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함께의 여정 -겸손과 지혜, 감사와 기쁨, 자비와 자유-2019.8.21.수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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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1.수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판관9,6-15 마태20,1-16

 

 

 

참 좋은 함께의 여정

-겸손과 지혜, 감사와 기쁨, 자비와 자유-

 

 

 

오늘 우리는 자랑스런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미 살아서 성인으로 존경받은 교황님으로 만79세 비교적 장수를 누렸으며 교황님으로서의 업적도 오늘 본기도에 나온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에페1,10)라는 그의 모토대로 참 많았습니다. 

 

성인은 참으로 가난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하셨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난하게 죽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고 교황님의 유지대로 장례식도 최대한 간소하게 치러졌습니다. 1차 대전이 발발한 후 22일 후 1914.8.20.일 선종하셨는데 전쟁으로 인한 무수한 사람들이 살상되는 것을 한없이 비통해 하셨습니다.

 

어제의 몇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 부제에 대한 일화입니다. 서품이 보류됐다가 2년 후 내년 2월에는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는데 1년6개월 동안 봉사터에서 참으로 소같이 묵묵히 일하고 살았다 합니다. 많은 분들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을 받았는데 바로 그 형제의 축일이 바로 오늘이라 합니다. 소같이 일하고 살았다는 비오 부제의 일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일화 역시 감동적입니다. 엊그제에 이어 두 번째 수도원을 방문했다 갑자기 고백상담실을 찾았습니다. 알고 보니 죽음까지 생각하고 온 장년의 형제인데 씩씩하고 쾌활해 보여 전혀 상상을 못했습니다. 상담때도 이런 내용을 비치지 않았는데 기도문 셋을 읽은 후, 보속 말씀 처방전을 읽을 때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며 죽음까지 생각했음을 고백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 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위 말씀에 “관찮아 힘내!”라는 붉은 색 스탬프를 찍어 드렸습니다. 새삼 말씀의 위력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의 닫혔던 마음이 살아있는 말씀에 닿았을 때 저절로 열리며 쏟아지는 눈물이었습니다. 이어 기도와 미사봉헌을 약속하며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하루 만났던 분들의 이름과 사정을 고스란히 기억했다가 다음날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저의 얼마전의 결심입니다. 

 

다시 방금 완성한 ‘함께의 여정-달맞이꽃 영성-’이란 자작시를 소리내어 읽도록 했습니다. ‘달맞이꽃을 아느냐?’ 물었더니, “아, 밤에 피는 꽃이요.”란 대답에 기뻤습니다. 밤에 피는 달맞이꽃들, 하느님을 찾는 함께의 여정중인 도반이자 구도자인 우리 수도형제들을 닮았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올해 수도자들 숙소 앞 뜨락에 여름 한 철 내내 끊임없이 폈다 지는 달맞이꽃들입니다. 제가 유난히 달맞이꽃을 좋아하여 카톡 사진 찍는 것을 본 수도형제들이 베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달맞이 꽃밭입니다.

 

-“보라!

하느님/친히 가꾸시고 돌보시는

날마다/무수히 피어나는

수도원 가난한 뜨락/달맞이꽃들

 

함께의 여정이다

하느님만 찾는 구도자의 모범이다

참/놀랍다/반갑다/고맙다/새롭다

 

애오라지 일편단심/한결같은/하늘 향한 샛노란 사랑이다

꽃대와 뿌리는/참 질기고 억세고 단단하다

벌써 3개월째/한낮의 불볕더위 견뎌내며

 

여름 한 철 내내/끊임없이 폈다지며/하늘 향해 오르는 달맞이꽃대!

지질줄 모르는 열정

파스카의 꽃/달맞이꽃들/낮에는 죽은 듯 보이지 않다가

 

밤새 활짝 깨어 피어나

어둔 밤/환히 밝히는/님 맞이 달맞이꽃들

갈수록 더해지는 청초한 아름다움에 그윽한 향기다

 

늘 날마다

아침까지 계속되는

황홀한 축제의 여름 밤이다.”-

 

앞서 소개한 성 교황 비오 10세, 소같인 일하는 부제, 또 성사를 봤던 장년의 형제, 모두 달맞이꽃 영성에 적절한 분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함께의 여정에 주님을 닮은 달맞이꽃 영성을 지닌 ‘님맞이꽃’ 참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첫째, 겸손과 지헤의 사람들입니다.

겸손과 함께가는 지혜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이들이 겸손하고 지혜로운 소통의 사람입니다. 주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를 때 교만이요 무지의 불통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판관기 ‘요탐의 우화’에 나오는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상징하는 사람들입니다.

 

“신들과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올리브나무

“이 달콤한 것, 이 맛있는 과일을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무화과나무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른 나무들 위로 가서 흔들거리란 말인가?”-포도나무

 

세 나무는 바로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들을 상징합니다. 깨어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제몫의 일에 충실한 사람들이야 말로 참된 구도자들이요 달맞이꽃 영성의 소유자들입니다. 이들의 방은 ‘지족암(知足庵;족함을 아는 자의 집)’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둘째, 감사와 기쁨의 사람들입니다.

감사와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살 줄 몰라 불평이요 슬픔이지 살 줄 알면 감사와 기쁨입니다. 새삼 감사와 기쁨도 발견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의 탐욕에 눈멀어 불평이요 슬픔이지 마음의 눈 열리며 감사와 기쁨입니다. 오늘 복음의 불평하는 일꾼들이 그러합니다. 

 

정말 이들이 하느님 무상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달았더라면 비교를 통한 불평은커녕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고용된 자나, 아홉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에 온 이들 자기를 채용해 주신 주님을 상징하는 포도밭 주인에게 감사해야 했을 것입니다. 똑같은 급료를 받자 매처음 온 이들의 불평입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온종이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 군요.”

 

주님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기에 이런 불평입니다. 무상의 주님의 은총을 깨달았더라면 감사와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꼭 루카 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의 불평을 닮았습니다. 아마 맨 처음뿐 아니라 오후 세 시까지 사이에 와서 일했던 이들의 심정도 모두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이들을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를 알았다면 모두가 불평은커녕 감사와 기쁨으로 응답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함께의 여정Jouring Together’중에 있는 도반들이요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공존공생이 상생이 답입니다. 함께 행복해야지 나혼자 행복은 없습니다. 공동구원이지 개인구원도 없습니다. 혼자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갑니다. 베네딕도 규칙 72장 마지막 절도 생각납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를 다 함께’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새삼 달맞이꽃 영성을 지닌 참 구도자의 두 번째 자질은 감사와 기쁨임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자비와 자유의 사람들입니다.

자비와 함께 가는 자유입니다. 참으로 자비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자유롭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은 구도자의 필수적 자질입니다. 바로 주님을 상징하는  오늘 하늘 나라 비유의 포도밭 주인이 그러합니다. 

 

얼마나 너그럽고 자비롭습니까? 반면 이런 착한 목자와 판관기 요탐의 우화에 나오는 가시나무가 상징하는 바 폭군 아비멜렉은 얼마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지요!

 

일 시간에 관계 없이 모두의 살림살이를 통찰하신 주인의 자비로운 처사입니다. 주인의 다음 말씀 역시 복음의 일찍 온 불평하는 일꾼들은 물론 옹졸하고 편협하고 이기적인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당신 품 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 바로 이게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닮아 이런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을 지닐 때 비로소 달맞이꽃 영성의 참 사람의 구도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 공평과 정의의 이기적 잣대로 하느님의 무상의 은총을, 자비를 재단하려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오히려 모두를 깊이 배려하고 돌보는 주인의 자비를 깨닫고 배웠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오후 다섯 시에 온 자에게도 똑같은 급료를 주신 주인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헤매던 많은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라 생각해 보면 답은 너무 자명합니다.

 

오늘 복음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하늘 나라 비유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하는 하늘나라입니다. 고립단절의 ‘썩어가는’ 혼자의 인생 여정이 아니라, 함께 관계의 여정중에 ‘익어가는’ 인생입니다. 

 

참으로 겸손과 지혜, 감사와 기쁨, 자비와 자유의 영성을, 달맞이꽃 영성을 살 때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 참 나의 실현에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살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런 참 좋은 자질을 선물하시어 날로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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