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물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2020.7.1.연중 제13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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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연중 제13주간 수요일                                                    아모5,14-15.21-24 마태8,28-34

 

 

 

공정이 물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29)

 

오늘은 7월 첫날, 말씀 묵상중 중학교 2학년 국어 책에 나오는 이육사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심신은 참으로 고달팠어도 독립을 꿈꾸며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희구했던 시인의 청순淸純한 마음이 감동적으로 표현된 시입니다. 시인이 애타게 기다렸던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은 독립된 나라는 물론 흡사 매일미사를 통해 찾아 오시는 반가운 손님, 우리의 영원한 해방자이자 주님이시고 도반이신 예수님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참 아름답고 풍요롭게 펼쳐지는 평화로운 세상이 눈앞에 선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역시 이런 세상을 꿈꿨고 예외 없이 시인이자 신비가였습니다. 참으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인 시인이자 신비가인 예언자였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아모스 예언자가 꿈꾼 세상도 이렇듯 공정하고 정의로운,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오늘날도 공감하는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찾아라. 그래야 살리라. 그래야 주 만군의 하느님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공정을 세워라.”

 

모든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예언자의 말씀도 그대로 하느님 마음을 반영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정통했던 예언자였습니다. 예언자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 치워라. 다만 공정을 물처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전례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삶의 전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삶과 전례는 하나입니다. 삶이 없는 전례는 공허하고 전례가 없는 삶은 맹목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아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꿨던 예언자요, 참된 전례가 지향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화답송 후렴도 이와 일치합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참으로 올바르고 반듯한 삶을 살 때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얼마전 저절로 나왔던,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라는 탄식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으로 제대로 된 사람 만나기도 힘들고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일은 평생과제입니다. 

 

나이 40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평생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그날까지 수행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봅니다. 학식이나 능력 유무, 재산 유무를 떠나 정말 올바르고 반듯하게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정신 건강, 마음 건강, 영혼 건강입니다.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이신 주 예수님의 생생한 현존안에 머물 때 비로소 영혼의, 정신의, 마음의 건강일 것입니다. 이래야 육신의 건강도 뒤따릅니다. 공정이 물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도 실현됩니다. 어제 잠시 소개했던 방금 바친 연중 제13주간 본기도 내용도 참 이상적인 우리의 삶을 요약합니다.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한 주간 이 본기도만 묵상하여 살아도 충분하겠습니다. 중요한 말마디가 천상 은총, 빛의 자녀, 오류의 어둠, 진리의 빛입니다. 말을 바꿔 오류의 어둠은 무지의 어둠으로, 진리의 빛은 믿음의 빛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영적 삶도 천상은총으로 빛의 자녀가 되어, 오류의 어둠, 무지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진리의 빛, 믿음의 빛 속에 사는 삶일 것입니다.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도 이와 일치하여 반갑고 기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네.”(야고1,18).

 

매일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매일 새롭게 치유되어 태어나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미사를 통한 천상은총이 우리를 빛의 자녀가 되어, 무지와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진리의 빛 속에, 믿음의 빛 속에 살게 합니다. 바로 이런 지금까지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면 오늘 복음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복음의 문제에 대한 답을 예수님이 또 제1독서의 아모스가 줍니다.

 

오늘 복음의 가다라의 미친 사람은 그대로 하느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 지 보여줍니다. 인간의 근원적 불행과 비극은 하느님을 떠남으로 스스로 자초한 재앙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을 잃어 버려 고립단절될 때 사납고 거친 마귀들린 사람은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천상은총을 상실할 때 어둠의 자녀가 되고 무지와 오류의 어둠 중에 망가지고 무너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다양한 악령들린 사람들인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고 항구적인 것이 무지의 바이러스, 탐욕의 바이러스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어버릴 때 하느님 중심 자리에 물밀 듯이 들어와 자리잡는 온갖 우상들에 마귀들이요 창궐하는 나쁜 영적 바이러스들입니다. 하여 공정을 물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하느님 중심의 삶이 절실합니다. 이들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예수님뿐입니다. 마귀들도 알아보는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가라” 권위있는 명령에 완전 마귀들은 퇴치되고 제정신에 제자리를 찾게된 마귀들렸던 사람입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자리에 모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강한 영적면역력에 영적 건강을 지님으로 온갖 유해한 영적 바이러스들은 물론 다양한 더러운 영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입니다. 더불어 더욱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삶을 살 것입니다.

 

바로 이 모두의 답은 이 거룩한 미사전례에 있습니다. 7월 첫날 청포를 입고 찾아오시는 반갑고 고마운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의 영적 면역력을 높여 주시고 우리 안에 내재한 온갖 유해한 영적 바이러스들과 더러운 영들을 말끔히 청소해 주시며, 우리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무지와 오류의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빛, 믿음의 빛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을 찬미하는 일뿐입니다. 영육靈肉의 건강에 참 좋은 식食과 약藥이 하느님 찬미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시편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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