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9.30.월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347-419/420) 기념일     

즈카8,1-8 루카9,46-50

 

 

 

배움의 여정

-기쁨이 넘치는 아름다운 형제애의 공동체-

 

 

 

오늘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기념일입니다. 성인의 가톨릭 공인 불가타 성서중 신약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구약은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는 데, 391년부터 406년까지 무려 16년이 걸렸고 이는 참으로 성인의 위대한 업적에 속합니다. 성인의 삶을 요약한 아침 성무일도 찬미가가 참 아름다워 일부 인용합니다.

 

-“성경의 하늘나라 푸른목장을/땀흘려 정성다해 가꾸신 당신

여기서 모두에게 공급하셨네/백배의 풍요로운 영혼양식을

 

사막의 고요함을 갈망하면서/하느님 면전에서 늘깨어있고

육신을 괴롭히고 극기하면서/자신을 주성부께 바치셨도다”-

 

삶은 여정입니다. 배움의 여정입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여정입니다. 배워야 하는 여정이기에 졸업이 없는 인생 학교입니다. 참으로 배워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니 모두가 배워야 합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고 기도도 배워야 하고 순종도 배워야 하고 섬기는 것도 배워야 하고 공동체 생활도 배워야 합니다.

 

하여 어느 저명한 수도신학자는 수도생활을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했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평생 하느님을 치열히 찾았던 구도자 예로니모 성인도 이 정의에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갈망하여 참으로 말씀을 사랑하여 배움에 여정에 항구했던 분입니다. 오늘 성인 기념 미사중 본기도문에서도 특히 강조되는 바 말씀입니다.

 

“하느님 복된 예로니모 사제에게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맛들이게 하셨으니, 저희 하느님 말씀에서 생명의 샘을 찾고 구원의 양식을 얻어, 더욱 풍요로이 살아가게 하소서.” 

 

영성체송에 나오는 예레미야의 고백 역시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말씀 맛으로 살아간 성인들임을 깨닫습니다.

 

“주 하느님, 당신 말씀을 찾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나이다.”

 

새삼 말씀과 영혼의 만남만이 참 기쁨과 즐거움, 행복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성 예로니모의 성경 사랑은 다음 말씀에서 잘 들어납니다.

 

“늘 성경을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경을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하여 교회는 성 예로니모에 이어 성 암브르시오, 성 아우구스티노, 성 그레고리오 대 교황 이들 네 분을 서방교회의 사대교부로 꼽습니다. 

 

분도 성인은 규칙서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라고 수도공동체 건설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여 분도 수도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갈망하고 주님을 섬기는 배움의 여정에 항구할 때 성공적인 공동체 건설임을 깨닫습니다. 시편 133장에 바탕한 ‘좋기도 좋을시고’ 성가 416장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좋기도 좋을시고/아기자기 한지고/형제들이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오직 하나 하느님께/빌어 얻고자 하는 것/한 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참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기쁨이 넘치는 아름다운 형제애의 공동체 건설입니다. 그러니 공동체의 불완전 때문에 낙담해서는 안됩니다. 사도들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 배움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로마12,10)

“서로 뜻을 같이 하십시오.”(로마12,16)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로마15,7).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1코린11,33)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갈라5,13)

“서로 격려해 주십시오.”(1테살5,11)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십시오.(에페4,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32)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에페5,21)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야고5,16)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1베드5,5)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눕니다.”(1요한1,6)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6,9-10).

 

함께 모였다 하여 저절로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항구한 깨어있는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공동체의 건설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사도들의 충고 말씀을 통해 서로 함께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도 중요한 수행인지 깨닫게 됩니다. 말그대로 함께 사는 것이 수행중의 수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갈 때 기쁨도 선사됩니다. 일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생활의 기쁨은 하느님 나라의 일부가 됩니다. 이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며 실존의 단순성과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을 다 포용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형제애는 자신을 형제생활에 바치고 성령의 활동을 신뢰하면서 은총을 구하고 서로서로 받아들일 줄 아는 형제자매들 위에 내려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여 기쁨에 대한 이런 증언은 수도생활에 대한 강력한 매력이 되고, 성소의 원천이 되며, 인내에 대한 격려가 됩니다. 그러니 수도공동체 안에서 이런 기쁨을 일구어 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이런 기쁨의 형제애의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복음이 답을 줍니다. 참으로 서로를 최고의 존재로 여겨 섬기는 것이니 바로 이것이 참 겸손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 공동체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자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세우시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어린이가 상징하는 바 제자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주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제자 하나하나가, 비록 가장 작은 사람처럼 보여도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눈에 크고 작은 사람의 구별이지 하느님 눈에 당신이 보낸 사람은 누구나 하나하나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한 깨달음이 주님처럼 형제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귀하게 대하게 합니다. 주님을 닮은 겸손한 사람은 너그럽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이들을 막아 보려 하였다는 제자들에게 주신 다음 말씀이 우리에겐 참 적절한 가르침이 됩니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참으로 선을 추구하는 이들은 넓게 보면 동료들이니 사소한 차이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고귀한 품격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모두 주님께 보냄받은, 주님께 불림 받은 하나하나가 가장 큰 귀한 존재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메시아 시대의 행복에 나오는 시온과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우리의 신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시온에 커다란 열정을, 격렬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 내가 시온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한 가운데에 살리라. 예루살렘은 ‘진실한 도성’, 만군의 주님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리리라.”

 

우리 한 가운데에 사시는 주님은 우리에 대해 격렬한 열정을 지니고 계시며 우리 모두 진실한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니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배움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시며 참으로 기쁨이 넘치는 아름다운 형제애 공동체를 이루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시편1,2-3). 아멘.

 

 

 

 

 

 

 

 

  • ?
    고안젤로 2019.09.30 07:37
    사랑하는 주님, 저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들이 저희껏이 아니라
    주님 주신 사랑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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