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주님과 만남의 때-2019.7.17.연중 제15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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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17.연중 제15주간 수요일                                                                     탈출3,1-6.9-12 마태11,25-27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

-주님과 만남의 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도 있습니다. 만날 때가 있으면 떠날 때가 있고 젊은 때가 있으면 노년의 때도 있습니다. 찬란한 일출의 때가 있으면 고요한 일몰의 때도 있습니다. 꽃피는 봄의 때가 있으면 열매맺는 가을의 때도 있습니다.

 

농사의 때는 정말 중요합니다. 씨뿌릴 때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농약칠 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해의 농사가 때에 따라 질서있게 진행됩니다. 농사뿐 아니라 사람의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때의 진리입니다. 참으로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이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때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때를 알지 못해 또 때를 기다리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아무리 배가 먹고 싶어도 지금 푸른 열매를 따 먹을 수는 없습니다. 가을의 때가 되어 비로소 익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때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때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봄철에는 봄철처럼 살고 여름철에는 여름철처럼 가을철에는 가을철처럼 겨울에는 겨울철처럼 사는 것이 삶의 지혜요 성숙된 모습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철든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들자 망령난다’란 말도 있듯이 철들어 자기를 아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하여 제가 늘 강조하는 것도 인생여정을 하루로 압축했을 때, 또 일년사계로 압축했을 때 어느 지점의 때에 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귀가준비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 또한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누구보다 우리의 때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탈출기의 주인공은 모세입니다. 구약의 전개되는 역사가 참 흥미진진합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앞서 인물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말 그대로 ‘신의 한 수’와도 같은 모세와 더불어 시작되는 탈출기입니다.

 

고독한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침으로 시작된 인생수련자 모세입니다. 하느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놀랍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의 인생수련을 통해 정화의 과정을 겪은 후 때가 되자 하느님은 하느님의 산 호렙의 불타는 떨기 속에 나타나시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의 성소 장면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예, 여기 있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부르심에 즉각 깨어 응답하는 모세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의 때가 참 적절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동족을 이끌어 내라는 막중한 소명을 받은 모세의 반응입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광야에서의 수련과정을 통해 비워지고 비워져 이집트에서의 혈기왕성하던 때와는 달리 겸손하고 온유해진 모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겸손한 이를 만나 주시고 불러 주시어 당신의 도구로 쓰심을 깨닫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모세의 든든한 배경이 되시겠다는 주님의 확약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비워 겸손해진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반드시 따라 붙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천하무적 주님이 함께 계시는데 누구를,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마침 어제 두 분에게 보속으로 써드린 ‘말씀 처방전’도 생각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 내가 도와 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참 많이 써드린 보속 때의 말씀 처방전입니다. 우리의 근원적 정서가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움과 불안도 말끔히 사라지고 위로와 치유, 그리고 기쁨과 평화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답은 주님과의 만남뿐입니다. 바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도 받고 새로운 사명을 받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오늘 복음도 참 아름답습니다. 때가 되어 아버지를 만난 예수님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께 주신 깨달음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감격에 벅차 고백하는 복음에서 하나뿐인 찬양기도이자 감사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감사와 찬양이 하나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었습니다.”

 

철부지가 상징하는 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하느님께 활짝 열린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유연성, 신축성, 개방성 좋은 진짜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배움의 여정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러했고 그 제자들이, 또 우리가 그러합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백은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보여줍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예수님과의 일치가 겸손과 온유에 이르는 지름길이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와 하나되는 지름길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은 천복天福을 누리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다음 화답송 시편처럼 찬미의 응답뿐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내 안의 온갖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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