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정 교회의 ‘영원한 배경’이신 의인 요셉 -참 크고, 깊고, 고요하신 분-2019.12.22.대림 제4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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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대림 제4주일                                                         이사7,10-14 로마1,1-7 마태1,18-24

 

 

 

성 가정 교회의 ‘영원한 배경’이신 의인 요셉

-참 크고, 깊고, 고요하신 분-

 

 

 

대림2부 6일째 12월22일 저녁성무일도 ‘오 후렴’도 은혜롭습니다. 마침내 대림 4주일 영롱히 빛나는 대림촛불 4개가 주님께서 오심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 

 

“오 만민의 임금이시여, 모든 이가 갈망하는 이여, 두 벽을 맞붙이는 모퉁이돌이시니 오시어 흙으로 만드신 인간을 구원하소서.”

 

오늘 대림 4주일 복음의 주인공 의인 요셉이 만민의 임금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흡사 요셉 축일처럼 느껴지는 오늘 전례 분위기입니다. 우리 요셉 수도원의 주보 성인인 성 요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요셉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에 ‘산처럼!’ 이란 시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아버지 산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모자를 벗는다

있음 자체만으로/넉넉하고 편안한/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사랑만으로/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2000.11.17

 

요셉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이 흡사 성 가정 교회의 영원한 배경이신 의인 성 요셉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참 닮고 싶은 성가정 교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배경이 되시는 산같은 배경의 요셉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저녁 불암산!’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아/크다/깊다/고요하다/저녁 불암산!”-

 

언젠가 저녁 고요한 시간, 저녁 불암산을 감동깊게 바라보며 써놓은 시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 시를 바탕으로 어제 다시 소원이란 시를 써서 집무실 게시판에 붙여 놓고 좌우명 삼아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아/크고/깊고/고요하신 분

내/영원한 연인戀人/그분을 닮고 싶다”-

 

내 영원한 연인, 그분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 아버지라도 좋고, 예수님이라도 좋고, 의인 성 요셉이라 해도 좋습니다. 참으로 크고 깊고 고요한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의인 성 요셉을 닮고 싶을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감지되는 의인 성 요셉은 정말 이런 분입니다.

 

첫째, 의인 성 요셉은 참으로 큰 분입니다.

산같이 큰 사랑의 분입니다. 성 요셉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잉태된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놀랐을 까요. 그러나 성 요셉의 대응은 극히 침착했습니다. 다음 대목에서 성 요셉의 큰 사랑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의 마리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사랑이 참 감동적입니다. 내 안위보다는 마리아가 우선입니다. 참으로 평범한 듯 하나 참 큰 비범한 사랑입니다.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랑의 반영입니다. 하여 의로운 사람, 요셉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인 성 요셉은 참으로 깊은 분입니다.

바다같이 깊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연한 자유를 누립니다.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침묵중에 들려 오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입니다. 귀기울여 들을 때 겸손이요 깊어지는 내면입니다. 

 

깊이는 바로 겸손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의 가볍고 자만심 가득한 아하즈 임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요셉의 깊은 겸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한없는 인내의 기다림도 가능합니다. 참으로 산같이 큰 사랑에 바다같이 깊은 희망의 사람, 의인 성 요셉입니다. 

 

이런 요셉이었기에 하느님의 전폭적인 신뢰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천사를 통해 당신의 속내를 요셉에게 솔직하게 다 털어 놓으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치 하느님의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참 깊은 겸손의 사람 의인 요셉입니다. 들음의 사람이자 대화의 사람인 요셉입니다. 바로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이런 주님과의 끊임없는 들음과 대화의 기도요 더불어 깊어지는 내면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의인 성 요셉은 참으로 고요한 분입니다.

그대로 믿음의 사람, 내적 평화와 고요의 사람입니다. 바로 믿음의 순종이 고요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순종의 여정, 비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입니다. 

 

이런 여정과 더불어 저절로 고요도 깊어집니다. 깊은 바다는 고요하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존재 자체로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격려하는 하느님의 현존과도 같은 크고 깊고 고요한 의인 성 요셉입니다. 이런 고요한 내적평화의 요셉을 통해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도 가능했음을 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얼마나 은혜로운 임마누엘 이름인지요. 예수님뿐 아니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역시 또 하나의 ‘임마누엘’입니다. 참으로 임마누엘답게, 요셉처럼 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지요.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이니 순종의 절정입니다. 순종은 구원의 길이요 순종을 통해 주님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사는 지름길은 항구히, 충실히 의인 성 요셉의 덕을 배우는 것입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우리 역시 의인 성 요셉처럼 참 큰 사랑의 사람, 참 깊은 희망의 사람, 참 고요한 믿음의 사람, 즉 신망애信望愛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성도聖徒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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