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같은 인생 -착하고 성실한 삶-2019.8.31.연중 제2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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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31.연중 제21주간 토요일                                                                         1테살4,9-11 마태25,14-30

 

 

 

시詩같은 인생

-착하고 성실한 삶-

 

 

 

우리 수도자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평생 끊임없이 하루에도 무려 일곱차례 그 믾은 최고의 시편들을 읊거나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서의 시편보다 더 좋은 시들은 없을 것입니다. 수천년간 검증된 기도의 교과서 같은 영원한 시편들이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믿음의 선배들이 시편을 노래하며 하늘 나라를 살다가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기도와 고백으로 바치는 시편들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그렇게 영혼을 살리고 풍요롭게 하는 영혼에 식食이되고 약藥이 되는 성서의 시편들입니다. 하여 피정오는 분들이나 면담고백성사차 오는 분들에게 시를 읽히기도 합니다. 어제도 단체 피정 온 분들에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와 “행복기도”를 함께 소리 맞춰 낭송하도록 하니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때로는 면당성사때는 성가의 시편을 노래하게도 합니다. 얼마전 부부가 면담차 왔기에 한 번 함께 좋아하는 성가를 노래해보라 했더니 “대영광송”을 노래했고 순수한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어린이처럼 순수하게 만드는 성서의 시편들입니다. 얼마전 어느 자매에게 시집 선물을 받고 감사메시지를 전했을 때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아, 저 또한 고맙습니다. 신부님 강론이 시입니다.”

“사진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매님 역시 시같은 인생입니다.”-

 

‘시같은 인생-착하고 성실한 삶’,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참 무수한 시들입니다. 사람 숫자 만큼 많은 것이 시입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보석寶石’이고 사람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꽃'이자 ‘하느님의 시詩’입니다. 

 

시같은 인생들입니다.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각자 고유의 아름다운 시편같은 인생들입니다. 매일의 시편성무일도가 그렇게 우리를 시같은 아름답고 고귀한 인생으로 만들어 줍니다. 창조와 구원의 시편들입니다. 두 편의 시를 나누고 싶습니다.

 

-“산속의 꽃/이름 없이/애툿하게 피고 진다

당신의 사랑으로 생명을 입으니/부러움 없는 꽃을 피우리라.”-

 

선물 받는 홍삼 정관장 박스에 쓰여진 시입니다. 흡사 하늘 생명으로 곱게 피어난 꽃같은 인생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또 어제 신문에서 읽은 ‘몽당비 한 자루’라는 시도 나눕니다.

 

-“학교 화장실 청소 담당 신만자 여사/학생들 8교시 수업하듯

여덟 개나 되는 화장실 혼자/오십 분/뻘뻘 땀 흘리고

십 분 종소리에 맞춰 숨 돌리는/고3보다 더 고3같은 우리 만자씨

삼십 년 부산역 열차 닦다/인공관절 해넣고 잘렸다는 만자씨

어쩌다 차 한잔해도/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

세상 사람 다 고마운 만자 씨/훗날 하느님 앞에 가면

평생 지구만 닦다 왔구나/칭찬 받을/닳고 닳은 몽당비 한 자루”-고증식

 

이처럼 쉽고 실감나는 생활시가 감동을 줍니다. 오늘 복음의 착하고 성실한 종같은 참 아름다운 시같은 인생입니다. 하느님의 평가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입니다. 나름대로 하느님 보시기에 착하고 성실하게 시처럼 아름답고 품위있게 산 이들은 모두 1등입니다. 

 

일률적 잣대가 아닌 각자 하나하나가 고유의 잣대입니다. 각자 받은 탈렌트 대로 최선을 다하면 모두가 1등의 구원입니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평생 마라톤 경주입니다. 자기 페이스대로 착하고 성실하게 완주하면 모두가 1등의 구원입니다. 

 

절대 비교하여 우쭐댈 것도 없고 주눅들어 위축될 것도 없습니다. 사실 형제들이 착하게 성실하게 살면서 각자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면 바로 거기가 하늘 나라의 실현이고 우리 수도공동체가 그의 빛나는 모범입니다. 

 

오늘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그대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어제 하늘 나라의 비유는 거룩하고 슬기롭게 살 것을 권고했고 오늘 하늘 나라의 탈렌트 비유는 착하고 성실하게 살 것을 촉구합니다. 거룩하게 슬기롭게 살 때 하늘 나라의 실현이듯, 착하고 성실하게 살 때 하늘 나라의 실현입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같습니다. 다섯 탈렌트 받아 다섯 탈렌트 남긴자나, 두 탈렌트 받아 두 탈렌트 남긴자나 똑같은 칭찬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업적의 양이 아닌 삶의 성실도를 보십니다. 이들이 상징하는 바 참으로 하느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착하고 성실하게 본분에 충실하면서 형제애를 최대한 발휘하여 풍요로운 인생을 산 이들입니다.

 

반면 한 탈렌트를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한 바친 소심하고 의심 많고 나약하고 자폐적인 은둔형 외톨이 종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며 주인의 엄한 질책을 받습니다. 한국 인구의 1/4이 일인 가구라 합니다. 자칫 잘못되면 이런 자폐적 인생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신뢰와 감사가 없고 형제애의 실천이 없고 나만의 이기적 삶을 추구한다면 누구나의 가능성이 바로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삶은 선물입니다. 자랑할 것은 내가 아니라 탈렌트를 선물하신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의 자각이 우리를 겸손하고 지혜롭게 합니다. 그리고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는 자에게 날로 더해지는 축복입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대로 영적 삶에도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착하고 성실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합니다. 형제애의 실천은 기본이고 가능하면 형제들에게 짐이 아닌 선물인생이 되라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친히 이런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지시한 대로,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

 

이래야 품위 있는 삶이고 이웃에 신세를 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교육의 원리이자 공동체 삶의 원리와도 같은 “1.제 앞가림을 할 수” 있고, “2.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인생을 마칠 때 주님 앞에 받은 탈렌트의 손익계산이 아니라, 하루단위로 받은 탤런트를 잘 활용했는지 헤아려 보는 것이 구원의 지혜이겠습니다. 바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은 주님 앞에서 어제 하루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자, 오늘 하루 받은 탈렌트를 주님의 뜻에 따라 착하고 성실히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다스리러 오시는 성체성사의 주님이십니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시편9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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