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연인戀人 -하느님만을 그리워하는,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2019.8.28.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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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8.수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354-430) 기념일 

1테살2,9-13 마태23,27-32

 

 

 

진리의 연인戀人

-하느님만을 그리워하는, 하느님만을 찾는 사람-

 

 

 

어제 성녀 모니카의 기념일에 이어 오늘은 그 아드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인들의 축일을 맞을 때마다 마음이 설렙니다. 하느님을 찾는 열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리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자 참 좋은 하느님의 선물들인 성인들입니다. 아침성무일도 찬미가도 아름답고 은혜로와 몇 대목 인용합니다.

 

-"하늘에 빛나시는 위대한 사제/찬란한 학자의 별 눈부시도다/광채를 뿜으시며 신앙의 빛을/순수히 온누리에 밝혀 주시네.

당신이 이승에서 관상하셨고/이제는 하늘에서 밝은 빛으로/그얼굴 마주보고 즐기시옵는/복되신 성삼위께 영광있으라."-

 

성인들의 축일을 맞을 때마다 늘 우선 확인해 보는 것이 생몰연대입니다. 너무 자명한 사실이지만 늘 새롭게 와닿는 탄생과 죽음입니다. 성인들도 반드시 언젠가는 죽는 다는 것입니다. 언젠가의 틀림없는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묻게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만76세 선종하기까지 참 치열한 삶을 사셨습니다. 삶이든 여성이든 학문이든 진리든 성인은 참 치열하게 사랑하였습니다. 성인의 지칠줄 모르는 탐구의 저력은 ‘진리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기도 후반부는 그대로 성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저희도 성인의 정신을 따라 참된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을 그리워하고, 영원한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찾게 하소서.”

 

성인은 물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하느님만을 찾는, ‘그리움의 구도자들’입니다. 사랑 빼놓으면 성립이 안되는 성인들의 삶입니다. 성인의 생애를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진리를 향한 구원의 불꽃’으로 정의할 수 있고, 하여 성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진리의 연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진리의 연인’, 참 아름다운 말마디입니다. ‘진리의 연인’으로 살고 싶은 것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 모두의 참된 소망이기도 합니다.

 

성인에 대한 일화와 주옥같은 잠언도 무궁무진 합니다. 사막의 수도자 ‘안토니오의 생애’에 큰 충격을 받았고 어느날 갑작스럽게 ‘Tolle lege’(집어 읽어라) 라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펴든 성서 구절이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이었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하여 회심후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에게 387년 만33세 부활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후 위 말씀 그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입고 참 치열하게 살았던 성인입니다. 고백록 서두의 고백 역시 감동적입니다. 아침 성무일도시 즈가르야의 노래 후렴도 여기에 근거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당신의 권능은 크고 당신의 지혜에는 한량이 없습니다.---그래도 인간,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을 찬미하며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 놓으셨기에 당신 안에서 쉬기 까지는 저희 마음이 평온치 않나이다.”

 

이어 철학적 유언과도 같은 다음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저녁 성무일도시 성모의 노래 후렴은 이 말씀에 근거합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교회 역사상 바오로 사도 이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성인입니다. 개신교 형제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인이 바로 바오로 사도에 이어 성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열정에 필적하는 ‘진리의 연인’아우구스티노스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의 주인공 바오로 사도의 삶은 얼마나 치열한지요. 이 또한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께 대한 갈림없는 사랑의 표현들입니다. 신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온갖 수고와 고생을 감수하며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한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도는 참으로 경건하고 의롭게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한 것에 대해서는 신자들이, 또 하느님이 증인이시라고 확신에 넘처 말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신자들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하느님의 나라로 안내한 사랑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신자들이 자신이 선포한 말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에 대해 하느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바오로 사도의 순수한 사랑도 감동적입니다. 정말 강론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말씀은 살아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성 아우구스티노와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와 테살로니카 신자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엊그제에 이어 계속되는 불행선언이 무려 도합 7회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악행을 반복하는 이들!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져 하여라.”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누구입니까? 표리부동의 내적분열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신을 모르는 무지와 무사유의 영혼없는, 생각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무지와 무사유에 기생하는 악입니다. 정말 치열하게 하느님을 찾는 노력에 항구할 때 주님과의 내적일치요, 주님을 닮아 진실과 겸손, 지혜와 자비의 삶입니다. 

 

절대로 이런 깨어 있는 ‘진리의 연인들’에게 악은 기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의 내적일치로 주님을 닮은 진실과 겸손, 지혜와 자비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어제에 이은 화답송 시편 139장이 참 은혜롭습니다.

 

“주님, 당신 숨결 피해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누워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제가 새벽놀의 날개 달아, 바다 끝에 자리 잡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 손이 저를 붙들어 주시나이다.”(시편139,7-10). 

 

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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