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여정 -침묵沈默, 경청敬聽, 주시注視, 겸손謙遜-2020.5.7.부활 제4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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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7.부활 제4주간 목요일                                                             사도13,13-25 요한13,16-20

 

 

 

배움의 여정

-침묵沈默, 경청敬聽, 주시注視, 겸손謙遜-

 

 

 

참 아름다운 성모성월 5월입니다. 아침 식사후 즉시 수도원 경내를 산책하며 몇 곳에서는 매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불암산 배경의 수도원 전경 및 배밭, 수도원길 하늘길, 예수님 부활상, 영산홍 배경의 성요셉상등 늘 찍지만 늘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참으로 새롭게 깨닫고 배우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제 휴대폰은 아름다운 사진이 가득 담겨 있는 ‘보물창고(?)’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 여름에 들어선 것 같아 낮에는 집중하기가 좀 힘듭니다만 8시 끝기도 끝나자마자 잠자리에 들어 눈깨니 밤 12:40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상해,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에 정신도 맑게 깨어나 열린 마음, 공부하는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저절로 떠오른 강론 제목은 “배움의 여정-침묵沈默, 경청敬聽, 주시注視, 겸손謙遜-”입니다. 이제 ‘여정旅程’은 강론에서 가장 많이 쓰는 참 좋아하는 말마디가 되었습니다. 여정을 생각할 때 마다 남은 삶, 배우는 평생학인의 배움의 자세로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5월1일 노동자의 날로 시작된 5월은 ‘노동자들의 달’이라 부르고도 싶고 무엇보다 ‘배움의 달’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참 좋은 성모성월,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신 동정 마리아 어머니를 통해 노동자들은 물론, 모든 학인들, 어려움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참으로 눈과 귀만 열리면 늘 배울 것은 널려 있습니다. 배움의 여정에, 자세에 ‘침묵沈默-경청敬聽-주시注視-겸손謙遜’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덕목인지 깨닫습니다. 마음의 침묵중에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경청(傾聽, 敬聽)하며 잘 들여다 보며 주시注視할 때 열린 마음의 겸손이요 분별의 지혜도 선사 받을 것입니다. 이른 새벽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도 또 배웁니다.

 

‘화장실엔 ‘30초 손씻기’ 노래, 바닥엔 거리두기 스티커’ 기사에선 어제부터 코로나 생활 방역이 시작된 곳곳에서 얼마나 정부당국이 세밀히, 치밀히 노력을 다하는지에 대해 배웁니다. 외신 기자들이 선망羨望과 경이驚異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기사에 새삼 우리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게 됩니다. ‘이천 화재 참사’ 눈물의 추모식’ 기사에선 참으로 안전 불감증에서 깨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주도면밀해야겠다는 것을 또 배웁니다. 

 

‘미국인의 마스크 거부감…‘바이러스 문화 전쟁’ 화약고됐다’는 기사에서는 미국인의 무지와 오만으로 자초한 막심한 코로나 19의 피해국이 되었음을 배웁니다. 문명인文明人인가 했더니 야만인野蠻人으로 드러난 민낯의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하늘같이 여기는 나라가 진정 문명국이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나라가 야만국입니다. 어느 재미 교포 교수가 보내준 편지글에서 새삼 더욱 배우는 겸손한 자세로 자부심을 갖고 노력해야 겠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뽕'이라는 냉소가 부당한 이유는, 한국인 대다수가 건강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실정으로 얼룩진 신권위주의 정부를 탄핵했고,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면서도 일상화되었던 성폭력에 맞서 진일보한 입법을 이뤄냈습니다. 한국 시민은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숙제들 역시 하나하나 해결해 가리라 믿습니다. 이제 한국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겠습니다만, 한국인은 이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조국을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다수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교포들입니다. 85세 노령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분투奮鬪의 삶 역시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배움의 원천이 됩니다. ‘어려운 시기 성모님께 기도하라’는 말씀, ‘우리 인간은 모두 하느님 앞에 거지들’이라는 말씀,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존엄과 존경을 호소한 말씀’등, 시의적절한 감동적인 말씀들에서도 참 많이 배웁니다.

 

어제는 수도원에도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면서 코로나19로 멈췄던 신자들 미사참여가 허락된 첫날 아랫집 수녀님과 여러 낯익은 신자분들을 만나니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또 요셉수도원에는 하느님과 공동체의 신뢰를 받는 최빠코미오 신부가 원장에 재선된 날이기도 합니다. 함께 축하인사를 나눈후 공동촬영을 하면서 또 공동체 형제들에 대한 고마움을 모두가 많이 배운날들입니다. 

 

평생 주님의 학인, 주님의 전사, 주님의 형제로 살아가는 평생 수도 여정의 도반들인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혼자는 배우고 싶어도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못 배웁니다. 하여 수도공동체는 물론 믿는 이들의 모든 공동체가 배움터이자 학교입니다. 

 

무슨 학교입니까? 주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섬김의 학교요, 주님과 모든 이들을 환대하는 환대의 학교요, 주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말씀의 학교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섬김의 학교, 환대의 학교, 말씀의 학교의 평생학인들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로 종합하면 사랑의 학교이겠습니다. 바로 이 인생 학교의 영원한 스승이자 롤모델은 우리의 빛, 우리의 구원, 우리의 생명이라 고백하는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행복하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을 닮아 섬김의 인생 학교에서 형제들 모두가 섬김의 삶에 충실하고 항구할 때 참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 들이는 것이다.”

 

‘환대의 인생 학교’에서 참으로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의 환대는 바로 예수님을, 이어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얼마나 존엄한 품위의 사람인지 깨닫습니다. 그 누구든 예수님을, 하느님을 환대하듯 환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면에서 요셉수도원은 주님의 집이자 환대의 집이요, 수도자들은 기도의 사람이자 환대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의 바오로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말씀의 인생 학교’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마지막 부분 겸손의 모델로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가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의 겸손이 감동적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우리는 작아져야 진짜 겸손입니다. 자발적 사랑의 겸손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니 ‘예닮의 여정’중에 ‘말씀의 인생 학교’에서 우리가 참으로 평생 배워야 할 겸손이요 겸손 공부입니다.

 

논어의 중심 핵심 키워드는 ‘학學’이라 합니다. ‘인仁’보다 ‘호학好學’이라 합니다. 참으로 배움의 공부를 좋아하라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공자가 얼마나 배움의 공부를 중시한지는 논어 맨 첫글에 나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學)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習) 이 또한 기쁘지 (悅) 않은가?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樂) 않은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慍)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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