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만남을 통한 ‘참 나’의 발견 -열망, 환대, 회개-2019.11.3.연중 제31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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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연중 제31주일                                                지혜11,22-12,2 2테살1,11-2,2 루카19,1-10

 

 

 

주님과 만남을 통한 ‘참 나’의 발견

-열망, 환대, 회개-

 

 

 

어제 일간신문 기사중 눈에 띤 말마디들입니다. 

 

-“몸이 그냥 학교를 거부해요” 중고생 47.3% “관두고 싶다”-

-“대한민국 위기의 핵심은 좌우, 위아래가 아니라 ‘앞뒤’다-

 

모든 세력이 아주 오래된 과거에 집착할 뿐, 어느 누구도 미래를 얘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담한 현실입니다. 혁신, 미래, 새로움, 통합에 대한 비전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치학자의 탄식입니다. 참으로 공부가, 내적혁명의 회개가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 복음의 자캐오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은 말이 됩니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은 행동이 됩니다.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행동은 습관이 됩니다. 습관을 조심해야 합니다. 습관은 인격이 됩니다. 인격을 조심해야 합니다. 인격은 운명이 됩니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참으로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느님을 찾는 근원적 열망의 생각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무사유에 기생하는 악입니다. 생각없이, 영혼없이 자기를 잊고 살다보면 괴물도 될 수 있습니다. 날로 삶이 거칠어지고 사나워지고 굳어지고 어두워진다면 필시 괴물이 되어가는 징조입니다.

 

만나야 합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 환대의 만남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깨어 찾지 않으면 주님은 그냥 지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 거리를 지나가고 계실 때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여기 등장하는 열망의 사람 세관장 자캐오입니다. 

 

첫째,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열망이 기본입니다.

자캐오는 참으로 주님을 찾는 깨어 있는 열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으니 키가 작았기 때문입니다. 세관장에 돈은 많은 부자였지만 변변치 못한 외모에 제대로 사람 대접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며 살아온 자캐오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참 나를 살고자 하는 열망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궁하면 통하는 법입니다. 돌무화과나무과 발견되자 주저할 것 없이 즉시 돌무화과나무에 올랐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눈만 열리면 사소한 것들 모두가 주님의 섭리의 도구가 됨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다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 불멸의 영이 만물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지혜12,1). 아무도 생각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상한 활동이 필요한 법입니다.

 

둘째, 주님과 환대의 만남입니다.

주님을 찾는 열망이 있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제1독서 지혜서 말씀대로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것을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닮은 예수님은 고정관념steretypes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운 분이십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면의 진실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고정관념 넘어 자캐오의 내면의 진실을, 열망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자 가시던 길을 멈추고 돌무화과나무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에게 이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바로 오늘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의 오늘이 주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우리를 먼저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오늘 내 마음의 집에 머물러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자캐오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지요. 이름을 불러주는 분이 바로 주님이었으니 그대로 구원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대로 묵시록의 다음 주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20)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환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모든 이들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립니다. 죄인이라는 프레임에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습니다. 바로 원죄와도 같은 고정관념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고정관념 넘어 내면의 진실을 보십니다.

 

셋째, 회개입니다.

주님을 환대하면서 동시에 일어난 자캐오의 내적혁명의 회개입니다. 주님의 환대의 사랑이 저절로 자캐오의 회개를 촉발시킨 것입니다. 회개하여 사랑이 아니라 사랑해 줄 때 회개입니다.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합니다. '일어서서'란 말마디는 회개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부활한 당당한 모습의 자캐오를 가리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구체적 회개의 실천입니다. 전 주일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가 참 대조적이었던 것처럼 재물이 많아 슬퍼하며 떠난 어떤 부자와도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세관장 자캐오입니다. 

 

그대로 제2독서 바오로의 말씀이 실현되어,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자캐오를 회개로 이끌었습니다. 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자캐오를 통해 영광을 받고 자캐오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님의 감동적인 자캐오의 구원 선언은 그대로 하느님의 구원 선언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오늘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여 주님의 환대를 받고 이어 주님을 환대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복음입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의 내렸다” 매일의 오늘, 주님을 환대할 때 일어나는 축복의 구원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갈망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해 구원받지 못하고 괴물들이 되어 방황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캐오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평생 제대로 참 나를 살지 못하고 괴물처럼 어둡고 무겁게 지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참 나의 만남을 뜻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회개함으로 참 나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주님을 만나기를 갈망하십시오.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 오십니다. 2.주님을 만나 환대하십시오. 만나는 모든 이들을 통해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3.참으로 주님을 환대하여 만날 때 회개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어 참 나를 찾게 하시며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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