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청할 것은 단 하나 ‘사랑’뿐이다- 2020.5.23.부활 제6주간 토요일 ​​​​​​​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2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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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3.부활 제6주간 토요일                                                    사도18,23-28 요한16,23ㄴ-28

 

 

 

예닮의 여정

-청할 것은 단 하나 ‘사랑’뿐이다-

 

 

 

지난 토요일부터 내일 주님 승천 대축일 주일까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회칙 반포 5주년 기념 주간입니다. 교황님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창조물의 복음은 그의 의미를 여는 열쇠다”라는 제하의 “찬미받으소서”회칙의 골자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1.창조의 복음, 2.생태학의 크리스천 열쇠, 3.경배와의 연결, 4.지구는 현재와 미래, 모두에게 속해있다, 5,관상에로 인도하는 창조물, 6.하느님의 현존을 계시하는 창조물, 7.창조물의 형제자매들”로 요약되었습니다.

 

사랑의 관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터전 자연 역시 사랑받아야 할 관상의 대상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청할 것이 더 하나 생겼습니다. 내 살고 있는 환경을, 자연환경을,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정주서원을 한 분도 수도자들에게 장소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무엇을 청하느냐, 청원기도가 그 사람을 드러냅니다. 참으로 주님의 이름에 걸맞는, 정말 주님의 뜻에 따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가 고귀하고 존엄한 인품의 사람을 만듭니다. 믿는 이들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불림받은 자들이자 하느님의 선물인 존재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인데 아무 것이나 청할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뜻에 맞는 것을 청할 때 우리는 아버지께 받을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청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 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오늘입니다. 영원한 오늘입니다. 오늘 제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청합니까? 사랑 하나를 청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이웃을, 자연을, 일상의 삶을, 모든 수행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청원이야 말로 주님 뜻에, 주님의 이름에 맞는 기도입니다. 이런 순수한 사랑의 청원에 대한 응답이 충만한 기쁨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방금 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기쁨입니다. 참으로 제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게 해 주십사 청할 때 주어지는 충만한 기쁨의 선물입니다. 주님 자체가 충만한 기쁨입니다. 그러니 삶의 허무를 기쁨의 충만으로 바꾸는 것은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텅 빈 허무를 충만한 기쁨으로 바꾸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여정은 사랑의 여정이라 할 수 있고 그의 모범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사랑의 삶의 여정은 그대로 예닮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참 자유로운 참 나의 실현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우리 삶 역시 예수님과 똑같이 아버지에게서 나와 아버지께로의 여정임을 깨닫게 합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간다.”

 

영원히 머물 세상이 아니라 ‘여정의 길손’인 우리들입니다. 쏜살같은, 흐르는 강물같은 세월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아버지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지요. 요즘 보니 대부분 80-90세 사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 사랑하며 깨어 잘 준비하며 잘 살다가 잘 떠날 수 있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길은 듯 하나 참 짧은 인생입니다. 일일일생, 삶의 여정을 하루로 압축하면, 일년사계, 삶의 여정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압축하면 어느 지점을 통과중인지 단박 드러납니다. 30년이상 수도원에 정주하다 보니 젊었던 수도형제들의 변하는 외모가 눈에 밟힙니다. 그러니 참으로 청할 것은 사랑으로 잘 살다가 잘 떠나는 죽음, 하나뿐일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받을 것이요, 기쁨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바로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아폴로가 그 모범입니다. 3차 선교여정에 오른 사랑의 여정 중의 바오로 사도요, 예수님께 사로잡혀 혜성같이 등장한 아폴로는 담대히 회당에서 또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일들을, 예수님은 메시아임을 열정을 가지고 가르칩니다. 그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문득 토마스 아퀴나스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동료 수도형제가 경당 안에 있는 십자가의 주님과 토마스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사랑하여 참 많은 좋은 글을 남겼다. 보답하고 싶다. 무엇을 주면 좋을까?”

-“당신 하나만 원합니다. 당신을 제외한 어느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것, 꼭 필요한 하나 주님을 청원請願하는 토마스입니다. 참으로 사랑받으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저절로 하느님도 이웃도, 자연도 사랑하고,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거룩한 미사중 청할 것은 참으로 모두를 사랑하게 해달라는 청원 하나뿐입니다. 무엇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처럼 사랑의 주님을 청할 때 충만한 기쁨이신 주님을, 주님의 성체를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은 바로 충만한 기쁨 자체입니다. 

 

제가 주님께 청하는 것은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다 기도와 더불어 ‘행복기도’ 대로 되게 해달라는 청원請願 뿐입니다. 일명 예닮기도, 행복기도를 다시 나누며 강론을 마칩니다. 이런 청원은 예수님 뜻이나 이름에도 어울릴 것이고 분명 예수님도 기분 좋아 하실 것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 은총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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