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심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2020.5.8.부활 제4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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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8.부활 제4주간 금요일                                                                사도13,26-33 요한14,1-6

 

 

 

삶의 중심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어제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오늘 5월8일은 어버이날이기도 합니다. 마침 어버이날을 앞둔 어제 뜻밖에 네분 자매들이 방문했습니다. 코로나19사태로 수도원 방문이 완화된 후 둘째 날입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선물은 저에게 불러 준 세곡의 노래, 어버이 은혜, 스승의 은혜, 어린이날 노래였습니다. 

 

네분 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고운 마음을 반영하듯 음성도 고왔습니다. 좋은 마음에서 나오는 좋은 생각, 좋은 글, 좋은 말임을 많이 깨닫는 요즈음입니다.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어버이의 자식들이요, 스승의 제자들이요, 내면 깊이는 동심의 어린이들입니다. 불멸의 세 곡 가사를 인용합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아래 그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하리요, 어버이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형제자매여러분, 한 번 어버이를 그리며 오늘 지금 여기서 한 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어버이 은혜를 부르고 났을 때 저를 비롯한 네분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으며 불러본 어버이 은혜 노래입니다. 아주 예전 여섯째 숙부의 환갑 잔치에 이 노래를 부른후 할머니가 생각난다며 흐느끼던 숙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 또한 살아 생전 어머님께 이 노래 한번 불러드리지 못하고 카네이션 한 번 달아들이지 못한 불효不孝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이맘 때쯤이면 중년을 훌쩍 넘어선 옛 초등학교 제자들이 방문하여 불러주던 감동적인 노래를 어제들은 것입니다. 이어 어린이날 노래 부를 때는 모두가 어린이가 된 듯 동심의 순수로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들이었습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코로나19가 없었던 예전 5월 피정때는 피정자들과 자주 불렀던 마음도 몸도 동심의 순수로 빛나게 하는 불멸의 동요입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는 하느님 어버이의 자녀들이요, 스승이신 주님의 제자들이요, 주님의 어린이들입니다. 즉시 자매님들에게 드린 감사의 화답입니다.

 

“감사합니다. 제 집무실 벽 뒷면 반대쪽엔 성전 제대와 감실이 있고 벽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불러드린 노래는 저를 통해 우리의 어버이이자 스승이신 주님께 불러드린 찬미가와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버이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즉각 연상되는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저절로 주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의 마음이 됩니다. 감사와 찬미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도 받습니다. 어제 방문했던 네 자매들에게 강복도 드리고 사진도 찍어 드렸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치유로 환히 빛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참 많이 강론 주제로 택했던 말마디입니다. 삶의 중심을 잃는 것, 잊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습니다. 삶의 중심에 주님이 아닌 사람, 돈, 일등 세속의 우상이 자리잡을 때 파생되는 온갖 혼란이요 불행입니다. 

 

일중독으로 가만이 있지 못하고 늘 일해야 한다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불안해 하며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는 어느 형제에 대한 자매의 이야기도 전해 듣고 드린 충고도 생각납니다.

 

“삶의 중심이 없는 탓입니다. 자매님의 믿음과 기도로 잘 보완해 드리시고 시간되면 함께 수도원 피정도 오세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정도대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믿음의 자세로 항구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도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옵니다.”

 

삶의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유일한 근본적인 처방이자 답은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 삶의 중심에 확고히 자리잡을 때, 삶의 중심인 주님께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릴 때 비로소 건강한 영혼과 육신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자, 영원한 안식처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요. 참으로 삶의 중심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이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새롭게 확인하는 삶의 중심,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바로 이 구절은 예수님의 자기계시에 근거한 요한복음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최고봉이요 요약입니다.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믿고 사랑하고 희망할 때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건강한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평화의 참행복한 삶입니다. 

 

이런 주님을 잃어 탈선할 때 거짓과 어둠의 죽음 상태에서 혼돈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삶의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과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동료의 설교가 우리 삶의 중심을 새롭게 확인시켜 줍니다.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하느님께 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어 그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실현시켜 주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우리들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낳았노라’ 말씀의 대상이 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자 어버이요 스승이심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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