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됩시다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2019.8.27.화요일 성녀 모니카(332-387)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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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7.화요일 성녀 모니카(332-387) 기념일                                                    1테살2,1-8 마태23,23-26

 

 

 

성인이 됩시다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

 

 

 

인사말을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샬롬!(평화!)”, 유대인들의 인사말입니다. “인샬라!(하느님께 영광!)”, 이슬람인들의 인사말입니다. “찬미예수님!”,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인사말입니다. “성불하십시오!”, 합장하며 드리는 불자들의 인사말입니다.

 

참 좋은 인사말입니다. 여기에 저는 하나 천주교 신자들에게 더 추가하고 싶은 인사말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십시오!”, 얼마나 좋은 인사말입니까! 피정이나 면담성사를 보는 형제자매들에게 자주 드리는 성인이 되라는 권고입니다. 모두가 계면쩍어 하지만 한결같이 미소지으며 흐뭇해 합니다.

 

성인이 되라 불림 받는 우리들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 주신 참 나의 실현이 성인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할 때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요 책임이요 평생과제입니다. 세상에 온 목적도 여기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입니다. 하여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닮고 싶은 하느님을 향한 갈망과 하느님 말씀에 대한 사랑이 잠재해 있는 법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갈망, 배움에 대한 사랑에 바탕한 항구하고 충실한 수행이 하느님을 닮아 성인이 되게 합니다. 하여 연중 제21주간 본기도중에도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라는 구절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녀 모니카도 참 각별한 분입니다. 오늘 성녀 모니카, 내일은 성 아우구스티노, 이렇게 모자분을 나란히 놓고 축일을 지내는 경우는 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인들의 배경에는 성녀 어머니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자전입니다. 

 

동방 18현중의 한분이 오천원 지폐에 나와있는 율곡(1537-1584)의 얼굴이요, 최고액권 화폐 5만원권에 나와있는 그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의 얼굴입니다. 모자분 다 치열히 사시다가 똑같이 만47세에 선종하였습니다. 16세 때 어머니를 잃은 율곡이 사무치는 그리움에 쓴 신사임당 어머니의 일대기인 선비행장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나의 어머님은 진사 신명화공의 둘째 따님이다. 어린 시절에 경전에 통달하여 글을 잘 지었으며, 그림 그리고 글씨 쓰기도 잘 하였다. 또 바느질이나 기능이 뛰어나고 수놓은 일에도 정밀하고 교묘한 기능을 많이 지니셨다. 겸하여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시고 지조가 정결하며 행동하심은 한정閒靜하고, 일을 처리함에는 안상安詳하며 말수가 적고 행실이 신중하셨다.”

 

성녀로 손상이 없는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삶의 좌표가 되는 영원히 현재성을 띠는 성인들입니다. 성녀 모니카의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와의 영적우정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고 신비롭습니다. 정말 모두를 구비한 성녀 모니카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보면 성녀 모니카에 대한 주옥같은 일화가 즐비합니다.

 

성녀 모니카는 성깔있는 남편을 유순한 성품으로 길들였고, 시어머니와도 놀랍도록 화목을 이루었으며,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화해를 도모하였고, 하느님의 종들을 섬기는 여종의 삶에도 항구했습니다. 힘든 부부관계중에 있는 자매들에게는 “네가 네 혀만 잘 다스릴수 있다면, 너는 남편에게 매맞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며 언젠가 네 남편을 더 좋게 변화시킬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에 낙심한 성녀는 주교와 상담결과, “그렇게 어머니가 기도로 많은 눈물을 쏟은 아들이 파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주교의 격려 말씀도 듣습니다. 하여 기도하기 17년후 마침내 아드님은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에게 28세 개종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치열하고 거룩하게 산 성인들은 죽음역시 거룩합니다. 영적 싸움중에 ‘전사戰死’해야 ‘주님의 전사戰士’라는 제 지론처럼 성녀의 죽음도 감동적입니다. 여드레를 앓다가 거룩한 선종이요 그 동안 성 아우구스티노에게 고백한 유언도 감동적입니다.

 

“아들아, 나로 말하면 이승살이에서는 이미 아무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이 다 채워진 마당에 여기서 뭘해야 하는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이승살이에 조금이라도 머물고 싶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나 죽기 전에 네가 가톨릭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것을 나의 하느님께서 과분하게 베풀어 주셔서 네가 지상 행복을 멸시하고 그분을 섬기는 종이 된 것을 보게 해 주셨구나. 그러니 여기서 내가 더 뭘하겠니.”

 

“이 몸이야 아무데나 묻어라. 그 일로 너희가 조금도 걱정하지 말거라. 오직 한가지 부탁이니 너희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하느님께 멀리 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세상 종말에 그분이 어디에서  나를 부활시켜야 할지 모르실까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이런 유언후 마지막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을 성인은 다음처럼 묘사합니다. “그렇게 병석에 누운지 아흐레 되던 날 어머니의 나이 쉰여섯, 제 나이 서른셋 되던 해에, 그 독실하고 경건한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났습니다.”

 

오늘 성녀 모니카에 이어 내일은 자랑스런 아드님, 가톨릭 교회의 독보적인 성인 아우구스티노의 축일을 맞이합니다. 참 감동적인 거룩한 모자분의 일화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성인다운 인품도 감동적입니다.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한 바오로 성인인지, 또 모든 성덕의 열매들 역시 하느님 사랑의 열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온갖 고난과 모욕을 겪으면서도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복음을 전하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행동지침이었습니다. 아첨하는 말은 하지 않았고 구실을 붙여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증인이십니다.”

 

얼마나 확고한 신념인지요.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찾지도 않았고 결코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았고 사도로서 위엄있게 처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도들을 대할 때는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 처신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열렬한 하느님 사랑은 그대로 형제 사랑으로 표출됨은 다음 대목이 입증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여러분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까지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거짓이 추호도 없는 진실과 사랑의 고백입니다. 열렬한 하느님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이 바오로 사도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가장 예수님을 닮은 성인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호된 꾸중을 듣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눈먼 인도자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눈먼 바리사이야!”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라는 가르침을 주는 참 좋은 반면교사 역할을 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십일조만 강조하다 보니 더 본질적인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놓쳐버린 본말전도의 분별의 지혜가 결핍된 어리석은 이들입니다. 

 

전례행위도 중요하지만 내용인 컨텐츠contents, 즉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더욱 중요합니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찬 표리부동의 이중적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눈먼 무지의 어리석은 사람들이요, ‘내용contents’과 ‘이야기story’가 없는 참 공허한 껍데기의 삶입니다. 이렇게 살지 말아야, 이 반대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진실하고 겸손하고 지혜롭게 살아야 성인이 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교회 역사상 이렇게 우리처럼 신앙생활 하기 좋은 때도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언제 신자들이 이렇게 매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매일 주님을 만나 배우고 모시니 성인이 될 수뿐이 없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성덕을 북돋아 주시며 날마다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저에게는 너무 높아 닿을 길이 없나이다.”(시편139,1-3.6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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