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差別)하지 마십시오 -둥글고(圓), 덕(德)스러운 삶-2020.2.20.연중 제6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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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0.연중 제6주간 목요일                                                                     야고2,1-9 마르8,27-33

 

 

 

차별(差別)하지 마십시오

-둥글고(圓), 덕(德)스러운 삶-

 

 

 

언제나 늘 난세라 말세라 하지만 오늘날이 그렇습니다. 차별, 혐오, 증오, 무시, 배제라는 부정적 감정의 더러운 영들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바로 이런 부정적 감정의 말마디들을 더러운 영들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차별은 정말 좋지 않습니다. 분별分別과 구별區別은 때로 필요하지만 차별差別은 절대 있어서는 안됩니다.

 

어제는 법정(1932-2010) 스님의 10주기 날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은 젊은 시절 ‘스치면 베일 만큼’ 날카로워 ‘억새풀’로 불렸다 합니다. 그런데 맏상좌에겐 ‘덕스러운 할아버지’란 뜻의 ‘덕조德祖’라고 한 것을 비롯해 제자들을 덕인, 덕문, 덕현, 덕운, 덕진, 덕일 등 ‘덕德’자 돌림으로 법명을 정해줬다 합니다.

 

법정과 대조되는 성철 큰 스님 제자들의 ‘원圓’자 돌림의 법명입니다. 맏상좌인 천제스님등 3명만 빼고 33명 제자들 법명이 모두 ‘원圓’자 돌림이라는 것입니다. 성철 큰 스님은 ‘나는 성격이 모나지만 너희들만이라도 둥글게 살아라’며 그렇게 법명을 지어 주었다 합니다.

 

‘원圓’자 돌림, ‘덕德’자 돌림이 재미있습니다. 두 큰 스님들 어찌 보면 참 ‘까칠했던’ 분들로 자기를 알았던 현자였습니다. 하여 자기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둥글 ‘원圓자’, 덕스러운 ‘덕德’자 돌림으로 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착안한 제 첫 졸저의 제목이 ‘둥근 삶, 둥근 마음’입니다.

 

참으로 둥글고 원만하고 덕스러운, 너그럽고 자비로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절대 차별하거나 혐오하거나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로 바로 우리 믿는 이들이 바라는 이상적 면모입니다. 오늘 제1독서 야고보 사도가 강조하는 것 역시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이 신선한 충격으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선 안됩니다.---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사도의 ‘나의 형제 여러분’이란 호칭이 참 정답게 느껴집니다. 모든 형제들에 대한 차별없는 사도의 사랑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를 지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은 결코 사람을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않습니다. 혐오도 증오도 배제도 무시도 하지 않습니다. 신약성서에는 하느님이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주 강조합니다(로마2,11;에페6,9;콜로3,25;1베드1,17).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을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 역시 자신이 가난하다 하여 위축되거나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란 말도 있듯이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믿음의 부자’란 건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가난해도 당당하고 기품있게 멋있게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공평무사한 마음을 배웁니다. 전혀 차별이 없으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진리 추구에 전념한 이들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닮아 열린 마음, 연민 가득한 마음을 지닙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 연민으로 가득찬 열린 마음을 지니도록 촉구하십니다. 

 

‘연민compassion’이 결핍되면 그 마음 자리에 어김없이 자리잡는 우상들, 이념들과 혐오, 차별, 무시, 미움, 증오, 배제의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라는 더러운 영들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닫쳐 딱딱하게 굳어있으면 성령이 들어 올 수도 없습니다. 바로 이런 닫힌 굳은 마음이 오래되면 육신의 암癌으로 전환되는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활짝 열린 대화의 분위기에서,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한 존재들임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에 답하여 그리스도로서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고난을 겪으시고 배척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실 그리스도’로서 자신의 신원입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합니다. 전혀 수제자 베드로에 대한 일체의 배려없이, 차별없이 쏟아지는 예수님의 죽비같은 질책입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예수님의 정확하고 예리한 분별입니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차별없이 베드로를 질책 하시며 베드로의 중심을 잡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할 때 누구나 사탄이 될 수 있습니다. 새삼 사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언제나 가까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교황님은 강론중 “치욕이 없는 겸손함은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호된 질책에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겠지만 회개와 더불어 겸손과 지혜를 배워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알았을 것이니 결국은 전화위복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공평무사한 사랑을 선사하시며, 우리 안에 내재한 온갖 더러운 영들인 차별, 혐오, 무시, 배제, 증오등 부정적 감정들을 일소해 주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시편34,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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