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귀가歸家의 여정-2019.11.2.토요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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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토요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지혜3,1-9 로마5,17-21 마태11,25-30

 

 

 

삶과 죽음

-귀가歸家의 여정-

 

 

 

위령감사송 다음 아름다운 대목은 늘 들어도 위로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우리는 매일 끝기도후 장상의 아름다운 강복을 받고 잠자리에 듭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거룩한 죽음보다 더 큰 은총도 없고, 이웃에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언젠가의 갑작스런 거룩한 죽음이 아니라 거룩한 삶에 따른 거룩한 죽음임을 깨닫습니다.

 

어제는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이었고, 오늘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의 날이자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피할 수 없는 직면해야 하는 죽음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낙엽지듯 곳곳에서 들려 오는 죽음의 소식들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갑니다. 죽음이 있어 삶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깨닫습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요 사랑이지 죽으면 기도도 사랑도 끝납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잊어버릴 때 비로소 죽음은 시작되며, 우리가 참으로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죽음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참으로 살기 위해 죽음에 대한 자각은 필수입니다. 하여 제가 늘 강조하는 둘이 죽음과 하느님에 대한 기억입니다. 하여 분도 성인은 물론 사막 교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을, 하느님을 생각할 때 온갖 욕망과 환상은 걷혀 투명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입니다. 죽음은 마지막 무無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입니다. 분명 이를 믿는 다면 귀가의 여정은 ‘희망의 여정’, ‘기쁨의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하루하루를 참으로 소중히 살 것입니다. 

 

귀가의 여정을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실감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피정하는 분들에게 참 자주 드는 예화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귀가 여정을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과연 봄, 여름, 가을, 겨울중 어느 지점에 와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대부분 숙연해 지는 분위기이며 자신의 삶을 새로이 추스르기도 합니다.

 

귀가의 인생 여정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도반과의 우정입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다짐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허무와 죽음에 대한 유일한 답도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귀가 여정 중의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고백성사 보속시 말씀 처방전으로 참 많이 써드리는 복음입니다. 참으로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 우정이 깊어 갈 때 예수님을 닮아 온유와 겸손이요 삶의 멍에는 점차 편해지고 삶의 무게 역시 점차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러니 귀가 여정중, 주님과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 역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과의 우정과 더불어 우리의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끊임없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외적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주님과는 물론 이웃과의 소통의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고립단절의 불통의 관계라면 거기가 바로 지옥이요 연옥입니다. 그러니 파스카의 예수님과 우정의 관계와 더불어 이웃과의 관계가 깊어갈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요, 지옥같은, 연옥같은 삶중에도 천국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곤궁한 환경 중에도 기적같은 삶을 사는 분들을 만나면 기탄없이 위로하고 격려하곤 합니다.

 

“아, 자매님은 살아서 연옥, 지옥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믿음으로 기쁘게, 감사하며 사시네요. 자매님은 죽어서 연옥의 고통을 겪지 않고 직천국행입니다.”

 

바로 지혜서가 말하는 의인들이 바로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들이 겉으로는 벌을 받는 것 같지만 내면은 평화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주님의 도반들인 의인들이요, 주님과 우정의 선물이 바로 평화와 불사의 희망입니다.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는 의로움으로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니 영원한 도반이신 주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죄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의 은총속에 의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귀가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 모두, 당신과 우정의 일치를 날로 깊이 해주시며 당신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인생 허무에 대한 답도, 죽음에 대한 답도 주 예수님뿐입니다. 다음 행복기도 그대로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알렐루야, 하느님 찬양하라, 내 영혼아

한평생 주님을 찬미하라

이 생명 다하도록 내 하느님 기리리라.”(시편146,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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