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 -경계인境界人-2019.12.16. 대림 제3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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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대림 제3주간 월요일                                                    민수24,2-7.15-17 마태21,23-27

 

 

성령의 사람

-경계인境界人-

 

 

참으로 믿는 사람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성령파에 속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제1독서 민수기의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이, 오늘날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 대표적 인물일 것입니다. 

 

성령파에 속하는 성령의 사람은 경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계인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분은 아마 토마스 머튼일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참되 수도승은 경계인이자 주변인이 되어야 한다 했으며 사전을 찾아보니 그 뜻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경계인; 주변인과 같은 말로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

 

요즘 참 감명깊게 읽은 책이 ‘최명길 평전’입니다. 아마 한국 5천년 역사상에서 가장 참혹한 전란의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이어 계속됐던 16-17세기 조선시대일 것입니다. 병자호란전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은 참으로 치열했습니다. 여기서 주화파의 대표적 인물이자 충신忠臣이 최명길이며 그에 대한 어느 학자의 평에 공감했습니다.

 

“누구는 최명길을 ‘선택적 원칙주의자’라고 정의했지만 나는 그를 ‘경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계인은 누구 편에도 서지 않는다. 한쪽에 서면 대립적인 두 당사자를 동시에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는 것은 한쪽에 수동적으로 갇히는 게 아니라 경계에서 자기로 살아가는 자이다. 이 점에서 쇠락해가는 명과 떠오르는 청을 냉철히 관찰하면서 선택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나간 최명길이야말로 진정한 경계인이다.”

 

우리식으로 말해 참으로 깨어 있는 분별의 지혜를 지닌 성령의 사람이 경계인입니다. 우리 수도자의 수도복은 경계인의 표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더불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택한 ‘공명지조共命之鳥’란 말마디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사자성어 조사에 응답한 1046명의 교수 가운데 347명(33%)이 공명지조를 택했다 합니다.

 

“공명지조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상상속의 새로 ‘한몸에 두개의 머리를 가져 목숨을 함께 하는 새’를 가리킨다. 서로가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자기만 살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공멸하게 되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이다. 

 

불경에 따르면 이 새는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가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자 다른 머리는 이에 화가 난 나머지 어느 날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어 버렸고, 결국 두 머리가 모두 죽게 되었다. 

 

새는 좌우로 난다. 좌우의 공존이 둘다 사는 길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 이 사자성어를 택한 동기이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참 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분별의 지혜를 지닌 성령의 사람, 경계인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얼마전 6세기 가자의 수도승 발사누피우스의 ‘성령을 고수하라(Cleave to the Spirit)’는 내용도 새롭게 떠오릅니다.

 

“좋으신 하느님께 위로자 성령을 보내 주십사 기도하자. 성령이 오실 때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고 우리에게 신비를 계시하실 것이다. 성령께 인도되도록 하라. 마음에 속지 말고, 분산되지도 마라. 낙심이나 우울을 정신 안에 허용하지 마라. 

성령은 눈을 밝히고, 마음을 떠받쳐 주고, 지성을 들어 올린다. 성령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고, 힘과 겸손, 기쁨과 의로움, 인내와 온유, 사랑과 평화를 가르치고 부여한다. 하여 너는 확고한 바위를 지니는 것이다. 

성령을 소홀히 여기지 마라. 바람도 비도 강물도 바위 위에 세워진 건물을 무너뜨릴 수 없다. 형제여, 성령이, 성령의 기쁨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온전한 진리로 안내하도록 간청하자.”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발라암은 하느님의 영이 내리자, 성령의 사람이 되어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라 하며 그가 받은 4번째 신탁을 통해 귀한 진리를, 메시아 예수님 탄생을 예언합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무지의 편견에 사로 잡힌 적대자들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누가 이런 권한을 부여했는지 이의를 제기할 때, 성령의 선물인 분별의 지혜로 되치기 하며 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립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이미 물음에 답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르겠소.” 무책임하게 대답하자 예수님 역시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대답하며 참으로 지혜롭게 이들의 예봉을 무력화하며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듭니다. 이 또한 성령의 사람, 경계인만이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답변입니다.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성령파에 속한 ‘성령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인 경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령의 사람, 경계인이 되어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며 살게 하십니다.

 

“오소서, 주님, 저희를 찾아 오시어, 평화를 베푸소서. 저희가 주님 앞에서 온전한 마음으로 기뻐하게 하소서.”(시편106,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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