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삶 -하느님 중심의 삶-2019.9.26.연중 제25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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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6.연중 제25주간 목요일                                                                  하까1,1-8 루카9,7-9

 

 

 

참 아름다운 삶

-하느님 중심의 삶-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번 피정은 시작부터 오늘 미사로 끝날 때까지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수녀님들께도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첫날 ‘사랑’ 주제 미사 강론으로 피정이 시작됐고 마지막 날 오늘은 ‘아름다움’ 주제 미사 강론으로 끝납니다. 

 

사랑으로 시작하여 아름다움으로 끝나니 얼마나 멋집니까!

인생도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사랑하며 살아야 아름답게 떠나는 선종의 죽음입니다.

알렐루야! 찬미하며 살다가, 아멘! 감사하며 떠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선종의 죽음이라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겠습니까!

 

오늘 강론 주제는 어제 아침 식사하며 착안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한 밤중 기상하면 그날 강론을 쓴다음 다음 날 날자와 성서 말씀을 확인한 후 대략 읽어 보고 하루 내내 묵상합니다. 그러던 중 아침 정성 가득 담긴 아름다운 식사를 하며 착안한 강론 제목이 “참 아름다운 삶-하느님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전번 피정지도때도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매끼마다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아 이렇게 다양하게 식탁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고! 큰 접시에 담아 온 음식 색깔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 몇 번은 사진에 담기까지 했습니다. 아,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기에 아름답게 표현됨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사랑의 환대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대중 가요 가사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인생을 사랑할 때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가난을 사랑할 때 가난은 아름답습니다. 정결을 사랑할 때 정결은 아름답습니다. 순종을 사랑할 때 순종은 아름답습니다. 수도생활을 사랑할 때 수도생활 역시 아름답습니다. 가톨릭 우리 교회를 사랑할 때 교회도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저도 형제자매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랑하는---’이란 서두로 시작하니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한다 고백하니 모두가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여 제 죽으면 장례미사 입당성가는 성가402장을, 퇴장 성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를 미리 부탁해 놓겠습니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주님이 지었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주님과 함께 살아 가리라

온-세상 만민이여/주를 찬양하라/그분의 위대하심을/높이 찬양하라”-

 

성가 402장 1절은 얼마나 신납니까! 사랑의 찬양, 사랑의 기쁨,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 하여 새벽 강론이 끝난 3:45분에 담당 수녀님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루시아 수녀님!

오늘 미사시 입당성가는 성가 402장, 퇴장성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로 할 수 없을까요! 제 오늘의 간절한 소원이고 오늘 강론 주제와도 잘 어울립니다! 갑작스런 부탁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소원대로 이루어져 미사가 진행되니 수녀님이 참 고맙고 또 얼마나 가슴 떨리던 행복이던지요!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찬미할 때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하여 저절로 솟아나는 주님 사랑을 고백하는 행복기도입니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저의 생명/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감사와/감동이요/감탄이옵니다

날마다/새롭게 시작하는/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피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사진에 담았던 장면은 마리아 성모님상과 사제관 언덕 가난한 뜨락 예수님상 배경한 하얀 청초한 사랑의 구절초꽃 무리들이었습니다. 어제 어둑할 저녁에 찍은 구절초꽃무리들은 흡사 밤하늘의 흰별꽃들처럼 환상적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흡사 성전에서 기도할 때 제대의 예수님을 향한 수녀님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표현됨을 봅니다.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선물에 아름다운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절대 명령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가 목표하는 바도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이 바로 회개가 아닙니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찬미와 감사, 자비와 지혜, 침묵과 경청, 겸손과 순종, 사랑과 섬김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삶이 어디있겠습니까!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사랑의 삶만이 인간의 부정적 본질과도 같은 무지와 허무의 병에 대한 유일한 예방제이자 치유제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빛에 흔적없이 사라지는 무지와 허무의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새삼 인간이 물음이라면 사랑의 하느님만이 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하까이 예언자와 복음의 헤로데 영주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하까이 예언자가 하느님 중심의 삶을 대변하는 사랑의 사람, 빛의 사람이라면, 헤로데는 자기 중심의 무지의 사람, 어둠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오는 안정과 평화요 확신에 넘친 말씀입니다. 

 

주님의 집 성전은 공동체 삶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 중심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은 주님의 집 성전을 사랑하며 우선순위에 둡니다. 제일 아름답고 편안해야 할 공동체 삶의 중심이자 모든 영혼들의 쉼터가 성전입니다. 새삼 우리의 주님의 집 사랑을 점검케 하는 하까이 예언자의 진정성 가득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집이 무너져 내려져 있는데 너희가 판벽으로 된 집에서 살 때이냐?---너희가 살아 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품팔이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넣는 꼴이다.---너희가 살아 온 길을 살펴 보아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지어라. 그러면 나는 그 집을 기꺼이 여기고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리라.”

 

얼마나 고무적이고 핵심을 일깨우는 말씀인지요. 공동체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라는, 주님의 집 성전 건축을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새로이 하라는 예언자의 강력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아니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헛된 노고의 삶이요, 결코 허무와 무지, 무의미한 삶의 늪, 심연의 블랙홀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눈 밝은 사랑과 빛의 하까이 예언자와 참으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무지와 어둠의 사람, 헤로데 임금입니다. 예수님의 출현에 전전긍긍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헤로데입니다. 무지와 우유부단의 어리석음으로 세례자 요한을 참수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림이 분명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헤로데의 불안과 두려움을 반영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의 부재에서 오는 무지의 어리석은 행위로 자초한 불안이요 두려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떠나선 안정과 평화도 없습니다. 결코 무지와 허무의 어둠의 블랙홀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악의 하수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집은 우리 영혼의 궁극의 안식처, 피난처, 정주처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랑의 기적입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은 하느님 현존의 사랑의 충만으로 바뀌니 바로 이것이 사랑의 기적입니다. 

 

화답송 후렴처럼 주님은 당신 백성인 우리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 하느님 사랑의 화신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천명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하여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참 아름다운 삶으로 변모시켜주시며, 사랑의 기적의 삶을 살게 합니다. 끝으로 행복기도중 한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 하느님/사랑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아름다운 세상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아름다운 천국/하느님의 나라이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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