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27.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탈출24,3-8 마태13,24-30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인가?

-지혜, 겸손, 자비, 인내-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로 시작되는 가라지의 비유가 참 흥미진진합니다. 많이 묵상하여 강론했어도 너무 현실성을 띄는 비유라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하늘 나라는 언젠가 미래가 아닌 오늘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지혜를 주는 하늘 나라 비유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바로 악의 신비에 대한 설명입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한 일이기에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하느님만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는, 늘 깨어 열려 있는 눈이자 귀이시기에 아실 것입니다. 그러니 가라지의 원인에 대해, 악의 기원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누가 가라지이고 누가 밀입니까?

참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무수히 겪는 혼란입니다. 내안에도 밀과 가라지가, 선과 악이, 빛과 어둠이 공존합니다. 세상을 봐도 밀과 가라지가 공존합니다. 떄로 비관적 눈엔 온통 가라지밭같이도 보입니다.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를 봐도 밀같은 현실보다는 가라지같은 현실이 압도적입니다.

 

몸에 암세포는 가라지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전이되는 암세포에 밀같은 몸도 속수무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암환자들도 참 많습니다. 때로는 세상도 암세포같은 악이 많이 전이된 상태로 보이기도 합니다. 엄연한 현실이 가라지의 현실입니다. 참으로 영혼의 치유를 위해 마음 활짝 열고 하느님의 성령을, 사랑을, 은총을 받아 들이는 일이 화급합니다.

 

누가 가라지이고 누가 밀입니까?

인간의 판단은 얼마나 불확실한지요. 사랑하면 모두가 밀인데 싫어하면 계속 발견되는 가라지들입니다. 언뜻보면 가라지인데 잘 보면 밀입니다. 가라지같았는데 사귀고 보면 밀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확정할 수 있지만 사람들도 그럴 수 있을까요? 

 

회개의 은총과 결단이 가능한 사람들입니다. 가라지도 밀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가라지가 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여 항구한 수행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엄연한 현실은 100% 순수한 선도, 악도 없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현실입니다. 

 

문제는 균형과 조화입니다. 비율입니다. 밀이 8이라면 가라지는 2가 이상적입니다. 개미도 10중 2는 게으른 개미들이고, 2을 제거하면 순수한 8마리만 남는 것이 아니라 또 2/10 비율로 게으른 개미가 나온다 합니다. 공동체도 10중 건강한 사람 6, 아픈 사람4가 기준입니다. 더 이상 아픈 사람이 나오면 공동체 전체가 환자가 됩니다.

 

저역시 그렇습니다. 예전 장상할 때 내심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형제들이 장점 7에 단점 3이라면 절대 단점 3을 캐고 따지고 하지 않고 그대로 묻어 둔다는 것입니다. 이들 단점 3은 무시하고 장점 7을 격려하고 칭찬하여 단점 3이 저절로 시들게 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거룩한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대우大愚가 대지大智입니다. 봐도 못본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그의 규칙에서 말씀하십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다.”(성규72,4-9).

 

사랑의 공동체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살면 가라지 세력은 뽑아 버리지 않아도 저절로 약화됩니다. 밭농사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농약하지 않아도 비료주지 않아도 참 잘 자라나는 잡초들입니다. 왕성하든 잡초들도 채소가 무성하게 잘 자라면 저절로 힘을 잃습니다. 발본색원, 악을 뿌리뽑는다는 범죄와의 전쟁에 승리는 요원합니다.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입니다. 인류 역사를 봐도 가라지를 뽑아 버리는 피의 혁명이 성공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가라지인줄 알고 뽑았는데 밀이면 어떻게 합니까? 가라지같은 사람도 그 어머니 눈엔 밀일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눈에 밀도 타인의 눈엔, 하느님의 눈엔 가라지일 수도 있고, 내 눈에 가라지도 타인의 눈엔, 하느님의 눈엔 밀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밀과 가라지 둘 다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각자 고유의 제자리에 있으면 밀이나 제자리를 벗어나면 가라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주고 받으면 밀이 될 수 있겠지만 사랑이 결핍되면 가라지가 될 수 있습니다.

 

참 좋은 방법은 가라지의 원인 규명도 아니고 가라지를 뽑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밀의 세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적당한 정도의 가라지 현실이 있어야 영성수련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유혹과 시련의 가라지 현실이 없다 생각해 보십시오. 영적전쟁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고 영적 성장이나 성숙도 없을 것며 삶은 참 무력해질 것입니다. 100% 밀만의 순수한 선과 사랑의 공동체나 사람, 가능치도 않을 것이며, 이 또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현실은 균형이 심각히 훼손된 상태입니다. 쓰레기와 죄와 병이 하나로 연결된 듯 보입니다. 쓰레기가 많으니 죄도 많고 병도 많은 것 같습니다. 날로 늘어가는 쓰레기 바로 가라지 현실을 반영합니다. 낭비와 소비가 너무 심합니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몸살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깨어 가라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이며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참으로 지혜, 자비, 겸손, 인내의 덕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대로 주님의 마음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도 가라지를 심판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대화를 들어 보세요.

 

-“저희가 가서 가라지들을 거두어 낼까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 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끝가지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 바로 이것이 지혜요 자비요 겸손이요 인내입니다. 방관이나 방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고, 주님의 눈으로 주의 깊게 살피며 더 이상 가라지들 세력이 왕성해지지 않도록 밀의 세력을 강화하는 사랑의 극기, 절제, 자제의 수행생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때로 가라지 세력에 좌절할 게 아니라 “그게 현실이지!”, “그냥 놔둬!”, “괜찮아!” 되뇌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대개는 제자리로 돌아와 밀이 되어 살 것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가라지에 대한 답은 주님의 은총과 항구하고 충실한 수행생활입니다. 바로 탈출기 모세의 공동체 리더십이 감동적입니다. 온 백성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는 공동전례입니다. 모세가 계약의 책을 읽어주며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자 공동체 성원들을 화답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더디더라도 방법은 자발적 회개와 실행의 내적혁명뿐입니다. 모세는 즉시 계약의 피로 이들의 결심을 확고히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항구한 사랑의 수행생활로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밀의 세력이 왕성해지지만, 수행생활의 이완으로 하느님께 멀어질수록 가라지 세력이 왕성해 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팎의 가라지 세력을 약화시켜 주시고 밀의 세력을 강화시켜 주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7.27 10:46
    주님을 향한 항구한 믿음과 충실한 수행생활을 통해 저희를 지켜 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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