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라자로’인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님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2020.3.29.사순 제5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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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29.사순 제5주일                                                     에제37,12ㄹ-14 로마8,8-11 요한11,1-45

 

 

 

또 하나의 ‘라자로’인 우리를 살리시는 예수님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예수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살 희망이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닮아갈 때 참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이 당신을 그대로 닮은 외아드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파스카의 기쁨을 앞당겨 누리며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한 만발滿發한 파스카의 봄꽃들이 벌써 주님의 부활을 경축慶祝하는 듯 합니다. 코로나 사태와는 무관하게 참으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게 무수히 피어나는 청초하고 아름다운 파스카의 봄꽃들입니다. 

 

-“참 청초하고 아름다운 파스카의 봄꽃들이다

겨울 추위와 어둠을 견뎌내며 기다렸기에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하기에

자기가 없는 무아無我의, 무욕無慾의 겸손한 파스카의 사랑이기에 

그러할 거다”-

 

무욕과 무아의 겸손한 아가페 사랑, 바로 파스카의 예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파스카의 봄꽃들입니다. 파스카 예수님의 사랑은 작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노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교황님의 기도와 사랑, 강론이 참으로 심금을 울립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오늘 아침 재방송으로 초췌해지신 교황님의 강복을 받고 감사의 그리고 안타까운 맘에 오랜만에 마구 울었어요. 큰 은총을 받은 것 같아요.”-

 

주님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매로부터 받는 문자 메시지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을 닮은 교황님의 사랑이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교황님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보았기에 이런 감동스런 반응일 것입니다. 오늘 사순 제5주일 복음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사랑 역시 참으로 감격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을 배워 따라 살면서 닮고 싶은, 참으로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새삼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그대로 ‘예닮의 여정’이 되어야 함을 봅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란 말뜻을 지닌 라자로입니다. ‘라자로’대신 내 이름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영적 죽음의 무덤에서 지금 나와 주님과 함께 새롭게 살자는 구원의 초대 말씀입니다. 그대로 에제키엘 예언의 실현입니다. 이미 앞당겨 파스카의 부활을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라자로를 무덤에서 끌어 내신, 살려 내신 똑같은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적 죽음의 무덤에서 감방에서 끌어내시어 당신 영을 우리 안에 넣어 주시어 오늘 지금 하늘 나라 땅에서 파스카의 기쁨을, 사랑을, 행복을 앞당겨 살게 하십니다. 그대로 바오로의 고백과 일치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형제 여러분,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파스카의 예수님 덕분에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육 안에서’가 아닌 ‘성령 안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우리 입술에서는 저절로 다음 화답송 시편이 흘러 나옵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내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 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바로 그분이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우리는 ‘라자로’이자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주님을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며, 그분만을 기다리며, 파스카의 기쁨을, 행복을 앞당겨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파스카의 예수님의 제자가, 또 베타니아 가족중 하나가 되어 예닮의 여정을 살아갑니다.

 

첫째,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며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대낮같이 환한 세상도 세상의 빛이신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내면은 캄캄한 어둠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동안 '세상의 빛'이자 '내면의 빛'이신 주님께서 늘 함께 계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참으로 파스카 주님과 믿음의 우정을 깊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주님의 말씀이 참 다정하게 들립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라 부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중 우리의 친구가 되시는 영원한 길벗이자 도반인 예수님과의 우정을 아름답고 깊게 가꿔가는 일이 우리 인생의 필생의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라자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우리의 믿음이 주님께는 기쁨입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주님의 부활을 예고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붇돋웁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죽음 너머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바로 토마스가 우리의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을 대변합니다.

 

셋째,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 믿음의 고백입니다. 

베타니아의 삼남매, ‘라자로, 마르타, 마리아’가 상징하는 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이 삼남매를 사랑하셨듯이 우리 각자를 사랑하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활동가 마르타, 관상가 마리아도 주님 사랑에선 일치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참 많이 받았고 또 주님을 참 많이도 사랑했던 베타니아의 삼남매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타는 물론 우리 모두의 믿음을 확인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를 대변한 마르타의 얼마나 감사한 정통적 믿음의 고백인지요! 아, 주님과의 주고 받은 고백의 내용, 평생 화두로 삼아 사시기 바랍니다.

 

넷째, 예수님의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일치를 이룬 사랑을 배워 실천하며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의 사랑은 울음의 눈물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참으로 충만한 인성의 사랑은 그대로 충만한 신성의 사랑의 표현이 됩니다. 라자로의 죽음에 함께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에 관해 이어 전개되는 장면도 감동입니다.

 

-“돌을 치워라.”

-“주님,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어 예수님의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감사기도하시는 모습에서 아버지와 일치된 신성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향해 저절로 흘러 나오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모두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주님 부활을 앞당겨 경축하기 위해 피어나기 시작한 파스카의 봄 축제의 꽃들 만발한 지금은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단지 ‘기적을 행하는 분(a wonder-worker)’이 아니라, 창조주이시자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고 증여자이신 ‘그의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분(doing the work of God his Father)’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라자로를 살리신 일곱 번 째 마지막 표징 역시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께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봅니다. 우리 하느님과의 일치야말로 우리 삶의 유일한 목표이자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영적 무덤같은, 감방監房같은 삶에서 끌어 살려 내어 자유롭게 하시며 또 하나의 라자로인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흡사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의 ‘탈리타 꿈!(소녀야, 일어나라!)’, 또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실 때의 ‘젊은이여, 일어나라!’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11.4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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