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개안開眼의 여정-2020.1.3.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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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3.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1요한2,29-3,6 요한1,29-34

 

 

 

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개안開眼의 여정-

 

 

 

국내외 변화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이 참으로 역동적입니다. 이런저런 묵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얼마전 읽은 한 말마디가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중국의 고대 사상가 ‘노자는 철저한 반전, 반국가 담론이고 새로운 문명 건설이라는 진進에 반대하는 귀歸의 철학이자 민초民草의 철학이다.’ 참으로 노자의 지혜가 절실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앞으로, 정신없이, 생각없이 질주하는 ‘진進의 사고’가 아닌 일단 멈추어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귀歸의 사고’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넓이의 삶이 아닌 깊이의 삶을 뜻합니다. 지난 밤 40년전 초등학교 제자로부터 가톡 메시지 일부 내용입니다.

 

“선생님, 새해 인사 늦어 죄송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살라 알려 주셨는데, 저는 이제야 철이 조금 드나 봅니다. 후회도 하지만, 2020년 열심히 기도하고 살겠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돌아갈 고향처럼 계신 선생님 사랑합니다.”

 

언제나 돌아갈 그 제자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끊임없는 회개로 늘 새롭게 돌아가는 그 자리는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진進의 세상에 지친 이들이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귀천歸天, 귀향歸鄕, 귀가歸家, 귀원歸院, 모두 제자리를 향한 근원적 움직임을 나타내는 단어들입니다. 돌아갈 곳을 잃어, 잊어, 돌아갈 곳이 없어 내적으로 방황하는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입니다. 모두에게 돌아갈 제자리의 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여기 하느님의 집, 정주의 요셉 수도원입니다.

 

작년 한해는 물론이고 지금도 참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수도원입니다. 마치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가정같기도 하고 하느님 환대의 집같기도 한 수도원입니다. 참으로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자기를 잃지 않고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확실한 신원의식을 지니고 사는 일이요, 이를 위해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혼밥, 혼술,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여행),---혼자하는 여가활동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은 두드러진 1인 가구 증가세를 반영한다. 1인 가구 증가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여 1인 가구 ‘주거, 돌봄’ 지원 본격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교회가 큰 가정 역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톨릭 교회의 미사전례는 얼마나 은혜롭고 고마운지요! 모두가 함께 양 손을 펴들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는 혈연, 지연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느낌입니다. 참으로 1인가구 사람들에게는 큰 가정 품이 되어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연대감을 갖게 하는 미사은총이 더욱 필요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고도 고마운 우리의 신원입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애매하고 막연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아주 분명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품위있게 사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데 보고 배울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1독서의 사도 요한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신원에 대해 역설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 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목표하는 바 우리 궁극의 희망이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죄가 없어서 순결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여 닮아갈수록 순결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세례 받았다 하여 저절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사랑할수록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영적 성장이요 이는 평생 여정입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하느님의 자녀요 성령의 은총으로 사랑의 눈이 열려 주님을 만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의 여정은 그대로 ‘개안의 여정’이 됩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그 모범입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사랑의 눈이 활짝 열린 세례자 요한의 감격에 넘친 환희의 고백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 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참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주님과의 일치가 깊어져 눈이 열려 더욱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요한1서 마지막 부분의 말씀 역시 은혜롭습니다.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뵙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죄에 대한 궁극의 처방은 늘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게 하심으로 날로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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