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여정 -대화, 공부, 증언, 희망, 성사-2020.4.26.부활 제3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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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6.부활 제3주일                                          사도2,14.22ㄴ-33 1베드1,17-21 루카24,13-35

 

 

 

구원의 여정

-대화, 공부, 증언, 희망, 성사-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여정입니다. 목표 뚜렷한 하느님을 향한 여정입니다. 하여 요즘 참 많이 강론 주제로 택한 여정입니다. 오늘 엠마오 여정의 제자들과 동반자이신 주님을 보면서 택한 강론 주제는 ‘구원의 여정’입니다. 여기에 꼭 한 말마디를 추가한다면, ‘더불어together’를 붙여 ‘더불어 구원의 여정’이라 하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구원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나이 들어 가면서 자칫 잘못하면 ‘괴물怪物(?)같은’ 노추老醜와 노욕老慾의 노년도 되겠기 때문입니다. 저절로 품위있는 노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여정의 삶에 충실한 열매가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일 것입니다. 

 

어제 읽은 세상 떠난 어느 자매의 유언도 생각납니다. 맑은 정신으로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있다가 세상을 떠난 자매입니다. 그 자매가 남긴 유언은, 1.나 죽으면 울지 마라! 기쁘게 하느님 나라 가는데 울 필요없다, 2.부조금 받지 마라! 이 늙은이 가는 길에 인사하러 달려온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다는 건 인사가 아니다, 3.태워서 자연 속에 뿌려다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겠다!, 셋의 유언입니다. 

 

평생 이런 유언의 정신에 따른 충실한 삶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요즘 계속되는 부활시기 연이어 피어나는 온갖 봄꽃들, 그리고 점차 짙어져 가는 신록이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어제는 신록 아름다운 배밭사진을 전송하며, 몇몇 지인들에게 “신록의 합창 들으시고 행복하세요!‘란 덕담의 인사도 나눴습니다. 

 

참 웅장한 심포니, 신록의 합창을 연상케 하는 장관의 배밭 풍경입니다. 얼마전 써놓은 ‘단 하나 소원’이란 글도 나누고 싶습니다.

 

-“단 하나 소원은 4월의 아름다이 폈다 지는

싱그럽고 향기로운 봄꽃들처럼

아름다이 선물로 살다가 아름다이 선물로 떠나는 것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 것

제발 짐이 되지 않는 것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봄꽃들은 피어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떨어질 때의 낙화落花도 아름답습니다. 선물같은 피어남이요 선물같은 떠남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요. 하루하루 더불어 구원의 여정이 충실하는 것입니다. 결코 비상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루하루 일과표의 시스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다음 다섯 요소에 충실하면 됩니다.

 

첫째, 대화對話입니다. 

형제 도반들과의 대화요 영원한 도반 주님과 기도의 대화입니다. 대화없이 살 수 없습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참 오랫동안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다닙니다. 그동안 불필요한 말을 많이 배설하여 분위기를 오염시켜 공해가 되게 했으니 이제 말을 삼가라는 표지처럼 생각되는 마스크입니다. 아마 마스크 안할 때보다 말도 훨씬 줄었을 것입니다.

 

침묵중에 잘 들어야 대화입니다. 진짜 대화는 혼자 ‘독백monologue’도, 둘만dialogue’도 아닌, ‘셋의trilogue’ 대화라 합니다. 바로 오늘 엠마오 도상의 두 도반 제자들이 그 모범입니다. 영원한 도반 주님을 사이에 두고 셋의 대화가 이뤄집니다. 둘만이 대화라 해도 반드시 함께 계신 영원한 도반 파스카의 예수님을 의식한다면 참 격조있고 결실있는 대화가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기도 역시 하느님과 소통의 대화입니다. 사랑의 소통, 생명의 소통이 되는 대화의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정말 침묵중에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과 대화의 기도가 잘 될 때 형제들간의 대화도 잘 될 것입니다. 새삼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대화가, 대화의 기도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우리가 카톡을 통해 나누는 정보 역시 관계를 깊고 풍요롭게 하는 대화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공부工夫입니다.

평생 배움의 여정중에 있는 평생 학생인 우리들에게 평생 공부는 필수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평생 공부요 이래야 비로소 무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래서 성서 공부요 성서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답은 성서공부뿐입니다. 

 

아무리 세상 공부에 능통해도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공부라면 헛 공부입니다. 지식은 아무리 쌓아 놓아도 지혜가 되지 못합니다. 성서공부를 통해 하느님과 나를 깨달아 알아 갈 때 비로소 지식은 지혜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이 공부의 모범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의에 차 있었지만 성서공부의 열정은 여전합니다. 마침내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두 제자들 사이에 개입하시어 이들이 성서를 깨닫게 하십니다. 다음 두 제자들의 진솔한 고백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바로 주님의 현존이자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성령의 은총이 우리 일상의 모든 공부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특히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서 겸손하고 간절한 자세로 성서 공부에 항구함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셋째, 증언證言입니다.

주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대화의 기도는 그대로 증언이 되고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고백, 사랑의 고백, 희망의 고백입니다. 주님을 공부하고 체험했으면 역시 증언으로, 고백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말과 글과 삶은 모두가 주님의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역시 공적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2독서 사도행전에서의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얼마나 담대하고 열정에 넘치는지요. 그대로 베드로의 믿음이, 베드로의 전 삶이 담겨 있는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증언입니다. 결론 부분만 인용합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 우리 모두 담대하게 주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어 살게합니다.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끊임없이 주님을 증언하면서 주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 역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넷째, 희망希望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희망을 잃으면 내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희망의 빛이 사라진 절망의 어둠이 바로 지옥입니다. 거짓 가짜 희망이 아닌 진짜 희망을 말합니다. 바로 하느님이, 파스카의 예수님이 우리의 궁극의 참 희망입니다. 

 

오늘 제2독서 베드로 1서 말씀의 주제도 ‘희망에 합당한 거룩한 삶’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거룩한 삶이요, 깨어있는 삶이요, 차별하지 않는 삶이요, 품위있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가 그 희망의 소재를 명쾌하게 밝혀 줍니다.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없고 티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주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느님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심을 깨닫습니다.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영원한 이정표가, 인도자가 되시는 희망의 주님이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예견하며 바쳤다는 시편은 그대로 ‘예수님의 기도’이지만 우리의 ‘희망의 기도’로 바쳐도 무방하겠습니다. 화답송 후렴에도 나오지만 아름답고 은혜로워 다시 인용합니다.

 

“주님을 언제나 내 앞에 모시오니, 

내 오른편에 계시옵기, 흔들리지 않으오리다.

그러기에 내 마음 기뻐하고 영혼은 봄놀고,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내 영혼을 지옥에다 버리지 않으시리이다,

썩도록 당신 성도를 아니 버려두시리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어 당신을 모시고 흐뭇할 기꺼움을

당신 오른편에서 영원히 누릴 즐거움을 보여 주시리이다.”(시편16,8-11)

 

다섯째, 성사聖事입니다.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평생 성사인 성체성사와 고백성사입니다. 성사의 일상화, 성사의 습관화, 생활화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성체성사 미사의 중요성입니다. 

 

‘성찬례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교회의 모든 교역이나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한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다.’(교리서1324).

 

오늘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 보고 그 마음이 기쁨과 희망에 가득할 수 있었음도 바로 성체성사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들과 함께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성체성사 미사의 은총에 무지의 눈이 열려 파스카의 예수님을 알아봤다니 얼마나 은혜로운 사건이자 기적인지요. 새삼 인생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답은 이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성체성사뿐임을 깨닫습니다. 

 

엊그제 코로나 사태로 두달만에 미사에 참석하여 주님의 성체를 모신분들 대다수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그러니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끊임없이 거행되는 미사에 참여하는 것보다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더불어 구원의 여정중에 있는 도반들이자 형제들입니다. 필수적 다섯 요소, 즉 ‘1.대화, 2.공부, 3.증언, 4.희망, 5.성사’를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더불어 구원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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