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보석寶石같은 사람들!-2019.8.26.연중 제21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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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6.연중 제21주간 월요일                                                                   1테살1,1-5.8ㄴ-10 마태23,13-22

 

 

 

행복하여라

-보석寶石같은 사람들!-

 

 

 

얼마전 산책중 만난 수도형제의 “보석을 주었습니까?”인사말이 생각납니다. 이어 보내준 ‘임마누엘 보석’이란 메시지와 더불어 수도원 정문 옆 임마누엘 신부가 설치한 작품 사진이었습니다. 요즘에서야 깨닫는 무수한 보석들입니다. 얼마전 ‘야외이발소’란 메시지와 더불어 선물받은 저와 수도형제가 서로 이발해주는 사진도 보석같았습니다. 

 

어제 저녀성무일도중 기도하는 엄마 품에 잠든 아기 장면도 보석처럼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 기도가 끝나는 즉시 사진에 담았습니다. 얼마전 사진을 받은 자매의 답글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꽃과 사람, 나무와 풀들, 하느님의 선물인 노동, 우리의 형제인 예쁜 강아지들, 감사드립니다. 보석인줄 모르고 살았어요.”

 

얼마나 보석같은 행복을 놓치고, 잊고 살았는지 깨닫습니다. 요즘은 산책중 찍는 아름다운 사진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보석들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저에게 산책은 보석 줍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찌 산책 시간 뿐이겠는지요? 참으로 깨어 있는 삶이라면 하루하루 모두가 반짝이는 보석들을 줍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행복기도중 다음 대목이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진짜 살아있는 생명의 보석들은 기쁨, 평화, 감사,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강론중 많이 쓰는 ‘깨닫다’라는 말마디입니다.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선물, 깨달음의 행복입니다. 깨달음과 더불어 내적 이해 지평과 내적 자유의 확장이요, 점차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참으로 깨달아 눈이 열릴 때 발견되는 생명의 보석같은 아름다운 모습들입니다. 

 

보석중의 보석이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참 아름다운 하느님의 살아있는 보석들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사진에 예쁘다고 감동하는 분들에게 저는 지체없이 “형제님의 영혼은 더 예쁩니다.”하고 격려하곤 합니다. 

 

사실 사랑하는 영혼들 보다 더 예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사랑의 찬미와 감사의 삶과 기도가 우리 영혼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합니다. 하느님의 살아있는 보석들이 되어 살게 합니다. 새삼 육신 건강에 앞서 영혼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테살로니카 1서에서 우리는 참 아름다운 보석같은 영혼들을 만납니다. 살아있는 복음서 같은 바오로의 삶이요, 바오로에게 극찬을 받는 참 아름다운 테살로니카 교회 신도들의 삶입니다. 저절로 “행복하여라, 테살로니카 교우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신망애의 삶을 살아가는 참 행복한, 아름다운 테살로니카 교우들입니다. 다음 두 대목이 우리의 행복한 신앙생활에도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참으로 우리에게도 절실한 믿음의 행위, 사랑의 노고, 희망의 인내라는 신망애 삼박자의 삶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귀한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며,---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들을 버리는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께 돌아와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회개-섬김-기다림’의 종말론적인 깨어있는 삶은 언제나 유효한 우리 영적 삶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보석같은 테살로니카 교회 신도들의 삶입니다. 이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호된 질책을 받는 오늘 복음의 일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행복하여라” 대신 “불행하여라”라는 말마디가 세 번 거푸 연속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눈 먼 인도자들아!”

 

이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깊은 아픔, 또는 심판 예고로 이어지는 분노를 드러냅니다. 이들의 회개는 물론 복음을 듣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형제들에게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되고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무분별한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삼 늘 강조하는 마음의 병, 무지가 화근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런 위선적 걸림돌이 되거나 무분별한 무지의 삶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안다면 위선과 교만에서 벗어나 진실과 겸손의 삶을 살 것입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문제입니다. 하여 늘 강조하는 바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끊임없는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 삶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가 빛나는 보석같은, 생명과 사랑의 보석같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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