 우리 존재들입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역할의 우리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파스카의 평화, 주님의 평화입니다. 주님의 평화의 사도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무소유의 텅 빈 충만에서 샘솟는 평화입니다. 바로 예수님 성심이 평화의 샘입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평화의 선물에 이어 치유의 선물이요 하느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우리를 통한 주님의 평화요 주님의 치유입니다. 바로 이런 우리의 삶 자체가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주님과의 일치가 깊을수록 우리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더불어 주님의 평화에 이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주님의 기쁨, 주님의 위로와 치유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선교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의 일흔 두 제자는 파견과 선교를 성공리에 마치고 주님의 집, 제자들의 공동체에 귀가하여 주님께 성과를 보고합니다. 관상-파견-선교의 시스템은 바로 순환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말그대로 ‘참 행복한 파스카의 삶’을 보장하는 ‘하늘 나라의 시스템-관상, 파견, 선교’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현재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신 다음 말씀은 그대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똑같은 파스카의 예수님은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 모두에게 모든 악의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선물하시며,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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