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2020.6.4.연중 제9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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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4.연중 제9주간 목요일                                                     2티모2,8-15 마르12,28ㄱㄷ-34

 

 

 

가장 큰 계명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사람은 꽃이다

늘 피는 꽃이다”

 

꽃 대신 사랑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사람은 사랑이다

늘 피는 사랑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름답게 살아야 합니다. 늘 피는 꽃으로, 사랑으로 살아갈 때 아름다운 삶입니다. 요즘 참 행복한 날의 연속입니다. 멀리 밖에서 언젠가가 아닌 오늘 지금 여기 가까이 안에서부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을, 소확행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널려 있는 게 행복이란 선물입니다. 요즘은 사랑을 줍듯이 시詩들도 줍는 느낌입니다. 

 

얼마전 아침 산책중 미사 마치고 급히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수녀님을 만나 수도원 십자로 예수님 부활상 앞에서 함께 셀프카 사진을 찍어 전송한 후 받은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신부님! 일상의 행복을 포착하는 센스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일상의 행복, 참 좋고 귀한 말마디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살아야 합니다. 하여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큰 사랑 욕심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어제도 세 분과 셀프카를 찍어 전송했습니다. 

 

“저랑 한 번 사진 찍어요!”

 

수도회 장상회의에 참석한 신부님과 하나 찍고 기도하고 가던 자매와 하나 찍고 일하려 온 자매와 하나 찍었습니다. 모두가 잘 아는 착하고 열심한 분들이었습니다. 마침 일하러 온 분은 아침 산책길에 만났는데 기도문을 보며 기도하며 오고 있었습니다. 함께 사진을 찍어 전송하며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오늘 자매님 만나고 반갑고 기뻤습니다. 갈수록 예뻐지네요. 30대같아요. 주님 사랑 안에서 늘 새롭고 행복하세요!”

“신부님, 항상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사진 너무 예뻐요!”

 

함께 찍다 보면 저절로 웃게 되니 저절로 서로 사랑하는 모습 같아 참 행복감을 갖게 합니다. 이 또한 사랑의 성령에 따른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선물같은 사건들입니다. 앞으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실천하고픈 함께 찍는 사진입니다. 어제 낮기도 시편 성무일도중 새롭게 와닿은 구절도 생각납니다.

 

“하고 많은 부귀富貴를 누리기 보다, 당신이 명하신 도를 더욱 즐기나이다.”

“당신의 규정이 내 낙樂이오니, 당신 말씀이 잊음이 없으오리다.”

“내 걸음은 꿋꿋이 당신 길만 따르옵기, 두 다리는 비틀 거림이 없나이다.”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주시고, 당신 날개 그늘 아래 이몸을 숨겨주소서.”

 

바로 하느님이, 하느님 말씀이 행복의 열쇠임을 말해 줍니다. 참 행복은 하느님께, 하느님 말씀 실행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복된 숙명입니다. 세월 흘러 나이들어 갈수록 마음도 시야도 사랑도 커지고 깊어지고 넓어져야 하는 데, 작아지고 얕아지고 좁아지지는 않는지 부단히 성찰할 일입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영적성장과 성숙은 죽는 그날까지 계속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른 새벽마다 쓰는 은총의 선물, 강론에 놀라 써놓은 어제의 고백글이 생각납니다.

 

-매일 강론 쓰고 났을 때 마다 어머님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어찌 이런 아들을 두었지!”

언젠가 어머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나도 강론을 쓰고 났을 때 마다 

“내가 어찌 이런 강론을 쓸 수 있었지!”

감탄한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순전히 당신 ‘은총의 선물’ 강론이옵니다-

 

사랑뿐이 길이 없습니다. 세상 것들에, 술에, 자기에 취醉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사랑에 취醉해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첫째가는 계명이 뭐냐는 질문에 하느님 사랑에 이웃 사랑 하나 더 추가하시며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묶어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하십니다. 아, 이 사랑이 우리 인생의 모두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사랑하라 주어진 한 번뿐의 목숨입니다. 인생 후회는 사랑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 눈들면 어디서나 하늘이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눈뜨면 어디나 이웃입니다. 인생 무지와 무의미와 허무의 참 고질적 병의 치유약도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부족할 때 파생하는 내외적 분열입니다. 분열의 병이요 일치의 치유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할수록 하느님 중심의 견고해지는 내외적 일치입니다. 마음을, 목숨을, 정신을, 힘을 다한 갈림없는 하느님 사랑이 날로 우리를 순수와 열정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런 순수한 사랑, 열정의 사랑에서 샘솟는 행복과 기쁨, 삶의 활력입니다. 

 

바로 그 좋은 본보기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최고로 실현 시킨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사랑의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매진할 때, 정진할 때 예수님을, 결국엔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삶의 여정은 사랑의 여정이자 절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진리를 깊이 깨달아 정통한 분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사랑하는 제자 티모데오에게 보낸 서간은 동시에 우리 하나하나에 주시는 사랑의 서간이 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최고의 모범이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집중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예닮 여정의 빛나는 모범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부질없는 설전으로 듣는 이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 아리나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함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라는 바오로의 권고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구별될지언정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고, 하느님 사랑의 진위는 이웃 사랑으로 검증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일치의 바로 그 지점에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이, 하느님이 계십니다. 주님의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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