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 -삶은 선물이자 과제이다-2020.4.27.부활 제3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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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7.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6,8-15 요한6,22-29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

-삶은 선물이자 과제이다-

 

 

 

 얼마전 프란치스코 교황님 강론중 빛과 어둠 사이의 선택에 대한 묵상 내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빛안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빛이 그들을 눈멀게 하였고 그들은 볼 수 없다. 그들은 인간 박쥐와 같다. 그들은 오직 밤 동안만 움직인다. 우리 자신도 죄의 상태에 있을 때 빛을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하여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더쉽다. 빛이 얼굴을 스치면 보기 원하지 않는 것을 빛은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빛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것이 비록 힘들다 할지라도 영혼의 눈이 빛에 무지하게 되면 더 나쁘다. 많은 사람들의 장애물과 부패가 우리에게 이것을 가르친다. 부패한 이들은 빛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그것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하느님 사랑의 빛이 성령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추도록 하자. 그리고 자문해보자. 나는 빛속에서 살고 있는가 혹은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의 자녀인가 또는 박쥐처럼 살고 있는가?”-

 

그러니 환한 대낮에도 죄악의 어둠 속에서 영적 박쥐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빛속에서 살고 있는 빛의 자녀인지, 혹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박쥐와 같은 어둠의 자녀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외출하여 활동한다는 자녀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도 생각납니다. 이렇게 박쥐처럼, 어둠 속의 은둔자처럼, 밤의 어둠속에 사는 것이 익숙해지다보면 빛속에서 사는 것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가 무질서한 삶에 제동을 걸면서 밤을, 가정을 찾아 준 듯 하여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빛을 선택하여 빛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 이와 비슷한 물음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위에 속한 사람인가 아래에 속한 사람인가? 하늘에 속한 사람인가 혹은 땅에 속한 사람인가? 참으로 우리처럼 파스카의 예수님과 하나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면 저절로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리하게 대조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스테파노가 예수님처럼 지상에 살지만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이라면 스테파노를 박해하여 죽음에 내몰고 있는 자들은 아래의 땅에 속한 어둠의 사람들입니다. 무지에 눈먼 박쥐와 같은 어둠의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은 이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흡사 빛과 어둠의 싸움같습니다. 

 

완전히 무지에 눈먼 사람들과 빛의 사람 스테파노의 대결같습니다. 은총과 능력이,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빛의 사람 스테파노를 당해 낼 수 없자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테파노를 사지에 몰아 넣는 악의 무리, 어둠의 무리들입니다. 마지막 말마디가 빛의 사람 스테파노를 잘 드러냅니다. 이 또한 빛으로 돌아오라는 참으로 강렬한 회개의 표징처럼 생각됩니다.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는 스테파노는 그대로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임을 입증합니다. 어제 우연히 들은 억울하게 고통받고 있는 어느 분에 대해 두둔하던 어느 관상가觀相家의 말도 생각납니다. 

 

“눈빛이 선하지 않습니까?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전형적 선비입니다. 윗분에게 절대 누가 되지 않도록 자기가 온갖 고통을 다 감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대판 순교자와 같은 의로운 이들은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도 사도행전과 같은 대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들이라면 빵의 기적을 들고 모여든 피상적 사람들은 말 그대로 아래의 땅에 속한 어둠의, 욕망의 사람들입니다. 

 

요즘 좀비란 말이 많이 회자됩니다. 신분과 계급이 사라지고 식욕만 남은 이들을 좀비라한답니다. 그러니 아래의 땅에 속해 어둠의 욕망대로 살다 보면 누구나의 가능성이 좀비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아래의 땅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은 그대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래의 땅에 속한 사람들은 ‘빵’을 찾지만 위의 하늘에 속한 사람들은 ‘표징’을 찾습니다. 참으로 찾아야 할 1차적 대상은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찾을 때, 이런 예수님과 일치가 깊어질 때 비로소 좀비가 안되고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사람으로서 존엄한 품위의 회복일 것입니다. 

 

정말 날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닮아간다면 본래의 참 얼굴이 드러날 것이기에 관상觀相은 전혀 신경 안써도 될 것입니다. 화장도 성형 수술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며칠전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마음이 예쁘니

 말라도/뚱뚱해도

 작아도/커도

 젊어도/늙어도

 예쁘다/다 예쁘다”-

 

마음이 주님을 닮아 예뻐갈수록 저절로 모두가 예뻐질 것이니 외모는 전혀 걱정 안해도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들과 주님과의 문답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며, 따르는 하느님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을 것이며 우리 수도자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선택의 과제입니다. 부단한 회개를 통해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이신 분’인 파스카의 예수님을 선택하는 과제입니다. 오늘 본기도와 영성체후 기도가 참 고맙게도 오늘 강론을 요약하며 우리의 소망을 그대로 대변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파스카의 영약으로 저희의 본성을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가 옛 삶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부활로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찾아 주시니, 구원을 이루는 이 양식의 힘으로, 파스카 신비의 은혜를 저희 안에 가득 채워 주소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위의 하늘에 속한 빛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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