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의 자녀-2019.7.25.목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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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5.목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4,7-15 마태20,20-28

 

 

 

 

사람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의 자녀-

 

 

 

어제는 공동체 소풍으로 에버랜드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흥미로웠던 것은 놀이가 아니라 온갖 동물의 구경이었습니다. 지금은 멸종된 한국 호랑이도 사진 찍었고 사파리 월드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며 여러 종류의 호랑이, 사자, 곰도 구경했고 마지막 선물센타에 들려서는 아기 곰 인형을 사들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런 동물들을 보며 ‘사람은 무엇인가?’많은 생각을 했고, 또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동물에까지 ‘반려’란 말을 붙여 ‘반려동물’, ‘반려견’이란 말도 씁니다만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려자는 마땅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영원한 반려자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죽은 후 ‘연미사(?!)’가 가능한지 묻는 분을 보면,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생각하며 실소를 금치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역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시편8장이 답을 줍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삼라만상을 그의 발아래 두시었으니

통틀어 양떼와 소들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며 

바다속 지름길을 두루 다니는 것들이오이다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

 

하느님과 사람과 피조물인 동물과의 관계가 명확히 설정됩니다.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존엄한 품위의 인간입니다. 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한 답을 줍니다. 이런 하느님 창조 신앙이, 더 나아가 부활신앙이 있기에 불교의 윤회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동물들과의 관계가 미묘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의 띠도 상상의 동물 ‘용’을 포함한 12개의 명칭도-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재미있습니다. 저는 소띠인데 불교식으로 말해 전생에 소였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말은 몰라도 사람한테 ‘쥐같다’, ‘개같다’, ‘뱀같다’하면 몹시 기분나빠 할 것입니다. 반면, ‘곰같다’, ‘소같다’, ‘양같다’, ‘돼지같다’하면 그래도 덜 기분나빠할 것입니다. 제가 아기 곰을 인형을 산것도 귀여워 두고 보기 위함입니다. 누가 저보고 ‘곰같다’, ‘소같다’하면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뱀같이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하신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능적으로 사람을 동물과 연관시킨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을 보면 뱀같은, 늑대같은, 여우같은, 양같은,---참 다양한 동물들이 연상되며 불교식 사고의 전생에 대한 유혹도 받습니다. 

 

사실 작금의 현실에서 언행 불일치의 사람들을 보면 겉모습만 사람이지 참 사람 발견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상 공부와 학벌과는 별개로 짐승만도 못한 심지어 악마같은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흡사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듯 상식이나 양식이 실종된 막말을 쏟아대는 막가파 언행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니는 느낌입니다. 영성은커녕 인성도 한참 미달입니다.

 

새삼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하느님 자녀로서의 부활신앙이 얼마나 고마운 복음인지 깨닫습니다. 정말 일반 동물들이 아닌 하느님의 자녀답게 참 사람으로 사는 평생공부, 평생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습니다. 예전 초등학교 교편시절 김동길 박사가 소개한 ‘호랑이 속눈썹’이라는 평안도 맹산 산골에 전해 오던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참 재미있어 하던 제자들의 모습이 선명합니다. 일부 소개합니다. 부부생활에 크게 실망한 남자가 호랑이 한테 잡아먹힘으로 불행한 삶을 끝내려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가 마침내 호랑이를 만납니다.

 

-사나이가 먼저 입을 엽니다.

“자, 어서 잡아 먹어라. 왜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거야.”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내가 사람을 잡아 먹습니까. 짐승이나 잡아먹지요.”

그러면서 그 연로한 호랑이가 허연 속눈썹 하나를 뽑아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던 이 사나이에게 건네 줍니다.

“이 속눈썹을 달고 한번 세상에 나가 둘러보세요. 아마 사람은 몇 없고, 대개는 짐승일 겁니다. 사람 가면을 쓰고 다니는 짐승이요. 짐승하고 살지 말고 사람을 찾아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사세요.”

호랑이의 권고입니다. 죽기로 결심했던 이 사나이는 늙은 호랑이의 속눈썹을 달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집에가서 자기의 아내를 보니 암탉, 면장은 여우, 교장은 토끼, 파출소의 순경은 늑대,---정말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자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헤매다가 정말 짐승아닌 여인을 만나 부부가 되어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합니다.-

 

너무 재미있어 하던, 지금도 스승인 저를 찾고 있는 50대 초반의 초등학교 6학년때 제자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짐승에서 벗어나 참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는 복된 운명의 전환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앞에서 부단히 회개할 때 겸손과 지혜, 순수와 자비, 온유와 평화의 참 사람입니다.

 

세례받음으로 참사람이 되는 평생공부가 시작된 것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야 수성獸性이나 마성魔性은 인성人性으로, 인성人性은 영성靈性에로의 변화가 가능합니다하여 끊임없는 회개,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닮지 않고 참 사람이 되는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 말씀대로 하느님은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엄청난 힘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니 예수님의 생명, 사랑의 성령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하여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죽은 듯 하지만 곧장 예수님의 생명으로 일어납니다. 어떤 상황이든 존엄한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를 견지합니다.

 

무지의 사람들이, 겉모습은 사람이나 속은 짐승같은 통치자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립니다만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형제들인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자녀로서의 참 삶의 자세입니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바로 제 사제서품 상본의 성구이기도 합니다. 참 사람의 하느님 자녀가 되는 평생공부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영성이 있다면 섬김과 종의 영성이,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하나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참된 권력은 섬김입니다. 교황은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미약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보는 대로 됩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믿는 안 믿는 이든 ‘하느님의 자녀’로서 고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카톨릭 사제든 평신도등 다음 두봉 주교님 말씀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본당 신부는 본당 교우들만이 아니라 그 지역 모든 사람들의 신부예요. 언제나 그 지역 전체를 걱정하고 그 지역에 가난한 이, 약자가 누구인지 찾고 생각해야 해요.”

 

이래야 비로소 열린 교회요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섬김의 사람, 하느님 자녀로서의 참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126,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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