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성경책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성독聖讀) 하기-2019.7.8.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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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8.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창세28,10-22ㄱ 마태9,18-26

 

 

 

내 삶의 성경책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성독聖讀) 하기-

 

 

 

우리는 얼마전 렉시오 디비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요즘 교회 신자들에게 여전히 계속되는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관심에 공부입니다. 사실 중세기까지는 성경을 떠난 묵상이나 기도, 관상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성서독서, 렉시오 디비나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온 몸과 맘이 하나되어 깊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관상하는 독서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게 하는 것이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사실 영혼 건강을 돌보는데 렉시오 디비나보다 더 좋은 식食과 약藥은 없습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평생 항구히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권하는 매일의 렉시오 디비나는 ‘매일미사’시 ‘입당송부터 시작하여 영성체후 기도’까지입니다.

 

저는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을 셋으로 꼽습니다. 무엇보다 1차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은 1.신구약 성경, 이어 2.자연성경, 3.내 삶의 성경입니다. 저는 성경을 확장하여 자연도, 우리 믿는 이들의 삶도 넓은 의미로 렉시오 디비나의 대상인 성경으로 봅니다.

 

사실 많은 믿는 분들에게 면담성사를 드리다 보면 한분한분의 삶이 유일무이한 고유한 살아있는 성경책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어主語가 되어 펼치신 은총의 발자취가 은연중 감지됩니다. 아주 오래 전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한 수도원에 피정 온 어느 자매에게는 대학 노트 2권을 주어 삶의 역사를 쓰도록 권했고, 읽어 보니 그대로 한권의 성경책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자매는 삶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치유의 구원체험을 했고 피정후 자유로워져 집에 갔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이요 섭리입니다. 하느님 중심에 서서 하느님의 시선으로 내 삶의 역사를 일별해 보는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하느님 중심이 없는, 하느님 주어가 빠진 삶의 역사이기에 삶이 그처럼 허무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제가 여기 피정지도 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불러 주셨기에 온 것입니다. 19년전 2000.7.25.-8.2 까지 맨 처음 여기 무아의 집에서 피정지도 한 때를 생각하면 참 우연이 아닌 하느님 섭리란 깨달음에 감회가 깊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우리 수도자들의 성소입니다. 내가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불러 주셨기에 수도원에 입회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장의 주어는 내가 아닌 하느님입니다.

 

미신자들이 세례받았다는 사실은 운명의 놀라운 전환점을 뜻합니다. 즉 ‘내 중심’의 허무와 무의미의 ‘무지의 어둠의 세계’에서 ‘하느님 중심’의 ‘빛의 세계’로 들어 섰음을 뜻합니다. 이제부터 내 삶의 성경책 역사가 시작됬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하느님 있어 회개와 겸손, 지혜의 빛이지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겸손도 지혜도 없는 어둠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에게는 하루하루가 한페이지씩 써가야 하는 성경책입니다. 내 나이 곱하기 365하면 내 삶의 성경책 페이지가 나옵니다. 

 

아직 계속되는 죽어야 끝나는 미완의 내 고유의 삶의 성경책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하루하루의 삶을 깨닫는 다면 결코 되는 대로 막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선물로 주신 한페이지를 깊고 아름답게 살고 써갈 것이며 바로 이 자체가 삶의 의미이자 치유의 구원입니다. 또 삶이 복잡하고 힘들어, 신구약 성경과 더불어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할 때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내 삶의 중심을 잡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제1독서 창세기는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흥미진진한 삶이 그대로 한권의 성경책이 아닙니까? 복음 성경은 예수님 삶의 성경책이고 바오로 서간은 바오로 삶의 성경책입니다. 마찬가지 우리 삶 역시 한권의 미완의 고유한 살아있는 성경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어 펼치시는 삶의 성경책입니다. 하여 항구한 기도와 말씀 공부이니 삶의 중심인 하느님의 뜻을 잘 깨달아 일치의 삶을 살기위함입니다. 

 

오늘 야곱의 진행되는 삶을 보십시오. 그는 고독한 유랑의 처지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찾아 주신 것입니다. 필시 야곱은 고독중에 기도하며 하느님을 간절히 찾았음이 분명합니다. 꿈중에 이뤄진 주님과 대화의 기도입니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쳐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하느님 친히 야곱 삶의 중심이, 안내자, 동반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복음이며, 이제 하루하루가 하느님과 함께 써가는 성경인생의 야곱이 됬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야곱의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하늘의 문이로구나.”-

 

눈만 열리면 어디나 주님을 만나는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분명 이 하느님 체험의 추억이 야곱의 정처없는 유랑생활에 결정적 도움과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회당장도,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믿음의 여자도 주님을 만남으로 그들 인생의 여정에 결정적 전환점이 됩니다.

 

주님은 믿음 좋은 회당장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딸을 살려 내십니다.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비웃는 군중을 내 쫓으신후 예수님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고 일으키십니다. 회당장도 그 딸도 이 치유의 구원 체험을 늘 상기하며 하루하루 제 고유의 성경인생을 충실히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성경인생이 펼쳐지기로는 치유받은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믿음 좋은 여자의 간절한 소원에 치유의 구원으로 응답하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여자 역시 분명 이 치유의 구원 체험을 평생 기억하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성경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야곱은 에사우를 떠나 도피여정중 베텔에서 주님을 만났고, 곤경 중에 있던 회당장과 그 딸, 그리고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자도 주님을 만나 구원받았고, 우리 역시 이 거룩한 미사에서 주님을 만나 치유의 구원을 받습니다. 

 

아니 예수 성심 안에서 늘 치유의 구원을 체험하며 각자 고유의 성경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충실히, 항구히 각자 고유의 성경인생을 잘 살고 써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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