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도와 회개의 여정 -무지의 병과 죄-2020.3.12.사순 제2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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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2.사순 제2주간 목요일                                                        예레17,5-10 루카16,19-31

 

 

 함께, 기도와 회개의 여정

-무지의 병과 죄-

 

 

참 많이도 강조했던 강론 주제가 '삶의 여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허무하고 무의미한, 무지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목표와 방향이, 하느님 중심과 의미가 뚜렷한 인생을 삽니다. 자주 드는 두 예도 생각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삶에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터넷 굿뉴스를 여는 순간 ‘함께 이겨냅시다’라는 말마디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참 소중한 말마디가 ‘함께’입니다. 함께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아니라 함께 ‘때문에’ 구원입니다. 예전 어느 자매와 주고 받은 대화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함께 죄지으며 사는 것보다, 이혼하여 혼자 죄 않짓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절대로! 죄짓더라도 함께 배우며 살아야 구원이지 혼자 살면 구원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짓더라도 함께 배우고 연대하며 살아야 구원입니다. 끊어져 단절되면 죽음이지만 이어져 연결되면 생명입니다. 죄짓더라도 끊임없이 회개하면서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삶은 함께의 여정이자 동시에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의 지난 화요일 강론중 이사야서,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구절에 대한 묵상이 생각납니다. 

 

-죄는 우리를 숨게 하고 하느님은 우리와 대화를 원하신다. 자신에 낙심하여 의기소침해진 성인에 대한 일화다. 아무리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하느님께서 만족하시지 않는 듯 느껴져 주님께 무엇이 부족한가 물었다. 바로 주님의 대답이다. “나에게 네 죄를 다오! 바로 그것이 부족한 하나다!”-

 

참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바 단 하나 우리의 회개라는 것입니다. 관계속에 살아가기에 끊임없는 죄의 회개에 내적성장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이웃과 무관한 고립단절의 상태라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영적 성장도 성숙도 없습니다. 참으로 기도와 회개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함이 무지에 대한 최고의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부단한 참된 기도와 회개를 통해 자기를 아는 겸손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부자가 무지한 인간의 보편적 전형적 본보기입니다. 완전히 이웃과 고립단절된 삶입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지만 완전히 혼자의 삶입니다. 가난한 이웃 라자로에 대해 추호의 연민도 없는 괴물같은 인간입니다.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참 나를 잃은 삶입니다. 반면 문앞의 가난한 이는 ‘라자로’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라는 이름 뜻대로 가난한 자에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새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기억과 관심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는 하느님도 없고 이웃인 라자로도 없습니다. 완전히 고립단절의 닫힌 삶입니다. 시야도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뿐입니다. 참으로 무지한 인간입니다. 가나한 라자로는 부자에게 기생충같은 존재가 아니라, 부자와 함께 살라는 하느님께서 부자에게 주신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입니다.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이 부자의 내면에 대한 묘사입니다.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아무리 의식주가 보장된 삶이라도 이런 내면의 삶이라면 참 불행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마음을 눈멀게 하고, 굳어져 완고하게 하고, 분별력까지 잃게 하는 무지로 인한 이기적 탐욕의 병이, 죄가 참 두렵고 무섭습니다.

 

반면 가난해도 내면은 천국을 사는 이들이 바로 라자오와 같은 이들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열린 사람들입니다. 부단히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징과도 같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바로 함께의 여정, 기도와 회개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무지의 죄에서 벗어난, 무지의 병에서 치유받은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1장도 의인과 악인이 극명히 대조되며, 의인에 대한 축복도 오늘 예레미야서 말씀과 일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아, 제때에 열매내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예레미야서 다음 주님의 탄식 말씀은 그대로 복음의 부자는 물론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때로 우리 누구나의 실존적 체험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오늘 복음의 부자에게 그대로 이뤄진 현실입니다. 부자의 무관심으로 인한 라자로 사이의 넘을 수 없는 큰 구렁의 단절은 사후에도 계속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죽어서 천국과 지옥이 구원과 심판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 살아서부터 시작된 천국과 지옥이요, 구원과 심판입니다. 

 

살았을 때 회개와 기도와 사랑과 찬미와 감사와 기쁨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회개하라, 기도하라, 사랑하라, 찬미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고 하루하루 날마다의 삶의 선물, 삶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비상한 회개가 아니라 눈만 열리면 일상의 평범한 모두가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특히 날마다 들려 주시는 복음 말씀이 참 좋은 회개의 표징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함께, 기도와 회개의 여정에 항구히 충실함으로 무지의 병으로부터 치유되어 자유롭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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