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여정 -온유, 겸손, 안식-2019.7.18.연중 제15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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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18.연중 제15주간 목요일                                                                           탈출3,13-20 마태11,28-30

 

 

 

배움의 여정

-온유, 겸손, 안식-

 

 

 

오늘 복음은 짧지만 참 고맙고 소중합니다. 분주하고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고백성사 보속시 말씀 처방전에 참 많이 써드리는 성구입니다. 

 

성서마다 소 주제가 다양합니다. ‘내 멍에를 메어라’. ‘초대말씀’, 나에게 와서 쉬어라’가 있고, 또 하나 ‘나에게 배워라’를 추가할 수 있겠습니다. 종합하면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워 익힐 때 안식의 평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대가 참 고맙습니다. 주님이 아니곤 쉴만한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지요? 하여 끊임없이 성당을,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에게 활짝 열려 있는 주님의 안식처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세상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되겠는지요.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 뿐 나름대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이 아닙니까? 참으로 휴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지만 참 안식처는 찾기 힘듭니다. 자주 피정자들에게 화두처럼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삶은 짐입니까 혹은 선물입니까?”

 

기도하여 사랑있으면 선물이지만, 기도하지 않아 사랑 식으면 짐이라 말합니다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영원한 화두같은 말마디입니다. 답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때 안식의 평화에 짐은 가벼워져 선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읽은 기사도 생각납니다.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과 운동보다도 마음관리에 중점을 두어 음식과 운동 20%, 마음관리 80% 비중을 두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주님 안에서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배우며 평화의 안식을 누릴 때 저절로 영혼관리, 마음관리로 참 건강한 삶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처이자 배움터입니다. 초대에 응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제 좋아하는 말마디가 배움의 여정입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여정이요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시련이나 어려움을 온유와 겸손의 학습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하여 분도성인은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학교(배움터)로 정의하고, 시토회에서는 사랑의 학교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은 평생 졸업이 없는 섬김의 학교, 사랑의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하시니 삶은 온유와 겸손의 학교라 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음의 온유와 겸손이 최고의 건강비법임을 깨닫습니다. 삶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배움터에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평생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수도자는 물론이고 참으로 역동적인 영성생활을 위해 “하느님께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배움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사랑”은 필수요소입니다. 특히 온유와 겸손에 대한 배움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느님 갈망과 배움 사랑이 있기에 평생 주님의 복된  “말씀의 수인囚人”이 되어 매일 강론 쓰기가 가능합니다. 저에게 새벽 시간은 “강론 쓰기” 시간이기 보다는 사랑하는 '주님의 모습'을, 동시에 '참 나의 모습'을 말씀으로 '강론 조각'하는 관상하는 시간입니다. 

 

수도원은 물론 믿는 모든 이는 두 개의 문이 필수입니다. 세상의 활동에 열려 있는 앞문이요 사막의 관상에 열려 있는 뒷문입니다. 제가 아끼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좌우명시 넷째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초대는 뒷문에 해당됩니다. 때로 지치고 힘든 때는 지체없이 뒷문 열고 들어가 안식처인 주님 안에 머물러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영육을 충전시켜야 합니다. 안식처인 주님이야 말로 영적 주유소이자 충전소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과 탈출기의 모세가 참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두 분이야 말로 하느님께서 인정하신 “겸손의 대가”입니다. 겸손은 바로 지혜입니다. 모세는 참 지혜롭게도 주님의 안식처 떨기나무 아래에서 주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나는 있는 나다.” 라는 주님의 신원을 알아내고 파견 받은 자신의 신원을 확인합니다. 

 

주님을 알고 나를 알 때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자유로운 삶에 마음 깊이에서의 참된 안식입니다. 바로 오늘 탈출기는 모세의 뒷문의 하느님 관상체험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우리의 앞문은 세상의 활동에, 뒷문은 사막의 관상에 활짝 열려있는 영적 균형과 조화의 삶이 영육의 건강에는 제일입니다. 

 

문득 매일 퇴근시 성당에 들려 30분 정도 주님 안에 머문다는 어느 자매님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바로 뒷문의 주님 안에 머무르고 싶은 관상체험의 욕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생명의 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을 가르치시고 안식의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우리의 불편한 멍에를 당신의 편한 멍에로, 무거운 짐을 당신의 가벼운 짐으로 바꿔주시어 우리 모두 축제인생, 선물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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