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 일치의 삶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2020.5.13.부활 제5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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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13.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요한15,1-8

 

 

 

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 일치의 삶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

 

 

 

요즘 쓴 자작 애송시 두편을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러하다’와 ‘당신은’입니다. 저는 물론 모두를 지칭하는 당신입니다.

 

-“산山의 깊이와 고요는 맡김에 있다

하느님께, 자연에, 순리에 맡긴다

맑든 흐리든 차든 덥든 비오든 눈오든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묵묵히 견뎌낸다

알고 보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니던가 무엇이 부러우리

 

오늘은 비안개 속에 묻혀

휴식을 취하는 산

하여 날로 

깊어지는 산 고요해지는 산 새로워지는 산 좋아지는 산

당신이 바로 그러하다.”-

 

참으로 주님 안에 머물 때 위의 산처럼 날로 깊어지는 삶, 고요해지는 삶, 새로워지는 삶, 좋아지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당신이요 당신이 바로 그러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5월 성모성월입니다. 날로 새로워지고 푸르름 짙어져가는 산천의 초목들입니다. 바로 주님안에 머물 때 이런 신록처럼 날로 새로워지는, 충만한 생명임을 깨닫습니다. 또 하나 ‘당신은’ 이란 짧은 시입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산이 산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산보다 더 좋은 산이예요”-

 

이 시를 지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어버이날 참 마음이 예쁜 분이 꽃 한송이를 선물할 때, 사람꽃에 비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 꽃송이던지요. 사람보다 더 예쁜 꽃은 없음을 참으로 깊이 깨달았고 즉시 쓰여진 시입니다.  사람은 꽃입니다. 잠시 폈다 지는 보통 꽃이 아니라 참 특별한 늘 피어 있는 하느님의 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꽃처럼 아름답고 품위있고 향기롭게 살아야 합니다. 또 다른 시도 생각납니다.

 

-“마음이 예쁘니

말라도 뚱뚱해도 작아도 커도

젊어도 늙어도

예쁘다 다 예쁘다”-

 

참으로 주님 안에 머물 때, 꽃보다 더 예쁜, 산보다 더 좋고 깊은 산같은 존재인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 때 참으로 살아있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살아 있다고 다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다 하나 생화가 아닌 향기없는 조화같은 삶도 참 많습니다. 

 

살아있을 때 향기지 죽으면 향기도 없습니다. 참으로 진짜 살아있음을 느낍니까? 참으로 주님 안에 머물러 살아 있을 때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참으로 살아 있음을 깨달을 때 참 기쁨과 행복입니다. 어떻게 참으로 살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답을 줍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하느님은 참포도나무인 예수님을 가꾸시는 농부이시고, 우리는 모두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라는 것입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요 환상인지 깨닫습니다. 참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있을 때, 예수님 안에 머물 때 참으로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느님은 부단히 우리를 전지剪枝하시고 살펴 주시니 바로 이것이 은총입니다.

 

“너희는 내가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부단히 영과 생명의 주님 말씀으로 살아나고 정화되고 성화되는 우리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끊임없이 바치는 말씀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자명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바로 주님과 상호내주相互內住의 일치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주님도 우리 안에 머무르겠다는 약속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일 때 정말 살아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육의 건강입니다. 늘 새롭고 깊어지고 고요해지고 깨끗해지는 삶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 바로 이 말씀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를 깨달을 때 진정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입니다.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이요 환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 안에 머무를 때 풍성한 열매요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열매 또한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 머물지 않을 때, 주님을 떠날 때 무지와 허무의 심연深淵에 탐욕의 밥이 되니 바로 이게 지옥이요 스스로 자초한 화요 심판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고무적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주님 안에 머무르고 주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러 주님과 상호내주의 일치를 이룰 때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뜻대로 정말 필요한 것을 청하게 되며 우리의 청은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맺는 무수한 열매들이 아버지께는 영광이 되니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요 충만한 생명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평생을 참 열심히 살았어도 주님 밖에서 헛된 노고의 열매 없는 삶이었다면 그 인생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그러니 참으로 늘 깨어 주님 안에 머물러 살고 있음을 알게 하는 주님 현존 의식의 훈련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끊임없는 기도의 강조입니다. 성구聖句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바치는 비움기도나 향심기도가 목표하는 바도 늘 깨어 주님 안에 머물러 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세의 관습에 눈먼 수구파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비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 안티오키아 교회에 속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답은 자명해집니다. 모세의 관습이나 할례를 지켜 구원이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무를 때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하는 통쾌하면서도 간명한 처방인지요.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주님 또한 우리 안에 머물게 되어 비로소 상호내주의 일치의 구원입니다. 바로 이런 구원을 새롭게 확인하는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상호내주의 일치의 구원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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