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실천 -자기 버림, 제 십자가, 주님 따름-2020.2.21.연중 제6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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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1.연중 제6주간 금요일                                                       야고2,14-24.26 마르8,34-9,1

 

 

 

믿음과 실천

-자기 버림, 제 십자가, 주님 따름-

 

 

 

-“참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언제나 거기 그 자리, 푸른 창공 배경한 참 크고 깊고 고요한 불암산은 빛나는 ‘정주의 믿음’의 상징입니다. 참으로 우리 수도승들이 소망하는 바, 크고 깊고 고요한 정주의 믿음입니다.

 

기도와 일은, 믿음과 실천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둘이자 하나입니다. 기도는 일로 표현되고 믿음은 실천으로 표현됩니다. 참된 기도는 일을 통해, 참된 믿음은 실천을 통해 검증됩니다. 참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묵묵히 항구히 표현되는 기도와 일, 믿음과 실천이 하나된 삶이요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는 현실입니다. 믿음에 실천이 따르지 못할 때 누구나 저절로 느끼는 부끄러움일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습니다. 정의평화의 실천 역시 믿음의 표현입니다. 베네딕도 수도회 3대 서원, 1.정주, 2.수도자다운 삶, 3,순종의 실천뿐 아니라 모든 수행의 실천이 믿음의 표현입니다. 요셉수도원 성전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감사패가 2006년 건립이후 계속 붙어 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

하느님의 집인 이 성전 건립을 위해 정성을 다해 봉헌해 주신 박병래(요셉), 최구(레지나) 부부님과 이승용(아우구스티노) 형제님, 그리고 모든 은인들게 진심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2006.3.19.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위에 언급된 분들 역시 실천으로 표현된 믿음이 감동을 줍니다. 특히 고인故人이 되신 박병래 요셉, 최구 레지나 부부님은 요셉 수도원땅 2만3천평을 반기증 형식으로 하느님께 봉헌한 성인같은 분이며 박병래 요셉 형제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임종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대세를 준 분입니다.

 

믿음의 향기는 믿음의 실천을 통해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널리 퍼져 나갑니다. 엊그제 법정 스님 10주기를 맞이하여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성북동 대원각(요정) 소재의 7천평 땅을 법정 스님께 기부해 길상사를 창건케 한 백석 시인의 영원한 연인 김영한 길상화 보살입니다. 다음 인터뷰 대목이 감동적입니다.

 

-“천억대의 대원각을 어떻게 시주할 수 있느냐?”

 “그까짓 천억,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김영한 보살의 이런 무소유의 실천 역시 참된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 역시 믿음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됨을 강조합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며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아브라함은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믿음과 실천의 관계입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참으로 공허하고 맹목적일 수 있습니다. 바로 실천이 없는 믿음 안에 기생하는 ‘허무와 무의미’, 그리고 ‘무지의 악’에 ‘더러운 영들’의 차별, 혐오, 무시, 증오, 배제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입니다. 믿음에 실천에 따를 때 비로소 마음의 순수와 겸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결정적 믿음의 실천 방안을 제시합니다. 참으로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실천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님 당대의 제자들과 군중은 물론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주님과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삶의 실천으로 입증되는 참 믿음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의 삶입니다. 하루하루 삶의 실천으로 입증되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믿음과 실천이 일치된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다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전적이자 공동체적인 찬미와 감사의 좌우명 자작 애송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참으로 실천으로 표현되는 믿음의 삶을 갈망하는 소원이 담긴 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가 

이제는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오랜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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