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없다 -묵묵한, 충실한,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삶-2020.1.29.연중 제3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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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9.연중 제3주간 수요일                                                        사무하7,4-17 마르4,1-20

 

 

 

절망은 없다

-묵묵한, 충실한,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삶-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해설 두 부분으로 이루어 집니다. 앞서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초점은 씨가 아니라 씨뿌리는 사람의 자세에 있습니다.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삶의 자세를 반영합니다. 씨뿌리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묵묵히, 충실히, 한결같이 주어진 삶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아무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일희일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가능합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주어진 과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결과의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충실도를 보십니다.

 

바로 씨뿌리는 사람의 자세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입니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말도 생각납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결코 절망, 원망, 실망함이 없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일을 계획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일을 이루시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농사의 이치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농부이시다', 바로 농사의 성공은 80% 하느님께 달려 있다는 고백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여 참 농부는 하느님을 닮아 겸손하고 지혜로우며 인내심이 뛰어 납니다. 참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다 합니다. 결코 절망함이 없이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며 과정에 최선을 다합니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그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그대로 우리 삶의 과정을, 삶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순탄대로만의 순경의 삶은 없습니다. 외적 환경을 봐도 길바닥같은 때도 있고, 돌밭같은 때도 있고, 가시덤불같은 때도 있고, 좋은 땅의 때도 있습니다. 어찌 외적 환경뿐이겠습니다. 내적 환경의 마음 역시 이런 네 땅의 경우처럼 변화무쌍, 한결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정따라, 기분따라, 마음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충실히 묵묵히 내외적 환경에 개의치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씨뿌리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해 일과표의 ‘삶의 궤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결코 내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인간 존엄과 품위를 지켜내는 길입니다.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인간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모습입니다.

 

이런 이들을 대하면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어제도 50대 중반의 자매를 만나 면담성사를 주면서 감동했습니다. 삶의 전쟁터 한 복판, 온갖 역경중에도 홀로 7살, 4살 짜리 남매를 20대 후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20여년간 쉴 새 없이 일하면서 두 아이를 ‘믿음으로’ 훌륭히 키워낸 자매였습니다. 

 

말그대로 한 눈 팔지 않고 가정, 직장, 교회의 삼각형 삶의 테두리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온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매였습니다. 보속으로 다음 말씀처방전을 써드렸습니다.

 

“자매님의 온갖 근심 걱정을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자매님을 돌보십니다.”(1베드5,7)

 

여기 보속 처방전에 스탬프 “웃어요!”. “괜찮아 힘내!”를 찍어 드리고, 이어 보속으로 하나 첨가하여 좋아하는 성가를 부르도록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이던지요! 정말 대죄는 절망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절망, 원망, 실망하지 않습니다. 결코 내외적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합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라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있습니다. 내 내적 자세를 끊임없이 새로이 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제2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해설이 여기에 속합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앗이 좋아도 내 마음밭이 길바닥 같고, 돌바닥 같고, 가시덤불같으면 말씀의 씨앗들이 자랄 수 없습니다. 하여 끊임없는 회개를 통한 좋은 마음밭을 만드는 수행이 절대적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참으로 묵묵히 충실히 한결같이 반성하고 성찰하고 각성하면서 하느님 중심의 삶의 과정에 충실하며 책임을 다할 때 내외적 환경은 서서히 좋은 땅의 현실로 바뀌어 풍부한 결실의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마지막 대목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삶의 과정에서 한곁같은 수행의 노력으로 좋은 땅의 마음밭을 지닌 이들의 해피엔딩의 성공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100% 수행의 노력이 있을 때 100% 은총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바로 끊임없는 회개가 의미하는 바가 내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내 삶의 문장의 주어를 ‘내’가 아닌 ‘주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성독이며 겸손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사무엘하권에서 예언자 나탄이 다윗을 깨우쳐 주는 것도 바로 이점입니다.

 

보십시오. 다윗의 삶의 문장들의 주어는 온통 ‘하느님’입니다. 모두 하느님께서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이 하느님 축복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오늘 독서에는 나오지 않고 내일 독서에 나오지만 이런 깨달음의 은총에 이어지는 다윗의 감사기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찬미와 감사요, 내외적 환경은 좋은 땅으로 서서히 변모되면서 풍부한 영적 결실의 수확입니다.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존엄한 인간품위의 마지막 보루인,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내외적 환경을 좋은 옥토로 바꿔 주시고 마침내 풍부한 결실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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