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 -하느님은 ‘삶의 중심’이시다-2019.9.28.연중 제25주간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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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8.연중 제25주간                                                       즈카2,5-9.14-15ㄷ루카9,43ㄴ-45

 

 

 

믿음의 여정

-하느님은 ‘삶의 중심’이시다-

 

 

 

믿는 이들의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요즘 참 많이 사용하는 삶은 ‘여정’이라는 말마디입니다. 이런 믿음의 여정에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십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믿음의 여정-하느님은 삶의 중심이시다-’로 정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할 때 어느 계절에 와 있습니까? 나이 80을 한 평생으로 하여, 20까지는 봄, 40까지는 여름, 60까지는 가을, 80까지는 겨울로 치면 말입니다. 이 사계 인생들중 아마 가장 많이 수도원을 찾아 피정하는 분들은 가을 연령대에 걸친 분들일 것입니다.

 

가을은 무엇보다 기도의 계절이자 수확의 계절입니다. 보십시오. 가을철 9월은 순교자 성월, 10월은 묵주기도 성월, 11월은 위령성월 보다 시피 모두 기도의 계절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어느 계절보다 기도 많이 해야 할 가을철입니다.

 

가을은 익은 열매들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수녀원 피정을 끝내고 올 때 황금빛으로 익어가던 평야의 벼들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열매 익어가는 황혼의 노년의 아름다움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런지요. 흡사 저녁 노을 아름다운 일몰日沒 때 같은 노년의 아름다움도 연상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여정중 과연 내 인생은 지금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겠는지요? 가을 인생이라면 요즘 여기 요셉 수도원 과수원의 배나무들처럼 열매 탐스럽고 향기롭게 익어가는 인생이겠는지요? 영적 열매 부실한 가을 인생이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꽃피는 봄에 이어 열매익어 가는 가을입니다. 은은한 봄의 꽃향기도 좋지만 편안하고 푸근한 가을의 열매 향기는 더 좋습니다. 과연 영성 열매의 향기, 신망애信望愛 열매의 향기 은은 그윽한 가을 인생인지요. 어제 참으로 오랜 만에 자매님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피정에 참여했던 수녀님으로부터 제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 전문을 인용합니다.

 

-“신부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오랜만에 정아가다 수녀님을 통하여 소식듣고 기쁘고 반가웠습니다. 수녀님 말씀이 이번 피정 주옥같고 옛 고승高僧같은 변함없으신 신부님이시라고 말씀하시며 강의 책 두고두고 보신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저역시 말씀 고플 땐 강론집 읽지요. 언젠가 뵈려 가려해도 제 건강이 안좋아져서 때론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못갔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고 늘 불암산 아래 정주하고 계신 신부님, 제가 찾아 뵐때까지 건강하세요. 신부님, 행복하세요. 황희숙 소화 데레사 올림”-

 

믿음의 여정에,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할 때 한결같이 여전한 변함없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바로 분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서원이 이에 해당됩니다. 말씀이 고플 때 강론을 읽는 다는 표현이 참 절실하고 아름답습니다. 늘 하느님을 배곺아 하는, 목말라 하는 수도자들입니다. 어찌 수도자들뿐이겠습니까? 많은 믿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하여 하느님이 배곺아, 목말라 하느님을 찾아 말씀을 먹고 기도를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어제 대전에서 어느 부부가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결혼한 30대 초반의 아들이 심한 게임 중독으로 수도원에 장기간 머물며 치유기간을 가질 수는 없는가 알아보려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저절로 간다는 이제 게임 도박때문에 도벽까지 생겼다는 것입니다. 후에 이런 내용을 들은 수도형제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었습니다.

 

“중독은 병입니다. 중독에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 빠진다든지, 서바이블 게임을 한다던지, 높은 산에 땀을 뻘뻘흘리며 오른다던지---그런데 돈을 거는 도박 성격만한 재미가 없을 것 같고---병원에 입원 치료해도 장기적 해결책은 못될 것 같고---”

 

뚜렷한 결론이 없었습니다. 육신의 병 이상으로 참으로 무서운 것이 영혼의 병, 마음의 병, 정신의 병입니다. 무엇보다 중독이란 병이 참 심각합니다. 영혼을 육신을 파괴하여 폐인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여 인생광야여정중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이지만 잘못 중독으로 미치면 폐인廢人이 된다는 제 지론입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근원적 배고픔을, 목마름을, 갈망을, 갈증을 해소, 해갈시켜 줄 궁극의 대상은 하느님뿐이기 때문입니다. 날로 살아갈수록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깊어가는 우정의 사랑이 참으로 건강한 영육으로 살게 합니다. 

 

하느님 찾아 만나는 기쁨으로, 맛으로, 재미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의 기도문, 아무것도 너를 이라는 가사와 곡이 생각납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느님 중심의 삶만이 한결같은 안정과 평화의 삶에 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아직 이런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이 미약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 놀라다가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듣자 전전긍긍 불안해 합니다. 그 말씀을 알아 듣지 못했으니 그 뜻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대하여 묻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합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물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이란 말씀까지 함축된 예고입니다. 제자들은 몰랐지만 오늘의 우리는 이미 압니다. 바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심을 말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이 이점을 깨달았더라면 불안해 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만, 아직은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신 임마누엘 하느님의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구절이 이를 입증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바로 하느님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믿음의 여정중에 우리의 영원한 도반으로 삶의 중심에 모시고 우정을 깊이할 때 참으로 한결같은 안정과 평화의 행복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 믿음의 여정은 그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갈 때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건강한 영혼에 참나의 실현입니다. 바로 제1독서 즈카르야 예언자의 세 번째 환시중 다음 예언이 그대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파스카의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둘러 싼 보호의 불 벽이 되어 주시고 우리 한가운데에 영광이 되어 머무르시니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 시온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보호의 불벽이 되어 주시고 우리 안에 영광이 되어 머무르심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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