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라” -참 나의 실현; 부르심과 응답-2020.1.18.연중 제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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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8.연중 제1주간 토요일                                             사무상9,1-4.17-19;10,1 마르2,13-17

 

 

 

“나를 따라라”

-참 나의 실현; 부르심과 응답-

 

 

 

“모든 것은 지나간다”, 매일 미사 말씀을 대하며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1독서의 흐름과 변화가 눈부십니다. 사무엘이 등장했는가 하더니 오늘은 새로운 인물인 사울이 등장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더불어 떠오른 대 데레사의 ‘아무 것도 너를’이라는 기도문이 생각났습니다. 대 데레사 성녀가 늘 기도서에 끼워 놓고 읽던 고백의 기도문이라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좋아하는 성가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네 소원이 무어뇨, 네 두려움은 무엇이뇨

네 찾는 평화는 주님께만 있으리

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 무얼 더 원하리

오 사랑하고 사랑하여 주님께 모든 사랑드리리

주님만을 바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가사가 좋아 2절까지 모두 인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과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늘 응답할 수 있도록 오늘 지금 여기 깨어 사는 것입니다. 수도원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썼던 글의 일부도 생각납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만나는 구원의 자리이자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이에겐 늘 새로운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의 업적에 안주하거나 미래를 앞당겨 걱정함이 없이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자나가지만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사는 이에겐 늘 영원한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야 합니다. 오늘이 미래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하느님께 맡기도 오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삶의 자세가 우리의 정주 서원이 뜻하는 바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서 타성에 젖은 안주의 삶이 아닌 늘 새로운 정주의 삶입니다.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 깨어 충실히 준비되어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 오십니다. 주님과의 은총이 만남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의 레위와 오늘 독서의 사울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의 은총에 앞서 이들은 각자 삶의 자리에 충실했으며 끊임없이 내면 깊이에서는 주님을 찾았음이 분명합니다. 길을 지나가시던 주님의 눈에 포착된 레위입니다.

 

“나를 따라라.”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를 부르시자 레위는 즉시 일어나 그분을 따릅니다. 부르심과 응답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에 합류함으로 새롭게 시작된 레위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그 삶의 목표와 방향, 삶의 중심과 의미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대로 예수님과의 만남은 구원의 만남임을 깨닫습니다.

 

삶은 만남의 여정입니다. 주님과 만남의 여정입니다. 레위를 부르신 똑같은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님은 한 두 번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새롭게 우리를 부르십니다. 매일 주님을 새롭게 만나야 삽니다. 어제 한 자매와의 면담성사때 대화도 생각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도저히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역시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아무도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영육으로 병들어 있는 병자들인 우리들이요, 죄중에 살아가는 죄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병자요 죄인이기에 부르신 것입니다. 병자와 죄인, 바로 우리의 신원이자 주님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주님의 교회 공동체에 합류할 때 치유와 용서요, 참 나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자각의 깨달음이 겸손입니다. 오늘 사울의 부르심도 참 신선합니다. 새로운 인물 사울에 대한 묘사도 기대감이 넘칩니다.

 

‘키스는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 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바로 이런 사울을 부르신 주님이십니다.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의 은총이 선행합니다. 주님은 사무엘을 통해 역시 삶의 자리에 충실했던 사울을 부르십니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을 맞춘 다음 그에게 사명을 부여 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역시 복음의 레위처럼 주님을 만남으로 새롭게 펼쳐진 사울의 인생여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평생 부르심과 응답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보다시피 사울의 인생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요. 끝까지 성소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사울을 통해 배웁니다. 

 

아무리 과거에 성소에 충실하며 잘 살았어도 오늘 지금 여기서 못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언제나 오늘 지금 여기의 현재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나를 따라라” 부르심에 응답해 다시 새롭게 주님을 따라 나서야 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의 부르심에 하루하루 충실히 응답하여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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