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9.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호세11,1-4.8ㅁ-9 마태10,7-15
하느님의 자녀다운 행복한 삶
-사랑, 회개, 선포-
새벽 인터넷 기사 첫 줄의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선생님은 제정신을 갖고 산 사람이었다. 제 정신으로 살기위해 분투한 사람이었다.’ 그대로 공감이 가는 말마디였습니다. 한결같은 정주의 삶, ‘주님의 전사戰士’로서 하루하루 분투奮鬪의 노력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저절로 제정신이 아니라 분투해야 비로서 제정신입니다.
며칠전의 감동이 새롭습니다. 22년전(1998년) 수도원을 취재하면서 사진을 찍었던 수녀님의 근황을 듣고 당시 수녀님이 전해줬던 감사의 편지를 찍어 보내 드렸더니 반가운 답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신부님, 조 멜키올 수녀예요. 신부님의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습니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제 마음의 습자지에 화-악 퍼지는 듯합니다. 가끔씩 신부님의 시를 되뇌이곤 합니다.
‘그리움이 깊어지면
병이 된다 하지만
당신 향한 내 그리움은
기도가 되고 별이 됩니다’
벌써 22년이 되었다니---”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서 하루하루 한결같은 정주의 분투의 삶이 바로 구원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엊그제 첫 백합화꽃의 발견이 반가웠고, 어제 처음 발견한 능소화 고운 꽃도 반가웠습니다. 참으로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한 꽃들이요, 얼마전 써놨던 글도 떠올랐습니다.
-“늘 거기 그 자리
때가 되면 피어나는 꽃들
누가 보아 주든 말든
알아 주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하루를 살아도
하늘님 가득 담고 영원을 사는
하늘님만으로 행복한 무아無我, 무사無私, 무욕無慾의 들꽃들인데”-
그러니 사랑하며 하루하루 꼬박꼬박 아름다웠던 추억들 마음에 각인하며 매일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의 황당했던 일도 잊지 못합니다. 새벽 2시에 시작해 3시 넘어 거의 끝나기 직전에 노트북이 작동을 멈춰 썼던 강론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아, 치매가 이런 것이겠구나! 기억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 정신이 하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사랑으로 분투하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한결같이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치매에 대한 최고의 예방책임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첫째, 사랑의 삶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예수님을 온 마음, 온 정신, 온 영혼으로 온 힘으로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땅한 의무요 책임입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하느님 사랑을 깨닫는 다면 이렇게 살 수 뿐이 없습니다. 사랑은 삶의 의미입니다. 사랑해서 살아있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유일한 답도 이런 사랑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것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 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정통했던 호세아 예언자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느님을, 예수님을 마음을 다해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분투의 하느님 사랑이 한결같은 정주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참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사랑하는 재미로, 맛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회개의 삶입니다.
결국 어제에 이어 이런 사랑을 회복하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호세아 예언자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자발적 표현이 회개입니다. 사랑할 때 회개요, 결국은 사랑의 회개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제자리로 돌아와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앎으로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의 시작입니다. 회개없이는 자기를 아는 겸손도, 지혜도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통해 사랑의 주님을 닮아갈 때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참 행복입니다. 연중 제14주간 본기도 내용이 참 깊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참으로 우리가 사랑의 회개로 전 존재를 하느님 향해 활짝 열 때 이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셋째, 선포의 삶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사랑의 회개로 끝이 아닙니다. 이웃 사랑의 복음 선포의 삶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회개의 완성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 회개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회개했을 때 영육의 치유에 주님의 권능도 선물로 받습니다. 주님만으로 행복하고 부요한 삶입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나병 환자들을 깨끗이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얼마나 신바람 나는 장면인지요. 회개를 통한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최고의 선물은 이런 주님입니다. 이런 주님을 선포하는 것이며 선물하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이런 주님을 모셨기에 무소유의 홀가분한 행복한 삶입니다.
말 그대로 소유의 삶이 아니라 존재의 삶입니다. 이런 주님을, 주님의 평화를 선물함이 진짜 복음 선포입니다. 바로 이런 복음 선포자의 삶 자체가 하늘 나라의 실현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하늘 나라의 복음이 될 때 저절로 복음 선포입니다. 얼마전 타계한 고매한 분의 진솔한 고백도 심금을 울립니다.
“인생, 그거 너무 이리저리 궁리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다 똑같아요. 다 어린애죠. 이 난경에 처해 보니 뼈저리게 알겠습니다. 평소 건강할 때 사람들에게 충분히 배려하고 관심을 베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여러분은 후회없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욕심없이 평온平穩한 마음으로 사는 게 제일 부럽습니다. 최소한의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지나간 날들을 많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견뎌볼게요.”
후회없는 삶,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제자리에 정주하면서, 한결같이, 제정신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하루를 평생처럼,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삶, 회개의 삶, 선포의 삶에 정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께 다음 고백의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십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아멘.