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죄 -끊임없는 회개가 답이다-2019.11.15.연중 제32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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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지혜13,1-19 루카17,26-37

 

 

무지의 죄

-끊임없는 회개가 답이다-

 

 

어제는 지혜가 무지에 대한 답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을 ‘진리의 연인’으로 호칭했다는 데 ‘지혜의 연인’으로 호칭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리의 연인, 지혜의 연인, 바로 하느님의 연인이자 벗임을 뜻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진리의 빛, 지혜의 빛임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진리와 지혜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우리 영적 삶에 참으로 본질적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깨달음처럼 떠오른 두 말마디가 새롭게 생각납니다.

 

“사람이 희망을 잃어 버리면 괴물이 된다!”

“죽음이 있어 삶이 선물임을 깨닫는다!”

 

희망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요즘 교황님이 참 많이 강조하시는 말마디가 희망입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궁극의 희망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이 희망없이 삽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무지의 죄-회개가 답이다.’입니다. 지혜가 무지에 대한 답이듯 회개 역시 무지에 대한 답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노아 때의 사람들이나 롯때의 사람들이 바로 무지한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예나 이제나 무지한 인간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또한 롯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누구도 이처럼 생각없이 본능적 욕망따라 무지하게 살다가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무지의 사람들이기에 이런 재앙의 죽음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반복되는 불행에서 벗어나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죽음이 있어 삶은 귀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꽃이 지자 비로소 꽃이 선물임을 깨닫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차동엽 신부가 선종하니 더욱 그분이 선물같은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문제로 직결되고, 결코 생각없는 무지의 삶을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여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분도 성인의 말씀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강론에도 수차례 인용했던 글귀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

 

참으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다면 70에 죽어 70에 묻혀야 할 것입니다. 생각없는 무지한 삶이라면 오래 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요. 하여 회개의 삶을 그리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지의 죄입니다. 무지에 답은 회개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지혜서는 자연숭배의 어리석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연을 숭배하면서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에 대한 개탄이요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그들은 용서 받을 수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아무도 무지의 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무지의 삶이었다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하겠는지요!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화답송 후렴 역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를 통해 무지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모두가 하느님의 성사요 선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집착하여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역시 무지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무지의 욕망에 눈이 멀 때 집착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회개와 직결됩니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똑같은 환경중에도 깨어 회개한 사람만이 구원받는 다는 진리를 보여 줍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여든다’는 주님의 말씀 역시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결같이 회개의 엄중함과 긴박함을 깨닫게 하는 복음입니다. 

 

무지에 답은 회개뿐이며 회개의 여정을 통해 날로 지혜로워지고 겸손해져 주님의 얼굴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의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성령과 더불어 참 좋은 지혜와 겸손을 선물하십니다. 사실 무지에 대한 처방에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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